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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20. 1. 1.

 

오랜만에 페미니즘 책을 읽었다. 

아니지, 오랜만에 책을 읽었지. 

2019년 만큼 책을 안 읽은 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2019년 나의 한 해를 요약하자면,

한 권의 책을 썼고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냉장고 파먹기'처럼  

머리에 알량하게 축적된 것들을 꺼내먹은 한 해살이.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냉동식품과

얼려놓은 대파까지 파먹고 텅텅 빈 상태가 되어

말 잘 듣는 어린이마냥

2020년 새해 첫 결심을 책 읽기로 정했다.

 

'엑스엑스 룸메' 씨앗이(역대 룸메들 중 최애 캐릭터)

두 달 쯤 전에 빌려준 페미니즘 책, 

권김현영 님의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진화하는 페미니즘>>을 읽었다. 

 

잘 쓰여진 페미니즘 책은 독자에게 이런 느낌을 시전한다.

평생 도시에서만 살던 사람이 바다를 처음 보는 감동 같은 거.

시야가 환해지는 경험. 

진짜 다른 세상이 있었어. 

 

냉장고 파먹기만 하던 머리에

민달팽이가 숨어있을 것 같은 신선한 채소의,

일용할 양식이 스며든다. 

머리가 아니라 몸에도 듬뿍.

정희진 님 가라사대 

책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겪는 것이라고 했으니까. 

 

 

이미지 출처: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1708513

 

(집단으로서의) 남성이 여전히 사회 전반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한국에서
'한남'이라는 말은 소수자나 약자를 공격하는 의미에서의 혐오발언일기보다는, 
성차별에 저항하는 대항발화counter-speech일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만약 북미나 유럽에 여행 간 한국 남성에게 
그곳에 사는 백인 여성이 이 말을 했다면 어떨까.
이런 상황에서 한남이라는 말은 
아시아 남성에 대한 인종차별에 기반한
혐오발언이 될 수 있다. 
...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어떻게 말했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것이다. 


(한남이) 대항발화라면 혐오발언이 아니니까 괜찮은 걸까.
...
나는 한남이라는 단어는 효과와 당위 모든 면에서 실패라고 생각한다. 
행위를 중심으로 혐오표현을 만들면 
그 행위를 규제하는 효과가 생기지만, 
해당 집단의 정체성 자체를 멸시하여 지칭하면
반동만 강해진다. 


된장녀, 맘충 등 여성에 대한 멸칭은 
대부분 특정 행동에 대한 비난으로부터 시작했다.
여성들은 멸칭의 지시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행동했다. 
이는 여성을 통제하는 효과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멸칭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해서 거리를 둔 결과
그것이 여성혐오라는 것을 인지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진화하는 영혼, 진화하는 페미니즘 p5~6 
 

 

말도 많고 응원도 많고 탈도 많은 '한남'의 맥락을

이토록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다니, 

더 보탤 말이 없다.

밑줄 그을 뿐. 

 

(1975년부터 본격화된 문화 페미니즘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의 의미가 
한 개인의 삶이 어떤 추상적인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규범적 뜻으로 개조하는 데 몰두하였다.

머리 길이, 문신, 화장, 성형, 혼인 여부, 성적 취향, 옷 입는 스타일 등이 
모두 개인의 급진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개인이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선택은
모두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을 통과해야만 했다. 

...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급진 페미니즘의 핵심 슬로건은
점점 집단적 행위의 힘, 공동의 목소리를 조직해내는 문제가 아닌
대안적 생활방식을 개인이 선택하는 문제로 바뀐다. 

그리하여 에콜스는 다시 묻는다. 
"개인적인 정치적이라면, 
정치적인 것은 개인적인가?" 

''정치적인 것'의 의미가 이미 몫을 가진 자 사이의 공정한 배분으로 축소된
이러한 자리바꿈에 대한 경고는 
한국 사회에서 새겨들을 부분이다. 
정치를 개인의 권리로만 생각하는 이들은
자격을 제한하고 무임승차자를 골라내는 일에 몰두한다. 
이는 행방적이지도 급진적이지도 않고 단지 규범적일 뿐이다. 

이미 만들어진 모든 규범을 의심하고 이에 도전하는 것이
페미니즘 정치학의 핵심 정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백래시는 아직 제대로 오지 않았다.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백래시 시대를 사는 법 p246

 

<<백래시>>와 <<나쁜 여자 전성시대>>를 갈무리한 

권김현영 님의 질문은 위의 두 책만큼이나 가치롭다. 

"정치적인 것은 개인적인 것인가" 

 

페미니즘 뿐 아니라 플라스틱 프리,  제로 웨이스트 등의 환경운동 등 

모든 생활형 대안운동이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는 질문은

개인적인 정치적인가가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 개인적인 것인가에 대한 날선 감각이다. 

 

대안적 생활방식과 개인적 실천은 

'집단적 행위의 힘, 공동의 목소리를 조직해내는 문제'에 가닿아야 한다.

그리고

집단적 결정과 제도는 가장 약하거나

그에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개인의 삶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책을 권해준 씨앗에게 감사.

책의 인용구를 씨앗에게 전한다. 

어록의 대가 이반 일리치의 말 재인용. 

 

"공동체적인 삶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각자가 가꾸는 우정의 결과이며, 

사회는 이렇게 맺어지는

우정의 정치적 결과만큼만 좋아질 수 있다"

여자들의 우정을 그리는 방식 p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