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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 에코페미니스트의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로운~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1. 30.


세 모녀 에코페미니스트의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로운>>을 읽었다.

일다에 소개된 책 서평을 보기 전에, 제목만으로도 이것은 나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이라는 포스를 강력하게 풍겼지만,

나 역시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로운 삶을 지향하는 인간인지라 도서관에서 살짝꿍 빌려보았다. 


시골에서 공부 잘 해 도시로 나오고 유학도 다녀오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다가

도시에서 상처받고 둘째를 임신한 채 빈손으로, 애 아빠도 없이 혼자서 고향으로 낙향했으나

고향 풍경이 공장식 돼지 사육장으로 변하였던 바

다시 없는 살림에 애들을 들쳐업고 어느어느 시골에 자리잡는 엄마가 나온다.

이렇게 풀어쓰니 스토리가 상투적일냥 싶지만

책을 툴툴 털어도 나오지 않는 집의 위치에 대한 정보, 전원생활이 아닌 똥지고 나르는 레알 농부 현장,

'배운 녀자'의 허영기는 조금이라도 보이지 않는 진심을 다하여 이야기하는 마음, 이

책을 상투성에서 자유롭게 한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사는 이야기가 스토리의 거의 전부인데도

아이들에게 매몰되지 않은 자유인으로서의 엄마가 나와있어 반가운 마음이었다. 

시골생활과 귀농과 정직한 농법과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책들은 나름 섭렵했지만

농촌에서 레알 농부로 살면서 딸들과 같이이면서도 또 따로인 독립적인 엄마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남쪽으로 튀어'의 김윤식이 초딩 아들의 전화 "아빠, 나 가출해, 안 들어갈거야"라는 말에

"응, 그래랴~전화 끓자"라고 응답하는 듯한 모습이 '엄마판'으로 사랑스럽게 그려져있는데

그게 또, 학교를 안 보내고 홈스쿨링이 아니라 '안 스쿨링'을 하면서 아이들과 지낸 기록이었다.

애들에게 매몰된 도시 엄마들에게 이 책 좀 사다가 읽혀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드랬다.





'안(not) 스쿨링'의 방침은 이렇다.

미치광이가 되든 술주정뱅이가 되든 별 거지 깽깽이 같은 인간이 되든 간에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라.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한 가지만은 피하라.

바로 성공한 인간 말이다.


애들아, 우리 아마추어로 살자꾸나.

아마추어는 원래 '사랑하는 사랑(amator)라는 어원을 갖고 있단다.

우리는 뭔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이 지구를 사랑하고 생명 있는 것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보자. (144쪽)


사납고 속이고 질투하고 탐욕을 부리려는 남루한 인격은 잘 달래서

튀어나오지 않게 하는 방법을 궁리해봅시다. (146쪽)


공부는 농사일과 밥해 먹고 치우는 일상의 일이 끝나면

방에 모여 함께 읽기로 한 책을 돌아가면 소리 내어 낭독하며 이뤄진다.

서로 이게 뭔 뜻이다냐, 이런 뜻이다,  등등 수다를 떨기도 하고

내용이 어려우면 꾸벅꾸벅 졸기도 하다가

자기 수준에 맞는 영어책도 읽어보고

우리 시인들의 좋은 시를 함께 읽기도 한단다.

윤동주와 백석에서부터 김수영을 거쳐 나희덕이나 황인숙까지.

(뭐냐! 엄마랑 이런 시집을 읽다니...우리 엄마 집이 100채야, 라는 아이들보다 부럽다. +.+





두 아이, 여연이 하연이의 꼭지글은 특히 책의 묘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지은 더글러스 애덤스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마주칠 때마다 상당한 소음을 동방하는 지나치게 활발한 의견교환을 했고,

열 번 중에 열 번은 나의 눈에서 짭짤한 물이 흘러나왔으며,

때로 엄마는 손에 들고 있던 물건들을 중력의 법칙에 저항시켜가며 공중으로 날아오르게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매일 매시간 마주쳤다는 점이다. (38쪽) by 여연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딸들을 논으로 밭으로 산으로 농사짓고 나물캐도록 지도편달하고

텔레비전과 또래가 없어서 자연스레 책에서 즐거움을 얻도록 길을 내고

서로 돌아가면서 밥을 차려내 예전에 왜 자식이 모두 재산이었는지를 (바로 노.동.력.ㅋㅋ)

오늘날에도 실감하게 하는 과정이

어찌 낭만적이고 아름다웠겠는가.

그런데도, 아니 그래서 시골에서 아이들은 쑥쑥 성장한다.


책을 읽으면서

공선옥의 소설 <<꽃같은 시절>>이 겹쳐져서 떠올랐다.

'이 세상에는 돌공장의 돌공정 소리 말고도 지렁이 울음소리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 그 책 말이다. 


눈 내리는 산길을 천천히 걷는다.

걸으면서 이 하늘 아래 살고 있을 어떤 수수한 인생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눈처럼 소박한 인생들을 떠올리며 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인가를 묻는다....

그런데 이 눈길에서는 왜 그날들이 전생처럼 아득하기만 할까, 문득 웃고 싶다. (327쪽)


이런 삶들에, 나도 문득 웃고 싶다.

어려서부터 아이라면 질색자망을 했던 주제에

도은 엄마라면, 이런 모녀지간이라면,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는 삶이 세상에 태어난 선물처럼 느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