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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의 배신, 그리고 행복한 엠마와 돼지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9. 10.


오랜 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났더니 무심코 그 때 그 시절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한 여름에 학내에서 채식파티를 한다고 두부와 부추로 채식만두를 빚었던 일,

그런데 냉장고에 보관을 안 해 그 많던 채식만두가 하룻밤 사이! 소리 소문도 없이 상해버렸던 일 말이다.

그 많던 채식만두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상해버린 만두처럼 나도 소리 소문없이 채식(우유, 달걀, 생선까지 먹는 페스코 채식)을 접었다.

고기를 안 먹던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가끔 "지금도 고기 안 먹지?"하고 물어올 때만 

어렴풋이 내가 한 때 그랬었지, 를 기억할만큼 아마득하다.

나의 전향은 스스로에게 변명하는 것조차 죄책감과 자책감을 동반했기에 '그냥'으로 얼버무려왔지만

  어쩌면 '김밥에서 햄만 톡 빼서 한 쪽에 버리는' 채식에 거부감을 느껴서라고 할 수 있다.

김밥을 주문하면서 햄을 미리 빼달라고 하면 되지만, 미리 싸놓은 김밥을 건네줄 때는 어쩌란 말이냐.

종교적이거나 건강상의 이유가 아닌데 채식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한때는 생명이었던 그 살들을 버리는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채식주의'란, 어떻게 이 모순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고기 음식을 톡 찍어내 쓰레기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채식주의가 거기까지라면, 그런 신념을 위해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삶의 온 순간을 공장식 사육 아래에서 보내고 비참하게 도살된 후 화학조미료와 인공첨가물로 버무려져 내 앞에 선 돼지야. 

생명이되 한 번도 '살아 숨쉬는 생명'으로 살 수 없었던 너를

내 속에서 알알이 소화시켜 C, H, O 생명을 이루는 원소로 고맙게 받아들일께.

너를 쓰레기통에 보내지 않고, 36.5도의 내장 안으로 너를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지도 않게 담을께."

그런 마음이었다.



지은이는 근 20년간의 비건(달걀, 우유까지 먹지 않고 채소만 먹는 채식주의자) 생활을 접고

채식이 지구를 살리는 길이 아님을 알리는 책을 쓰게 되었다.

순환하는 생명 안에서 흙도 먹어야 식물을 키우고,

먹이 사슬의 최종 포식자인 인간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흙을 먹여야한다.



"언젠가 너는 비둘기 한 떼를 기르면서 그들의 분뇨를 밭에 뿌리고 그들의 시체를 딸기 넝쿨과 사과나무 사이에 묻을 것이다.

닭과 오리, 거위, 뿔닭도 기를 것이다.

그들은 곤충과 벌레를 잡아먹고, 너는 새가 낳은 알, 고기, 과일을 먹을 것이다.

네가 기르는 동물은 너를 받아들이고 너에게 와서 도움을 구하고 네 품에 안길 것이다.

너희는, 새, 과실수, 인간, 흙을 포함한 너희 모두는 먹고 먹힐 것이다.

내 차례가 되면 내 재를 뿌려 다오.

딸기 넝쿨과 사과나무에게 나를 먹여다오"

(55~56쪽)



지은이는 농업 자체가 인간이라는 종이 에너지가 고밀도로 집약된 일년초-쌀, 밀, 콩, 옥수수 등의 곡물을 생산하면서

자연에 가한 폭력이라고 말한다. 일년초의 끊임없는 생산은 생명의 밑감인 표토층과 대수층을 고갈시킨다.

다년생 혼작이 펼쳐진 땅에서 소, 들소, 돼지, 닭 등이 돌아다니며 풀을 뜯어먹고 그들의 똥으로 흙을 먹이는 순환이 필요하다.

땅을 갈아엎고 화학비료를 뿌려서 인위적으로 땅을 먹이는 농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콩버거? 두유라떼? 채식까스?



