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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day

설날 휴일 마지막 밤에 꺼내읽는 파김치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2. 11.

병원이 지긋지긋하다. 

올해는 설날 휴일이 짧아 직장에서 하루를 더 보태 쓰라고 했는데

그 하루까지 몽땅 털어 병원의 보호자용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

아침부터 밤까지 들려오는 8인용 병동의 텔레비전 소리에 묻혀

하루가 어디메 가는지도 모른 채
제 때가 되면 꼬박꼬박 나오는 병원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제 때, 남이 챙겨주는 밥이 그렇게 밥맛 없고 반갑지 않기로는 병원밥을 따라올 자가 없을 것이다. 

반찬은 잘 나왔고 조미료 안 써서 맛이 깔쌈했는데도 말이다.


설날, 이라고 내려갔더니 집이 아니라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엄마가 아파서 입원해 계셨는데 금시초문이었다.

광주와 서울 간의 거리만큼,

아니 설날 정체돼  8시간은 족히 걸리는 그 거리만큼 자식과 부모 사이가 벌어져 있었는지,

서울에서 일하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배려인지 가물가물했지만

엄마는 링겔을 꽂고 병동에 누워서 나를 맞았다. 

8인동 병동에 누워계신 할머니와 아줌마들은

"모든 늙어가는 존재는 비가 샌다"는 심보선의 싯구를 생각나게 했다.  

엄마의 몸도 비가 새어 베어들고 있었다.


2년 전, 2년 정도 언니의 병을 간병해왔던 우리인지라 병원이라면 학을 뗄 정도였다.

엄마가 걷지도 못할만큼 아프면서도 병원에 그렇게 늦게 갔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주말마다 서울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화순 전남대병원으로 가는 발걸음이 지치고 그게 미안해서 서러워질 무렵

나는 '더 이상 못하겠다' 라는 생각이 목구멍에서 말이 되어 나올만큼 구체화되었는데

엄마는 "평생 이렇게 간병하고 병원에서 살아도 되니까 언니가 사람구실 못해도 그냥 숨만 붙어있어도 좋겠다"라고 했다.

새삼스럽게 징그럽고 가혹할 정도로 미련한 어미의 사랑이 짠디 짠 전라도 젓갈 냄새처럼 훅 풍겨오는 듯 했다.

그런데 나는 엄마 곁에 있었던 병원에서의 설날 휴일이 너무 아까워
젓갈만큼 짠디 짠 자기 연민의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휴일 중 단 하루는, 인적과 차량이 드문 서울의 설날 휴일,

노란 조명이 따뜻한 카페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호기롭게 책을 읽고 싶었다.

그게 우선순위여서 결혼도 아이도 아쉬울 거 없었는데

비혼 직딩녀가 되자 가족들이 차례로 아프면서

죄책감없이 혼자 명절 휴일을 보낼 수도 없어서 서러웠다.

그리고 이런 딸을 낳고도 좋아했을 엄마가 서러웠다. 


설날 휴일을 꼬박 병원에서 지내고 저녁 늦게 도착한 서울의 집,

빨래는 한 바구니 밀려있고 방도 청소해야 하고 휴일이라고 냉장고를 텅텅 비워두고 떠나서 내일 먹을 반찬도 챙겨야 한다.

나는 생리대도 갈기 귀찮은 기분이었다.

명절은 극도의 정신적인 피로감을 동반하는데

우리집처럼 제사 음식도 안 하고 친척들은 모두 서울에서 제사를 지내 '전국자식자랑' 진상을 안 보는 집도 그랬다.

나는 나인채로 있을 수 없고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욕구에 맞춰 조용히 주어진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이해하고 받아들인다고 해도

나름 정신적인 노동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우리 엄마 뿐 아니라 병실에 계신 누군가의 엄마들에게도 진지한 예절을 갖춘 딸이 되어야 했다.

(세상의 며느리들이 비혼의 이런 넋두리에 기가 차겠지만 이쪽도 이쪽 나름의 고충이 있는 법이다.)


우편함에는 각종 고지서들이 긴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을 반기듯 촘촘히 꽂혀 있었다.

1월을 거의 '외출'로만 틀고 실내온도 10도로, 방에서 입김이 날 만큼 춥게 보냈는데

가스비가 15만원이 나왔드랬다.

기가 차서 그 고지서를 보다가

인생이 뭐, 따뜻한 방바닥 한 번 안겨주지 않다가 15만원의 고지서를 들이미는 가혹한 보일러만 같아서

청소를 하면서 눈물이 찔끔 났다. 


청소를 다하고 아이고~반찬 걱정을 하다가 냉장고를 열었는데

룸메가 부산 집에서 가져왔는지 떡국 떡이 한 사발 담겨있다.

반찬은 스킵하고 내일 아침에는 설날이 지났어도 간단하게 떡국을 나눠먹고 출근해야지.


자기 연민으로 이 밤을 보내다가

청소가 끝난 방, 빨아놓은 이불 시트를 깔고

내장까지 달궈줄 뜨거운 차를 홀짝 마시며

아름답고 서늘한 시를 읽는다.


그렇게

설날 휴일 마지막 밤에 읽는 시.


호남선 터미널에 나가면

아직도 파김치 올라온다

고속버스 트렁크를 열 때마다

비닐봉지에 싼 파김치 냄새


텃밭에서 자라 우북하였지만

소금 몇 줌에 기죽은 파들이

고춧가루를 벌겋게 뒤집어쓰고

가끔 국물을 흘린다


호남선 터미널에 나가면

대처에 사는 자식들을 못 잊어

젓국에 절여진 뻣뻣한 파들이

파김치 되어 오늘도 올라온다

우리들 어머니 함께.

강형철, <<사랑을 위한 각서8-파김치>>


올해 해야 할 일에 하나를 추가해야겠다.

엄마에게 파김치 담궈드리기,

그러니까 얼릉, 빨리 나아서 제가 담궈드릴 파김치 드세요, 엄마. 



엄마랑 나랑 내 친구랑 <카페 슬로비>에서 막걸리 한 잔 하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