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very day

직장에서 슬로라이프 하는 법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7. 1.

 인간의 얼굴을 한 직장이 가능하더냐


삶의 속도를 늦추고 한 박자 천천히라는 슬로라이프 캠페인을 하는 우리 단체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그렇게 슬로라이프 하니 좋더냐.

개인적 삶의 여정이 아니라 직장에서 슬로라이프가 가능한 구조를 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우리의 자조적 대답에서 알 수 있다. “여기서 슬로우~한건 월급 밖에 없을 걸요.”

그래서 최장의 노동시간과 노동중독으로 찌든 한국 사회에서 ‘제니퍼 소프트’를 보고 다들 뻑가는 것이.

회사 사옥의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시간도 근무 시간으로 치고어학연수도 회사 돈으로 다녀오고

신입사원은 1년간 실컷 책 보고 브레인스토밍하고한 달에 3번의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사내 영어 원어민 교사가 아이들을 돌봐주고1년의 육아휴직을 누린다

게다가 사옥은 홍대 카페 저리가라 할만큼 멋지다.

슬로라이프 철학은 있으나 (심지어 슬로라이프의 대가 ‘쓰지 신이치’ 선생님과도 교류가 활발하다

국내 애플리케이션 관리 1위 기업인 제니퍼 소프트만한 재력도 없고 후원회원이 많지 않아 

한달 한달의 월급이 보릿고개인 작은 시민단체가 고군분투하는 슬로라이프는 무엇일까. 

과연 돈 없고 철학만 있어도 ‘인간의 얼굴을 한 직장’을 만들 수 있을까.




캔들 나이트’ 동영상을 보면 슬로라이프가 가진 철학과 미덕을 알 수 있다.



의무교육은 좋을 수 있다. 의무휴가는 더 좋을 수 있다


소설가 백영옥은 ‘마놀로블락닉 신고 산책하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나서 좋은 점은 돈이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란 얘기를 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것이 프라다 백이나 아르마니 수트가 아닌 ‘시간’이란 소리다.”

슬로라이프의 핵심은 ‘시간’이다삼성전자의 직원이 연말 보너스를 누린다면 

우리는 매해 여름 연차월차와 상관없는 일주일의 재충전 휴가를 갖는다

8월 첫째 주는 무조건 사무실을 닫고 동거동락한 사무실의 컴퓨터와 선풍기와 형광등에게도 휴가를 준다

나름 환경단체라고 8명이 기거하는 사무실에 단 한 대의 에어컨도 없는데

너무 더워 일의 효율성이 떨어지자 그 해답으로 에어컨이 아니라 에너지를 셧다운 하기로 합의했다

일주일의 재충전 휴가에 연차를 붙여 쓰면개인당 최대 3주까지 쉴 수 있다

물론 직장으로 복귀하면 집을 비운 후 우편함에 쌓여있는 온갖 청구서 무더기처럼 일이 쌓여있지만

대개 그 정도는 견뎌 낼 힘을 얻어 돌아온다.


이번 재충전 휴가에는 무엇을 할까

창평 슬로시티에서 수의를 만드는 할머니와 함께 내 손으로 직접 부모님 수의를 만들어볼까

도서관에서 그 동안 미치도록 읽고 싶었던 책을 일주일 내내 꼼짝없이 읽을까.

야니면 농활?? 


옥상농사만 하다가 휴가 때 땅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인가!

모델은 우리 사무실의 나와바리, 깡 사무처장


이렇게 3번의 재충전 휴가를 보내면 한 달의 유급 안식월이 생긴다

안식월을 쓰지 않고 5년차 활동가가 되면 3개월의 안식월이, 7년차는 6개월의 안식월이그리고 10년차는 1년의 안식년을 갖는다유급 안식일에 해당하는 기간 만큼 무급 안식일을 연이어 쓸 수도 있다

나의 꿈은 10년차 활동가가 되어 1년의 유급 안식년과 1년의 무급 안식년을 합해 장장 2년 동안 쉬는 거다.

존 무어는 이렇게 말했다. 의무교육은 좋을 수 있다의무휴가는 더 좋을 수 있다”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연말 보너스보다 ‘의무 휴가’를 누리는 삶이 더 소중하다.


인간에게도 환경에도 이로운 근무시간제

일부 사람들은 슬로라이프와 일이 무슨 상관이더냐

4대강이 파괴되고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획이 나오는 마당에 환경단체가 슬로라이프를 해야 쓰겠냐

지금 그렇게 한가한 유한 마담 같은 소리 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천천히속도를 줄이는 삶은 철학적 차원의 담론이 아니라 환경을 살리는 실천이기도 하다

마치 적정 시속을 넘어 빨리 달리는 자동차가 같은 거리를 가도 휘발유를 많이 소비하듯 말이다.

