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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마시고 숨쉬는 것들의 반란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2. 8. 12.





가족이 암에 걸렸을 때 찾게 되는 책은 처음에는 '서울대 의료진이 알려주는 위암의 A to Z'같은

그 암의 기본적 정보가 담겨있는 책이다.

병원의 치료가 무용지물로 보이기 시작할 즈음, 대체의학 관련 서적을 무슨 어린이 문학전집처럼 사다 쟁인다.

우리 가족은 오행초 따러 새벽 산을 뒤기지도 했고 중국에서 장뇌삼을 구해 들여오기도 했고

아침마다 자기 오줌을 받아먹는 요로법도 실천해보았다. (울엄마는 끝까지 거부-_-;;)

항암치료가 3,4차가 되어도 차도가 안 보이면 '청춘은 청춘, 암은 암' 같은 오방떡 소녀의 책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암 환우회가 몇 십년씩 이어지는 이유가 그런 거다.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니까.



내가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병원을 퇴원한 지 몇 주 후에 있었던 일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룸메이트가 짐을 싸고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암환자와 같은 방에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나를 재정의하는 순간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벌거숭이 매트리스를 보면 울컥 눈물이 터져나오니 말이다. p78


<<먹고 마시고 숨쉬는 것들의 반란>>의 벌거숭이 매트리스 부분을 읽으면서 울컥 눈물이 터졌다.

20대 초반 방광암에 걸린 그녀가 감당해야 했던 우주의 무게 같은 것이 느껴졌다.

도대체 원인을 모르니까.

가족력이라고? 지은이는 가족력이 있긴 하지만, 결정적으로 입양아였다.

그럼 생모나 생부가 아마 방광염에 걸렸을 가능성을 생각하겠지만

스칸디나비아의 쌍둥이연구를 보면 암 발병률은 원래 부모보다 입양가족과의 연관성이 5배나 높다.

유전적 요인보다는 함께 먹고 마시고 숨쉬는 환경에서 암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는 의미이다. 


<그림: Vassar College - Environmental Risks and Breast Cancer>에서 퍼옴

빨간색은 입양부모와의 암 연관성, 녹색은 생부모와의 암 연관성 (일란성 쌍둥이로서 유전적 요인은 거의 동일)



이 책은 어디선가 암의 사망률과 발병률 따위를 나타내는 그래프의 한 점들을 이루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보건 책이자 환경 책이지만, 그래서 나는 암환우의 체험기가 아닌 이 책을 통해 위로받고 또, 분노했다.

때로는 유약한 위로보다는 아픈 분노가 우리에게 힘이 된다.

암 환우를 위로하지는 않지만, 암에 걸려서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는 고마운 심정 따위는 나와있지 않지만

암환자의 경험이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나는 암에 걸렸는가, 를 사회를 향해 묻고 있었다.

그녀는 어릴적 살았던 자기 마을의 사람들, 흙, 물, 공장, 매연, 대수층, 불을 훑는다.

그녀의 경험치 안에서 환경보건과 역학의 통계는 암환우의 스토리텔링으로 섞여 든다.


그 스토리에서는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첼 카슨도 위대한 과학자보다는 고통받던 암환우였다.

레이첼 카슨이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지는 알았지만 책을 쓰는 동안 비대해진 종양이 신경세포를 짓눌러서

오른쪽 팔을 쓰기도 힘들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그 팔로 그녀는 <<침묵의 봄>>을 썼고 결국 DDT 살포가 금지되었다.


레이첼은 자신의 병에 대한 그 어떠한 공적 또는 사적인 논의도 엄격히 금지했다.

이런 결정은 환경오염으로 인해 사람이 치루는 대가를 기록하고 있었던 그녀 자신이

과학적, 객관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었다.

그녀는 기업계의 적들이 공격을 개시한 그곳에서 더 이상 진격하게 할 생각이 없었다. p68 


결국 레이첼 카슨은 지금보다 훨씬 적은 정보가 있던 1960년대에

환경요인과 암의 관련성이 '긴가민가'하고 조금씩 드러나면서 그러한 가설 자체가 화학기업의 집중포화를 받던 그 시점에

암환우라고 밝힐 수가 없었다. 과학자가 아니라 암환우가 어깃장을 놓는 것처럼 보이니까.  

"혼자 계실 때는 뭐해요? 언제가 외로우세요?"라는 맞선 자리에서 할 말 없어서 나오는 질문에 답을 하자면

나는 이런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의 자기연민도 허락되지 않은 순간.

레이첼 카슨이 침묵하며 홀로 책을 쓰는 그 순간의 외로움.


내가 암 진단을 받은지 3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거의 변함없이
우리가 사용하는 8만 종의 합성화학물질 중 발암성 감사를 받은 물질은 약 2퍼센트뿐이다.
1976년 이후 정확히 5종의 물질만이 독성물질통제법으로 사용이 금지됐다.

p 13


30년간 우리가 이뤄낸 성과라면 5종의 독성물질을 금지한 것과

레이첼 카슨과는 달리 <<먹고 마시고 숨쉬는 것들의 반란>>을 지은이는 자신의 방광암 병력을 밝힌 채 책을 썼다는 차이이다.


'미리 조심의 원칙 precationary principle'이 적용되는 사회는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