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곳곳에 정수기가 있고 아리수가 가가호호 점검해주며 수돗물 마시라는데도 생수를 사서 마시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한국보다 (근거는 없지만서도) 수돗물 관리가 부실할 거 같고 덜 위생적일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드는 동남아와 인도를 여행한다면? 열대 지역이라 부패도 빠르고 미생물 번식도 잘 해서 더욱 조심스러울 것이다. 한국인들은 샤워 필터까지 챙겨서 여행 가는 장비빨의 민족인 것들, 하물며 다른 나라 여행 가서 수돗물을 마신다고?
제로웨이스트 도시 스터디투어로 인도 케랄라 주에 왔다. 적어도 5년 이상 비행기 안 탄다고 해놓고선 오년 채우자마자 다시 뱅기 타는 나란 인간이여... 하지만 프로그램을 다 셋팅해놔서 나는 몸만 따라가면 되는데? (+사비...) 아놔... 패키지 여행 극혐하던 젊은 시절은 다 지나고 이제는 머나만 뒤안길 돌아와 남이 셋팅해준 경로만 쫄쫄 따라댕기고 싶음. 이렇게 패키지 여행 다니는 으르신이 된다.
그리하여 남인도인 케랄라 주에 오게 되었다. 내 남은 인생에서 최대 7번까지 비행기 타기로 했는데 한번 제하는 것으로 하고, 탄소상쇄기금을 구입해서 때운다.
나는 최고로 싼 비행기를 골라서 샀는데, 듣도 보도 못한 기내 수하물 5킬로 제한 표였다. 나 비행기 타본 30년 인생에서 에어아시아 7킬로 기내 수하물 한도보다 더 짠 항공사는 이게 처음이여... 또다시 강조하지만 넘들은 지원 받은 그린아시아 프로젝트에 나는 사비를 써서 쫄래쫄래 따라온 거라, 15킬로에 49,000원 정도 하는 수하물 추가를 단호히 패쓰했다. 사비라니까요.
6개월 여행해도 8킬로 정도 짐을 싸들고 다녔지만 5킬로는 좀 하드캐리하군, 싶어 필터 달린 물병을 짐에서 덜어냈다. 따뜻한 커피 담을 스텐 텀블러와 망고쥬스 테이크아웃할 1리터 마이보틀 딱 두개만 챙겼다. 필터 달린 물병은 입구가 좁고 필터가 달려 있어 정수용으로밖에 쓸 수 없다. 가끔 과일쥬스 사먹을 때 빼고 비어있을 1리터 마이보틀에 깨끗이 씻은 숯(흙살림 백탁)을 넣었다.



과일쥬스 리필할 때만 빼면 이렇게 물병에 수돗물을 담고 숯을 담아 하룻밤을 재운다. 밤 사이 미세한 숯 사이로 물이 왔다갔다 들나들면서 정수가 된다. 남인도에서 나는 이렇게 간단히 물을 정수해서 마시는 중이다. 생수는 구입하지도 않을 뿐더러 호텔에서 하루에 하나씩 주는 생수도 필요없지예. 숯 가루가 좀 떨어져 물에 떠다니기도 하지만 하룻밤 가만히 재워두면 아래에 가라앉는다. 물 마실 때 천천히 마시고 숯가루가 가라앉은 물병의 바닥에 남은 물은 버리면 된다.
그런데 연수팀 따라 나름 하루 오만원은 하는 중급 호텔에 왔더니 전기 주전자가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일본 숙소인 줄 ㅋㅋ -> 25년 전 인도 여행할 때처럼 인도 길가에 소 다닌다고 생각했기에 전기 주전자는 꿈도 안 꿨다. 그나저나 소가 한 마리도 안 보여서 의아했더랬다. 연수팀 가이드해주시는 인도 제로웨이스트 계의 사부님 왈 "이제 소들은 집에 가면 있습니다"라고... 집에서 키우고 있어서 길가에는 없다고 하심 ㅋㅋ)
그래서 나는 전기 주전자에 수돗물을 데워 따뜻하게 차도 타 마시고 전날 밤 끓인 물을 식혔다가 다음 날 물병에 담아 외출했다.

숙소에 일회용품 그득그득 있지만 전기 물 주전자와 도자기 컵만 요긴하게 사용했다. 와, 배탈이나 설사를 잘 안 해서 그런지 인도에서 수돗물 마시기 어렵지 않네. 10일간의 여행 짐을 5킬로 내로 싸는 것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하지만 이건 개인이 숯까지 싸들고 다녀야 하는 거니까 시스템적인 대안이라고 볼 수는 없다. 태국 호텔에서 종종 보이는 유리병 재사용 생수나, 물통에 정수된 물을 리필하는 물 자판기가 진정한 답이 아닐까.




유리병을 모은 후 세척 소독하여 정수된 물을 공급한다. 태국의 꽤 많은 숙소에서 유리병 재사용 생수를 제공한다. 유리병이 여러 번 사용되었다는 증거는 유리병에 표면에 난 기스로 쉽게 짐작된다.


정수된 물을 물통이나 물병에 리필하는 물 자판기로 방콕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생수보다 훨씬 저렴하다. 방콕 삼센로드 근처에 있어서 카오산 람부뜨리 거리에 묵을 때 삼센로드에 걸어가 물을 리필해 먹었다. 정작 관광객이 많은 카오산로드에는 많이 없다는 점이 아쉬울 뿐.
배탈이 잘 나고 위생상태가 걱정된다면 라이프스트로우의 살균 물병도 있는데, 물 1리터를 넣고 90초 간 넣어두면 물 속의 미생물이나 오염물질을 제거해주는 소독기도 같이 구매할 수 있다. 이 제품은 접이식이라 여행용으로도 너무 좋지만 가격은 좀 있는 편. 국내 제품으로는 쿠쿠에서 정수 필터가 달린 텀블러를 판매한다.
라이프스트로우 살균기는 카우치서핑으로 우리 집에 며칠 머물던 프랑스인 '진저'가 알려주었다. 진저는 내가 만난 카우치서퍼 중 최고의 성품이었음은 말해 뭐해... 한국 살면 내 베프 삼았을 거임.




+
공항처럼 공공 음수대가 잘 관리되면 생수 대신 음수대를 사용할 사람도 늘지 않을까. 공항은 되는데 서울역이나 버스터미널이 안 될 이유는 없을 거고, 공공음수대에 투자를 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생수를 더 당연히 여기는 듯 하다.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서 인도 트리반드룸으로 가는 비행기 환승할 때, 나는 보았다. 환승 게이트에는 음수대 옆에 온수가 나오는 정수기도 있더라. 여행객들이 줄 서서 텀블러에 온수 담아가는 광경이 종종 목격되었다. 물론 나 역시 스텐 텀블러에 따뜻한 온수를 담아 인도로 오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하는 4시간 내내 따뜻한 온기를 훌짝거리며 트리반드룸에 도착했다. 만세!
결국 이미 보편화된 생수를 넘어서려면 더 편리하고 더 깐깐하고 접근성 좋고 경제적인 공공 음수대가 곳곳에 생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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