소비의 대전환’이란 책은 “시간과 자연 자원은 상당 부분 서로 대체 관계에 있다이런 활동들을 빨리 하려고 하면 할수록 지구가 입는 피해는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그러므로 시간의 압박을 받는 가구와 사회는 더 심한 생태발자국을 남기게 되고 일인당 에너지 사용도 더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24시간 돌아가는 속도 사회에 대한민국 만한 곳도 없을 것이다

심한 생태발자국높은 일인당 에너지 사용량그리고 자살율 1위로 말해지는 아주 센 스트레스가 있는 사회

속도는 환경 뿐 아니라 인간의 건강 망친다.



 24시간 문을 여는 대형마트에 파자마를 입고 쳐들어가 속도사회에 대항한다며 ‘파자마 플래시몹’을 했었다

현재 24시간 문 열던 대형마트들이 자정까지 운영하고 적어도 한 달에 두 번은 ‘의무적’으로 쉬고 있다.


 6시간 근무제 혹은 주 4일 근무?! 

우리는 아직 실행에 못 옮기고 2년째 이야기만 꺼내고 있는데

 ‘보리 출판사’에서 임금 삭감 없는 6시간 노동제를 시행 중이다

오후 4시가 되면 남아있는 사람에게 “너 오늘 야근할거냐?”고 묻는단다. (부러워서 울었다..

대개 노동시간 단축이나 탄력적인 근무시간제가 일자리 나누기나 삶의 질 향상으로만 다뤄지는데환경효과도 좋다

미국의 유타주 관공서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하루 10시간씩 주 4을 일한다

그 전과 똑같은 주 40시간 노동이지만 근무일을 줄임으로써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 ‘금토일’ 3일을 연달아 쉰다

이런 변화를 택함으로써 유타주는 금요일마다 관공서 문을 닫았고 결과적으로 에너지 비용은 13퍼센트 절감

온실가스 배출도 줄였다고 한다무단 결근율이나 초과 근무 또한 줄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고.


한국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착한경제 연구모임 ()멘토뱅크의 임직원들은 주 4일 근무제를 실천하면서 1년간 토론하고 실천한 결과를 워크샵을 통해 나누고 있다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유타주처럼 하루 10시간씩 주 4일 근무하고 근무시간에는 가장 효율적으로집중하여 생산성을 유지한다

그리고 3일은 자유!


새로운 근무 형태도 있다일본에 갔을 때 ‘대두 레볼루션’이라고 3일은 도쿄 근교에서 대두(농사를 짓고 3일은 그 농산물로 만든 음식을 파는 카페를 운영하는 새로운 젊은이들을 만났다우리도 자녀를 돌보거나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 모여 환경건강교육을 하거나 텃밭을 운영해 서로 일이 가능한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고 활동비도 버는 소모임을 3개 정도 운영하고 있다. 그 중 한 팀은 도시텃밭에서 나오는 지역 농산물을 홍대 근처 카페에 공급하는 도시텃밭 브랜드 메이드 인 마포 Made in Mapo의 앞 글자를 따서 '밈 MIM'이라는 브랜드를 준비 중이다. 

많이 일하고 매여서 일하기보다적당히 자기 시간에 맞게 가치있는 일을 하고 적게 버는 삶을 지향한다.


Etc. 기타 등등의 슬로라이프

아쉽게도 사내 수영장은 없지만 시설이 없어도 할 수 있는 맨손 체조가 있다

오후 4시쯤 되면 국민체조 노래를 틀어놓고 시간이 되는 사람은 힘차게 4분 58초의 국민체조를 하며 몸을 푼다.



국민체조 중이시다 ㅎㅎ


옥상에는 태평농법이라고 우기면서 풀 한 번 안 뽑은 텃밭이 있는데

여기서 돛나물을 따와 무침을 해먹거나 딸기를 따다 먹기도 한다

점심은 한달에 3~4번씩 돌아가면서 생협에서 사온 재료로 직접 상을 차려 먹는다.



 

옥상텃밭에서 해바라기 식사


 

여성건강 '애지중지' 소모임이 텃밭에서 따온 채소로 점심 식사



나는 이런 변화가 육아와 가정을 떠맡고 자의든 타의든 사회적 성공에 덜 목 매고 보다 가치있는 일을 찾는 여성들로부터 시작될 거라고 생각한다1930년부터 1985년까지 6시간 근로제를 실시했던 켈로그 공장에서 더 많이 일하고 더 높은 월급을 요구한 정규직과 더 많은 생산성을 원했던 회사에 맞서 가장 강하게 6시간 노동제를 지지했던 여성들처럼 말이다이들은 하루 6시간 노동으로 얻은 ‘여분’의 2시간을 대안적인 삶의 활동들로 채웠다

여성들이 직장에서 일하면서 가장 급진적으로 바꿀 수 있는 사회적인 변화는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