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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이야기로 더 풍성해질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2를 기다리며

by 불친절한 금자씨 2026. 10. 27.

뒤늦게 김규진 님의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를 읽었다. 김규진 규지니어스 님의 트위타를 봐서 이바구와 꺼드럭의 위트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책을 보니까... 나는 분명 책을 읽고 있는데 스탠딩 코메디 보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 완전 깔깔 대며 읽었다는 말입니다.

그치 그치, 성소수자의 이야기가 현실이 그지 같을 지라도 슬프고 비참하고 억울하고 우울하고 죽고 싶은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도 있는 거였다. 나는 벌써부터 결혼 후 딸 '라니'를 낳고 키우는 육아 이야기가 스탠딩 코메디 스타일로 기록되어 있을 이 책의 후속작을 열렬히 기다리고 있다. 그 책은 얼리어답터가 되어 신간이 나오자마자 읽고 리뷰할 것임을 명세합니다.

혹시 나처럼 레즈비언 결혼 이야기가 뭐 비슷비슷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직 이 책을 안 보신 분들이 있을까 오지랖 넓은 걱정으로, 뒤늦게 이 책 리뷰를 남긴다.



지인에게 얻어서 읽은 무려 싸인본...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깨알같은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는 법, 직장에서 결혼휴가와 경조사비 받는 법, 레즈비언 결혼식 준비와 (심지어 자세한 경비 내역까지) 해외 혼인증명서 받는 법, 파트너와 대한항공 마일리지 합산 방법, 악플을 혼쭐로 대응해주기 등의 귤팁이 넘친다. 이것은 레즈비언으로 잘 살기 매뉴얼, 그아먈로 레즈비언 자기 계발서와 실용서이기도 한 것이었다. 꼭 레즈비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좀 디테일만 바꾸면 세상 모든 소수자들이 잘 살기 위해 갖출 멘탈과 태도에 대한 긍정적 기록이기도 하다.

만국의 소수자들이여, 이 책을 읽으시와요. 깔깔 웃으며 나인 채로 살고자 하는 소수자들을 위한 정신의 자기 방어 훈련술이자 주짓수가 아닐까 합니다.  





온 집안에 커밍아웃 하는 팁

커밍아웃을 했다가 집에서 쫓겨나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어릴 때 집에서 나가라는 말을 들어도 추워서 싫다고 방문을 잠그고 침대에서 농성하곤 했다. ...

가족 모두가 모여서 차분하게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내 결론은 설날, 즉 제삿날이었다. 조상님들을 추모하는 대의를 앞두고 있는 데다 큰집에 다 같이 모여 있는 환경상 나를 내쫓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괜히 큰소리를 내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내의 성 정체성을 알기라고 했다간 오히려 아빠가 불효를 저지르는 일이 될 터였다. 뜨거움으로 뜨거움을 다스리는 이열치열과 같이 보수성으로 보수성을 다스리는 전략을 택한 셈이다. 지금 돌이켜봐도 참으로 절묘한 수다.

38-39쪽


온 직장에 강제로(?) 커밍아웃 당한 썰
ㄴ 규진 님 말씀처럼 책 읽는 내낸 이 소비재 회사는 어디일까 궁금했다. 나 이 회사 제품을 사서 쓰고 싶네 그랴. 규진님 꿈은 이 회사 CEO 되는 거라고. ㅎㅎ

"규진이가 살도 배고 여자친구도 생겼대요."
(직장 회식 술자리에서 이사님이 기뻐하며 소리 침)

생각해보니 나는 한 번도 이사님에게 내가 완전히 터놓고 사는 사람은 아니라는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같이 첫 식사를 한 날부터 여자친구 얘기를 했으니 오픈리 레즈비언이라고 오해할 만했다.  ...

나는 일련의 사건을 약간의 사캐즘을 담아 "위력에 의한 강제 퀴어 프렌들리함"이라고 부른다. 물론 우리 회사 영업팀 직원들이 동 나이대 대비 열려 있기 때문에 빠르게 나를 받아들인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보수성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니 참 모순적이고 유쾌하지 않을 수 없다.

(+ 혹시 인사팀에서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 챕터를 통해 회사 이미지 제고에 기여한 바를 십분 고려하여, 책 집필이라는 사외활동을 한 것을 참작해주기 바란다.)

48-49쪽


성 소수자들의 보수성

이렇듯 변화하는 세상에 남은 마지막 혼인 수호자들은 바로 동성애자들이다. 미혼으로 남을 완벽한 핑계를 버리고 한 사람과 살고 싶어 하다니, 세간이 생각하는 문란한 이미지와는 조금 괴리가 있다. 적어도 내 주변의 동성애자들은 변화하는 시대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결혼에 집착했다. ...

각자 지닌 결혼의 정의는 조금씩 달랐지만, 국가에서는 허가해주지 않고 이성애자들 사이에서는 시들어진 유행을 굳이 나서서 꾸역꾸역 답습하고 있었다.

67쪽


규진님 아버님의 어록 (그 전에 이미 결혼 안 한 거니 결혼비용으로 MBA를 보내주겠다는 어록도 남긴 바 있는 바로 그 아부지)
ㄴ 이렇게 멋진 말을 하시고는 결혼식에는 안 오시고, 김규진 님 인터뷰가 9시에 나가니까 잠시 절연하시기도 하였다. 위의 어록처럼 가족에게 커밍아웃한 것이 꽃밭 만은 아니니 너무 부러워서 배 아파하시지 말길.

"사실 너는 너희 엄마랑 동성동본 결혼을 했어. 외할아버지 반대가 심해서 내 본관을 다르게 말하고 다니기도 했고.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누가 동성동본 얘기를 하냐? 동성 결혼도 30년 뒤에는 아무것도 아닐 거야."

105-105쪽



악플러에 대응하는 법
ㄴ 저는 밤 고구마, 호박 고구마 다 좋아해요.

하지만 악플러를 고소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고소당한 사람이 평범한 이웃이라면 느끼는 바가 있을 거다. 지금은 나도 가족들도 법적 대응이 두렵지만, 이렇게 선례가 쌓이다 보면 악성 댓글 작성자들도 처벌이 두려워 몸을 사리는 때가 올 거다. 나는 앞으로도 조용히 하지 않고 시끄럽게 나댈 거다. 사이다가 없더라도 고구마를 꾸역꾸역 소화해보지 뭐. 난 원래 밤고구마 좋아한다.

172-173쪽


큐앤에이 결혼 심화편
ㄴ 유언대용신탁이라는 신박한 방법도 알려주심 (실용서 맞음)

상속이나 증여는 방법이 있을까요?

... 다 조금씩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 유언무효확인소송이나 유류분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게 되면 남은 사람이 너무 힘들겠지요. ...

제 모욕죄 고소 건을 대리해주고 있는 법률사무소 '푸른봄'에서는 유언대용신탁을 추천하였는데요. 최근 (2020년) 수원지방법원에서 일정한 조건하에 유언대용신탁한 재산은 유류분 반환 대상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서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직장 생활 하시는 규진님이 또 책을 집필하기는 참 힘들겠다 싶으면서도, 어여 2번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아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다 읽고 나니까 마음에 감동과 긍정 뽕이 차오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