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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외과에 누워있는 너를 위해, 지지않는다는 말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1. 12.



2013년,

작심삼일도 지난 일월의 중순을 향해 찍어가는 시간에

예전에 예전에 읽었던 김연수의 책을 꺼내보았다.

2012년의 마지막 날 내리막길을 내려오다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난데없이 새해 첫날부터 병원 신세를 지게 된 달순의 병문안을 다녀오며 생각난 책.


그러니까 <<지지 않는다는 말>>은

병원에 누워서 맞는 새해 첫날,

다리에 나사못을 박아넣고 기부스를 한 다리를 베개 위에 뉘여놓다가

훨체어 타고 화장실에 자주 갈까 물 먹는 것마저 무서운 그런 날 읽어도 좋은 책이다.

(나 태국에서 같은 수술할 때는 사흘 간 오줌주머니 달아줘서 화장실 걱정 안했는데!)

달순아, 그 날은 새해 첫날이라 네가 (화장실) 무서워 하는 줄도 모르고
느자구 없게 먹을 것만 싸들고 가서 계속 묵으라고 권해드랬다.

(오줌 주머니 달고서 나는 뼈 붙으라고 아주 계속 먹었거등.)

조만간 김연수의 따뜻한 책을 들고 놀러갈께.


입원 병원에서는 정형외과가 그나마 제일 행복한 곳인거 같다.

70 넘은 나이에 고관절이 부러져 돌아가실 때까지 자리보전을 못 면한 박완서 씨의 어머니처럼 치명적인 경우만 빼놓고는.

뼈는 시간이 가면 붙고 다친 근육과 인대는 100% 회복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회복이 되니까.

병원에서 시간가면 낫는 병 만큼 복 받은 일도 없다.

그러니 일은 많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야하는 휴가라고 생각하고

김연수의 '좋은 생각'같은 말들에 공감하고 즐거워하고 그렇게 다리 뼈 붙을 때까지.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건 지지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않는다는 거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9쪽


"러너는 글리코겐을 남겨 둔 채 결승점에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다.

러너는 혼신의 힘을 다해야만 얻을 수 있는 희망을 향해 달리는 사람이다.

러너의 가장 친한 친구는 피로이며 절망이다.

그것들을 끌어안을 때, 우리는 이완과 휴식과 희망의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 289쪽


이런 말들이 좋다.

지지 않았다는 말의 의미,

피로와 절망을 끌어안는다는 것의 의미.

'긍정의 배신'에서 나온 것과 같은 거짓부렁의 긍정, 세속적인 욕망에 들끓는 과시적 긍정이 아니라

열망이 아닌 깊은 한숨이, 환호성이 아닌 침묵이 배어있는 위로.


"내가 지금 어디서 이 편지를 쓰는지 알아?

정원에 작은 식탁을 갖다놓고 푸른 숲 속에 앉아있어. ...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지. 벌써 성요한절 분위기가 느껴지네.

울창한 여름과 생명의 도취가 느껴져."

이 편지를 쓸때, 로자 룩셈부르크는 수감생활 2년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150쪽


고양이 미미를 사랑하고

감옥에서도 레몬즙과 양파즙과 수산화나트륨을 섞어 만든 은현 잉크로 톨스토이 작품을 인용한 편지를 동지들에게 보내던

다리를 절뚝이던 로자의 편지문구도 사랑스럽다.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에게 한계가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 누구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영혼이 깃든 대답을 하듯이 말이다.

그 반대의 세계는 무제한을 장려하는 사회다.

무한한 소비, 무한한 정보, 무한한 인맥..... 무한이란 아마도 죽고 난 뒤의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무한한 소비와 정보와 인맥에 둘러싸인 사람이란 아무리 뭐라고 물어도 대답이 없는 사람,

그러니까 지금 죽은 사람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155쪽


무제한을 장려하는 사회에서

새해초부터 약자가 무제한적으로 죽어가는 소식을 듣는다.

정형외과의 환자 정도는 위로할 수 있겠지만 

책 정도로 위로받기를 기대하는 것이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이 풍진 세상에서

그래도 '희망가'처럼 다가오는 따뜻한 책들 같이 읽고

어여 나아

김연수가 달리기를 하고 산책을 했던 정발산 언덕에 같이 가는 날을 기다린다.

달순, 어여 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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