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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연인도 되지마라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2. 5. 24.




출간된지 오래지난 책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으니, 신간보다는 구간을 빌려읽는 편이고

연애나 섹슈얼리티, 성 정체성 문제가 고민되었던 20대를 지나 어느덧 중년이 된바

연애이야기가 아삭한 맛을 잃어버린 시든 오이처럼 느껴져셔 그 쪽 이야기는 안 읽었다. 

연애보다는 이제, 어느 요양소가 치매 노인을 잘 돌보는지에 귀가 커지는,

늙어가는 부모님 문제에 민감해지는 정녕 중년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밝혀지지 않아서 그렇지, 노인성 치매의 일부는 광우병 때문일 수도 있대~라고

정치문제도 슬쩍 언급하는 믿거나 말거나 형의 중년;;) 


그런데 20대 초반 여성주의 교지나 여위 (여학생 위원회), 총여 (총여학생회) 방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며

30대 언니들이 우루루 결혼제도에 진입하는 것을 한심하게 여기고

찌질하게 외로워하는 늙은 언니들은 도대체 뭘 '학습'한 거냐며 이해를 못했던

자신감 넘치던 젊은 언니 투사들이 30대에 진입하면서

여전히 연애 문제로 끙끙 앓고, 외로워하고, 결혼이 인생의 화두가 되어버리자

조용히 김현진의 책을 빌려 읽었다.

우리는 아직도 20대 연애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연애는 관계맺기인데, 자기 밑바닥까지 치고 내려가 타인과 나를 주고 받는 관계의 문제는 평생을 가는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김현진보다 어린 10대, 20대 언니들을 위한 책이자

타인과 (특히 남자와) 성적 관계를 시작하고 만들어가고 풀어가야 하는 언니들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다.


1부: 아가씨들, B급 연애는 잊어줘요!
->남들의 찌질한 이야기

김어준이 말한바 '한국사회 연애의 인류학적 보고서'라 할만하다. 

(내 친구는 레즈비언 부치 이야기가 그 중에서도 제일 찌질했다며,

L언니로서 나름 심심한 소감을 전하기도. ㅋㅋ)


2부: 사랑 중독자여, 누구의 여인도 되지 말아요!
->김현진의 B급 연애 이야기


1,2부는 아침마당의 엉앵란이 아줌마들에게 선사하는 위로와 같다.

"갠츈해, 베뷔~우리 다 이렇게 찌찔하게 연애한다구. 만국공통의 일이라니까. across the universe"

엉앵란 식 자기 위로에 진절머리 치는 분이라도, 김현진의 위로는 유익하다.

 

경제적이든 정서적이든 남을 등쳐먹고 위선으로 가득찬 관계나 여우 짓 말고,

자신을 잘 알고 상대방에게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또 동시에 적당히 좋은게 좋은거지, 라고 홍상수 영화에 나오는 한국남자들 찌질함도 받아주는, 

연애하다보면 이 모든 것이 짬뽕되는 가능한 순간이 오는데,

그에 관한 이야기가 3부부터 Q&A에 걸쳐 소상히 나와 있다.

우리가 명심할 건 그냥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거,
얻어먹는다고 공주 되는 거 아니라는 거, 좀 심하게 말하자면,
빨리 잡아먹을 돼지에게 사료도 더 자주 주는 법이라는 것이다.
때로는 부모의 사랑조차 공짜가 아니다.
인간관계서 주고 받는 것은 죄다 부메랑이게 마련이다. 167


그 남자, 당신이 절벽 땅꼬마가 돼도 좋을 만큼 가치가 있습니까?
대부분의 남자는 그럴 가치가 없죠.

<사소한 일에 목숨걸지 마라>라는 책처럼 이야기해볼까요?

이것이 아가씨들을 위한 연애의 법칙입니다.

첫째, 평범한 남자에게 목숨 걸지 말라.

둘째, 모든 남자는 다 평범하다. 180 

이건 어록이지 아니한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파경으로 끝난 이유는 무엇이며, 춘향과 이 도령의 사랑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디까지나 줏대의 유뮤다.

이 도령과 춘향은 같은 십 대라도 강단이 있었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렇지 못했다.

세상이 말하듯 십 대의 연애가 굳이 위험하거나 불순한 것은 아니다.

오직 강단이 없는 연애가 칠순이건 팔순인건 상대와 자신을 해치게 마련이다.

강단이 없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랑을 지켜낼 수는 없다.

그러니 사랑하고픈 십 대 여러분, 연애보다 줏대가 먼저다.

일단 줏대가 있으면 연애뿐 아니라 여러 가지 일에도 실패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이니까. 161


특히 빵 터진 부분 '연애편견을 해부하다'편 

편견: 여자들은 모이면 수다를 떤다.
진실: 남자들도 모이면 수다를 떤다. 그것도 훨씬 오래, 많이.
남자의 수다는 주제도 한정되어 있어서, 크게 보면 둘로 나뉜다.
1. 군대
2. 여자

게다가 그들 역시 우리만큼이나 뒷담화도 엄청 잘하지만,

여자들은 "아유, 우리 뒷담화 무지 오래 갔네"하고 인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남자들은 '오늘도 건설적 비판을 많이 했군'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163

선입견: 남자는 삐치지 않는다.
진실: 남자는 엄청 자주, 오래 삐친다.


안 삐쳤다고 아무리 외쳐도 "자기 삐쳤어?"의 쌍비읍도 입에 담지 말고 그냥 자상하게 달래주거나 애교나 떠는 것이 속 편하다. 치사스럽다고? 다 연애하려면 어쩔 수 없다.

원래 남자란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가는 생물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힐책하는 조물주에게 뭐라고 대답했던가?

아시다시피, 그는 "저 여자가 줘서 먹었어요"하고 대답했던 것이다. 164


마지막, 어록

내가 똥파리 끈끈이냐. 암튼 똥파리들과의 수많은 연애 끝에 자괴감에 시달리다가 어느날 불현듯 깨닫게 되었던 사실.

연애의 정수는 추억입니다. 사실 남는 것은 뭣도 없거든요.
하지만 모든 기억이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기억이 추억이 되기 위한 자격을 회득하는 건 아름답고 재미있는 기억일 경우죠.

처절하게 삽질하고 바보 짓했던 부끄러운, 쪽팔린 이야기는

아무리 오랜 시간 묵히더라도 예쁜 추억이 되어주지 않아요.

제일 중요한 건 삽질이 아니라 '부끄러워'하는 거예요.

닥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되,

단 하고 싶은 대로 했다는 것을 창피해해하거나 자학하지 마세요.

그것이 가장 해롭습니다. 181


언니들에게 건투를 빈다.


우리의 김현진 여사는 기룡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건투를 빌며 이 책을 집필했다. 

장하다.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