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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 / 서필훈 저

by 금자 불친절한 금자씨 2021. 1. 2.

 

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이라니, 저자인 서필훈 님을 처음 만난 것은 약 20년 전 세미나 후 뒷풀이 모임이었던 것 같다. 안암동 보헤미안에서 만난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드문드문 건너건너 잠시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 아, 로도스(서필훈 님 별칭)네 집에 우르르 몰려가 그가 없는 집에서 1박 2일으로 놀다가 짜장면 시켜먹는다고 그 집 주소를 물어본 적 있지.

 

그 집에서 1박 2일을 보낸 후 지난 20년 간 친구들을 통해 유명해졌다더라, 빚은 얼마라더라, 빚도 재산이지, 등등 가끔 안부를 전해 듣고는 했다. 암튼 아는 척 자랑질하면서 결국엔 반갑다고. 책도 너무 좋아서 술술 한번에 읽어버렸다고 내 안부도 셀프로 전합니다. 

 

이 책의 장르로 말할 것 같으면 커피를 매개로 오지랖 넓은 관계를 통해 장사를 하는 경영서, 좋아하는 일과 생계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 중 어떤 업을 고를지는 알려주는 멘토링 북, '걸어서 세계 속으로' 커피 버전으로 세계 오지를 탐험하는 여행서, 그리고 커피에 얽켜든 이디오피아의 랭보와 볼리비아의 체 게바라가 툭툭 튀어나오는 인문학 서적이다.  그래서 빠져든다. 요즘 나도 알맹상점이라는 구멍가게를 하다 보니 커피 리브레의 사업 초창기 돈 이야기가 내 이야기만 같아서 더 그랬을 수도. 

어떻게 보면 비용과 시간의 낭비로 보일 수 있지만 나는 내 힘이 닿는 한 계속 이렇게 하고 싶다. 삶과 비즈니스에는 눈앞의 숫자와 효율이 전부가 아닌 경우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66쪽

내 마음만 같아서 밑줄 긋고. 

 

좋아하는 일의 즐거움을 한 단어로 축약하자면 설렘이고 그 치명적 징후는 빨리 출근하고 싶다(?)는 예사롭지 않은 마음 상태다. ... 내 경험에 기반해 추가 증상들을 더 열거해보자면, 시간이 빨리 간다, 잘 지치지 않는다, 실패가 실패로 느껴지지 않는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내가 정하게 된다, 남 얘기가 들리지 않는다,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환상과 희망이 실재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다, 혼자 울고 웃는다, 내면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공상을 많이 하게 된다. 써놓고 보니 번아웃이 임박한 일 중독자의 증세와 다를 바 없다. 

38-39쪽 

흠, 일 중독 추가 증상들에 나는 100% 해당한다. 동네 자영업은 이런 뽕 맞은 기분으로 일하지 않는 한 업으로 삼을 일은 아닌 건가?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좋아서 하는 가게들로 골목이 가득 채워진다면 그건 또 얼마나 멋질까.  (살아남아야 하지만:) 

 

오늘 아침 맛있게 마신 커피가 어디서 왔는지 누가 어떻게 생산했고 정당한 대가를 받았는지, 커피 생산자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제때 밥을 먹고 지내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오랫동안 우리는 커피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미처 마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생가하는 스페셜티커피는 좋은 음료 품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의 얼굴을 한 커피다. ... 스페셜티커피가 커피 산지의 생산자가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하는 데 기여하고, 생태계 보존에 도움이 되고, 생산자부터 최종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커피가 거치는 길 위에 많은 사람들의 가치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으면 한다. 

63쪽 

알맹상점에서는 2021년부터 커피 리브레의 커피를 재사용 용기에 담아 무게별로 사가도록 구비할 예정이다. 공정무역 이상의 값을 쳐주고 커피 직거래 농장을 운영하고 일년에 4개월 동안 커피 농장을 방문하는 커피 리브레의 귀한 커피를 알맹이만 담아 놓아야지. 플라스틱 껍데기를 까는 것만큼이나 제품의 생산 이력, 생산지 환경, 생산자와의 관계가 중요하니까. 그런 물건을 파는 게 좋아서 상점을 운영한다. 

 

영국 왕립식물원의 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따라 현재 아라비카 재배지의 99.7%는 2080년까지 커피 재배에 부적합한 지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대부분의 커피를 숲에서 야생 혹은 반야생으로 재배하는데 지난 30년 동안 숲이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커피는 온도에 예민한 식물이다. 평균 기온이 1도만 달라져도 맛이 달라지고 2도가 달라지면 생산성이 급락한다. 3도가 달라지면 그 지역에서는 더이상 자라 수 없다. 1960년대 이래 에티오피아 연평균 기온은 1.3도가 올랐고 온도 상승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현재 전세계 커피 재배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인 아라비카 품종은 유전적 다양성이 너무 부족해서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와 질병의 위협에 취약하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카파의 깊은 숲에 존재하는 야생 커피들이 가진 유전적 다양성은 무궁무진하다. 지금까지 밝혀진 품종만 수천 종류다. 

143-144쪽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 우리는 현재 마시는 아라비카 품종의 커피를 마실 수 없다. 커피로 아침을 시작하고 커피에 위로받는 일상이 통째로 무너진다. 내게 커피는 하루를 시작하는 의례이자 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상 제의 같은 거다. 그러니 기후위기에 대항하는 활동에 나서야지 별수 있나.

 

모카포트에 내린 커피를 마시며 책을 덮는다. 이 책은 알맹상점 1층 '공유 물건' 선반에 둘 것이니 커피를 좋아하는 누구든 읽어주세요. 헌책방에 파시면 안 되고요:) 저는 새 책을 사서 얼릉 읽고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돌려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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