"모두 배불리 먹는 정의로운 세상을 간절하게 염원하는 사람에게는

단순한 해결책, 개인적 해결책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이해한다. ...

그러나 이는 감정적으로 위안이 될지는 모르나 끈질기고 끔찍한 힘의 뿌리와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3쪽)



본인의 무너져버린 척추, 만성적인 우울증, 비건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끊긴 생리를 이야기하며

채식(비건)의 영양학적 문제를 트립토판, 세로토닌, 오메가 3와 오메가 6의 비율 등 '생물 책' 용어로 조목조목 설명할 때는

위협적이어서 무섭기까지 했다.

주변에 비건은 아니지만 페스코는 몇 있고 몇 년간 페스코로 지낸온 내 경험상

페스코 채식의 경우 건강이나 영양 문제로 고생한 적은 드물다.

그래서 영양문제를 강조하는 에브리데이 '육식주의자'들의 목소리를 귓등으로 흘려들었는데

비건으로 오랫동안 살아오고 지속가능한 삶을 충분히 고민한 사람이 하는 말이라 그 무게가 달랐다.

 

책을 읽으며 농장과 돼지와 오리와 닭이 공생하던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엠마는 홀로 농장을 운영하며 돼지를 키우다가 때가 되면 나무 그늘 아래에서 돼지를 꼬옥 안고 목을 딴다.

엠마는 죽은 돼지를 갈라 내장까지 모두 발라내 수제 소세지를 만든다.

그 농장에는 삶과 죽음이 한데 묶여 서로를 먹이고 살린다. 그게 생명이고 삶이다.






채식의 배신을 읽다보면 왜 엠마와 돼지가 순수하게 행복하고

농장에 떨어진 남자는 죽음을 앞두고 이 농장에 도착했는지 느낌이 온다.


지은이의 단순하지 않은 해결책은 3가지이다.

"자기가 사는 곳의 땅과 물을 이해하고 지역 농민과 축산업을 지원하자.

현지에서 지속 가능하게 기를 수 있는 음식을 먹자.

그리고 정관 수술을 받자."

지금의 인구는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으로 먹여 살리기에는 너무 많다.


여전히 고기를 먹을 때 죄책감이 따른다.

지금 내가 먹는 고기는 풀을 뜯고 땅을 기름지게 하며 생명의 한 순환고리로 살던 동물이 아니다.

철저히 농장에서 분리되어 땅과 풀과 상관없이 땅을 파괴한 곡물 사료로 키워진 동물들이다.

생협에서 파는 축산물은 '무항생제, 무 호르몬제'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여전히 곡물 사료를 먹고 들판이 아니라 시간의 대부분을 축사에서 보내다가 거대 도살장에서 죽는다.

그래도 가축 분뇨를 퇴비화하여 해양투기를 줄이고 유기 순환농법을 신경쓴다고 나와 있어서

되도록 생협 축산물과 유제품을 구매한다.


농산물 꾸러미 사업에서는 계절별로 다양한 농작물을 꾸러미에 담아 보내주는데

소규모 농장에서 닭, 오리, 돼지 등을 함께 키우고 축산물도 꾸러미에 함께 보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골마다 행복한 돼지와 엠마가 살고 있는 농장이 살아나면 좋겠다.

내가 구매하는 꾸러미 농장에 가서 돼지도 보고 닭도 보고 언젠가 식탁에서 만났을 때는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싶다. 

하지만 영화에서도 엠마는 세금을 밀리고 농장은 망해가고 있었지. 현실은 그렇다.

소규모 농장에서 키운 축산물은 해썹(Haccp) 기준에 맞출 돈도 없을 것이고

미국에서는 모든 도살장과 축사가 대규모화되어 소규모 농장은 도살장 찾기도 어렵다고 한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실천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 뿐이지만

언젠가 죽으면 오동나무 관 같은 거에 넣지 말고, 무화과 나무 아래 토실한 무화과 열매를 위한 밑거름이 되게 해주세요.

하지만 그 전에 행복한 엠마네 농장을 만난다면, 그럴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