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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day

고양이 낮잠같은 시간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3. 18.

2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 15일 동안 방콕과 치앙마이에 콕 박힌 여행을 했다. 

친구가 물었었다.

"넌 잘 살고 있는 거 같냐? 서른 여섯 쯤에 이렇게 살고 싶다,고 어릴적에 생각해 본 적 있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수안나품 공항에서 혼자 물끄러미 대답을 생각했다.

"뭐 그럴지도. 20대 중반에 바퀴벌레 나오는 인도의 도미토리에서

리조트나 크루즈 여행하는 돈 많은 장년도 좋겠지만, 그런 취향없어 보이는 장년 말고

나이 50 정도에는 적당히 깨끗하고 적당히 소박하고 적당히 겉멋 든,

게스트 하우스라기에는 실외 수영장이 여유롭고, 부띠끄 호텔이라고 하기엔 가격과 시설이 소박한 곳에서

겨울을 보내다가 봄이 오는 즈음에

좋아하는 일이 있는 직장과 끈적이는 쌀밥이 밥통에서 익어가는 집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뭐 지금이 그럴지도."

나이 50도 되기 전에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는데

서른 여섯에 벌써 그 정도는 해 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항에서 혼자 좋아라 웃었다.

돌아가면 우편함에 쳐박혀 있을 고지서와 빈 통장잔고는 그렇다손 치고서.


다시 나이 마흔 아홉 정도에는 우연히 거리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노래에 맞춰 가볍게 스윙댄스를 치는 여행을 하고 

좋아하는 일이 있는 직장과 끈적이는 쌀밥이 밥통에서 익어가는 집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고 생각했다.


15일간 방콕과 치앙마이에서

6권의 책을 읽고, 15쪽의 보고서를 쓰고, 하루에 12시간씩 자고 일어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걷고 걸었던 길을 산책 하고

거리에서 마주친 고양이와 개들을 쳐다보고 지냈다.

폰 불량이라 자동 로밍이 안되는 휴대폰을 대견해하면서.

이렇게 10일 정도 지나면 입에서 단내가 나고 말이 하고 싶고 지루해서 집에 돌아가고 싶은데,

딱 좋은 그 상태에서 며칠을 더 보내다가 집에 왔더니

진짜로 집이 좋아서 잠자리에 누을 때마다 마구 행복감이 기시감 느껴지듯 다가왔다.


여기까지 자랑질 엄청 했고,

문제는 돌아온지 며칠 안되서

15일 간의 외출은 어느 메고, 다크서클 콧구멍까지 내려오는 피곤심 가득한 직딩인의 하루하루인지라

그 때의 개와 고양이의 사진으로 15일을 유예하고자 포스팅을 남긴다.





코끼리 자연공원에서 코끼리보다 팔자가 좋은 동물은 바로 멍멍이.

바람 솔솔 불고 그늘지고 한적진  몫 좋은 곳에는 이놈아들이 알아서 자리잡고 있음.

일하는 것은 코끼리 돌보는 사람들, 밥 주는 관광객과 자원봉사자 뿐. ㅎ



트래킹 할 때 꼬챙이에 찍혀서 상처난 귀에는 꽃 장식을 달아주었다.

이름을 불러주었더니 꽃이 된 코끼리 @ 치앙마이 코끼리 자연공원

코끼리 자연공원에는 트래킹도, 코끼리 올라타기도, 서커스도 없다.

상처받고 학대받고 아픈 코끼리들이 여생을 잘 보내도록

함께 살고 함께 산책하고 함께 수영하는 코끼리 무리의 일상에 함께할 뿐.

코끼리야,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절이 많은 치앙마이의 한 동네 사찰을 걷다가

시원한 대리석 표지판 위에 올라가 분홍색 혀를 내빼고 잠든 고양이 찰칵.

고양이가 잠든 표지판 앞의 꽃기린 정원에는 닭 두 마리가 모이를 꼬꼬 찍어대고 있고.



방콕 카오산의 근처 일명 '치과 거리'인데

치과에서 일하는 간호사 언니가 나오시더니 가판에서 생선을 사서 뼈를 다 발라놓고 들어가셨다.

그러자 어디선가 고양이님이 납사 낼름 잡수시는 광경



암파와 수상시장 근처, 나의 로망을 충족시키는 멍멍이 광경. 

나도 만약 개를 키우면 저런 양은 냄비에 남은 밥이랑 국이랑 반찬이랑 말아서 줘야지. ㅎ-> 컨츄리 로망

(물론 염분기는 제거하고!)



오호! 고양이 밥을 위해 기부하세요~

Please Donate for Catfood



웰컴 표지판 앞에 앉아 있는 석상의 색깔을 빼다박은 고양이.



어슬렁 어슬렁만 해도 피곤심이야~고잉 홈~




내 깜냥대로 시간을 보내고 앉아 있었는데 말이지,

애들은 꼭 한번 만져보고 싶어하더군.



탐마싸 대학 캠페스 안 탁자 위에 앉아서 대학생을 물끄러미 쳐다보기.

세미나 하냐, 엉? 그룹 숙제하는겨? 엉?



세미나나 그룹 숙제보다 재미있지롱!

나도 장난감이 생겼다옹 냐옹.



맥주병에 부비부비

사진은 흔들흔들.





부릉부릉~오토바이 타고 다른 고양이와 접선 중

너도 타고 잡냐? 안된다옹.

니는 콧등에 검은 점 난 점돌이라서 오토바이에 태우기는 좀 촌스럽다니까. 아잉.


아이코, 사진 볼 때는 내사마 좋았다만은

이케 포스팅까지 하고 있을려니

다크써클만 더 내려오고 어깨는 꾸부정해지고 노트북 오래 봐서 목 디스크 걱정되네. -_-;;

15일이 유예되기는 커녕 중년에서 장년으로 진화하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그 15일은 고양이 낮잠같은 시간들이었다.


그럼 이만 총총, 이제는 내가 밤잠을 잘 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