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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없네 잡이없어] 프리랜서 활동가가 사는 법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8. 9. 29.


근 1년 간 '프리랜서 활동가'로 살고 있다. 누군가 어떻게 하다 직업 활동가가 되었냐고 묻길래 '팔자가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프리랜서 활동가야말로 팔자대로 흘러온 결과랄까. 프리랜서로 일을 한 적도, 프리랜서를 할 만한 뚜렷한 기술도 없는데 흘러오다 보니 불현듯 프리랜서가 되어 버렸다는 뜻. 


재작년 6개월 안식월 동안 가장 그리운 순간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던 시간이었다. (무려 유럽과 동남아를 쏘다니고 있었단 말입니다.) 아침에 직장으로 출근하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정하고 평온한 삶의 '루틴'이 좋았다. 입춘, 말복, 처서 같은 절기처럼 시간이 가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하루의 정갈한 질서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아침마다 '어디 가서 일하지' 고민하며 노트북을 바리바리 싸들고 집을 나서고, 점심에는 '어디 가서 뭘 먹지' 너무 많고도 너무 좁기도 한 선택지가 버겁고, 밤에도, 주말에도, 연휴에도 일하는 꼬라지가 되었다. 프리랜서를 하면 평일 낮에 은행도 가고 한적한 영화관에서 영화도 보고 시간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따위, 천연 암반수보다 깊이 파묻었도다.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프리랜서 활동가로 먹고 사는 법을 묻는다. 디자인, 영상, 홍보 같은 특별한 기술이 없는,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보고서 작성, 기획, 실무뿐인 활동가가 월급을 받지 않고 생계가 가능하냐는 질문이었다. 시민단체에서는 나오고 싶지만 일반 회사는 들어갈 생각이 없다, 하지만 조직의 보호막 없이 프리랜서 활동가로 살 수 있는지 가늠하는 자리였다. 나는 망원동의 한 카페에 앉아 단호박으로 답했다. 


"저, 내년에는 받아주는 곳 있으면 단체 들어갈 건데요?" 

 

출근이 넘 싫어서 월급이 반토막나거나 들쑥날쑥해져도 감당할 수 있다, 혹은 추석 성묘 가는 길에 일하는 한이 있어도 평소 시간을 자유자재로 쓰는 것이 최우선순위다, 이 정도라면 프리랜서 활동가를 하시라. 그 정도로 자유로운 성향도 아니고 잘 팔리는 기술을 보유한 것도 아니라면, 말리고 싶다. 


10년차 팀장 월급이 청년 공공일자리 월급보다 낮을 만큼 열악한 단체라도 단체에 붙어있는 것이 낫다. 연월차, 4대보험, 퇴직금, 식대, 공간유지 및 관리비 등을 생각하면 월급보다 최소 20%는 더 벌어야 '똔똔'이다. 그런데 월급만큼 벌기도 힘들고 그보다 더 벌려면 남들이 찾는 기술이 있든가, 인지도가 있든가, 아니면 단체 활동가 노동강도X1.5 배 정도로 1.5배 더 많은 시간 일해야 한다. 고백하자면, 왜 사람들이 '노잼' 공무원이 되고 싶어하는지 월급 100만원 받고 단체에서 일할 때도 이해할 수 없었는데, 프리랜서 활동가가 되니까 그냥 알겠드라. 


허나 인생은 예측불허. 단체를 나오되 개별 활동가로 살기 힘들다고 시궁창 청소하듯 까발려놓고는, 그래도 이렇게 해보자고 작당모의. 사회적으로도 좋든 싫든 프리랜서 활동가가 많아지는 구조가 되고 있다. 


1) 책을 쓴다. 

나처럼 망한 책을 쓰면 책 자체로는 돈을 못 번다. (인세로 받은 돈은 '햇빛발전협동조합'에 넣었는데, 책 쓴다고 노트북 빡 나서 결국 적자였습니다만.) 허나 단체에서 세상을 들썩들썩 만드는 일을 해도 단체 커리어가 되지만, 자기 이름으로 책을 쓰면 자기 커리어가 된다. 향후 책을 기반으로 강의 및 원고를 통해 수입이 발생한다. 프랜랜서 활동가에게 가장 큰 수입원은 강의와 원고다. 게다가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시다니.. 전라도영광인 상황이 발생해부러요. 


2) 사보 원고를 맡는다.  

기업 사보 원고비가 통장에 찍힌 순간, 돈이 잘못 들어온 줄 알고 되돌려줄 뻔... 물론 알량한 글 수준으로 언제 끝이 날지 간당간당한 벼랑위 팔자. 


3) 반상근 활동가로 일한다.  

안 그래도 활동가 월급 적은데 반상근 월급이라니! 일은 많고 월급은 적다, 그럴 수 있다. 그럼에도 개미 콧구멍 같은 월급일지라도 매달 일정하게 월급이 들어오면, 삶 자체에 '실비 보험'이 깔리는 거다. 강의와 원고 청탁이 마르는 최악의 순간이 와도 앞날을 도모할 수 있다. 


4) 프로젝트 인건비

등록 단체가 아니어도 개인모임이나 임의 단체, 개인의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이중 성묘 갔다 산삼 발견했다는 빈도로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인건비를 받다니! 허나 인건비 수준이 막 30만원 이러니까 정말 하고 싶은 일이어야 한다. 주의할 점은 3)과 4)를 동시에 할 경우 아주 뼛골이 빠진다는 거다. 차라리 단체에 들어가서 안정적으로 열심히 일하세요. 그게 백 번 낫습니다. 제가 해보니까 그래요. (이명박 빙의)  


문제는 일하고 싶은 괜찮은 단체가 별로 없다는 것. 문제없는 조직이 어디 있을까 마는, 조금 괜찮은 단체도 드물다. 단체를 나와 '취준생'의 눈으로 보니 실감난다. 잘난 척 그만 하고 네가 말하는 '조금' 괜찮은 조직이라도 만들어보라고들 하는데, 그건 깜냥이 안 되어 포기. 제 속의 창업 마인드는 백악기 대멸종 수준입니다.




『자비 없네 잡이 없어』는 이런 상황에 처한 청년X활동가들이 풀어내는 '직접 해보니 이렇습니다'의 이야기이다. 다양한 분야에 속한 활동가들의 고민이 눅진눅진 녹아있다. 지지리궁상 떤 내 처지가 처지인 만큼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었다. 암만 성토해도 이제 정규직 활동가 직업군도 줄어들 거고, '반농반어'처럼 프리랜서와 단체 활동가를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고, N잡러처럼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다양한 노동형태가 더 많아질 거다. 되돌릴 수 없는 물결이다. 


그런데 사회보험과 인프라는 '조직'에만 맞춰져 있으니, 자의든 타의든 '새' 물결에 합류한 노동자들이 더 힘들 수밖에. '자비 없는' 시츄에이션이다. 예를 들어 나는 퇴사하자마자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으로 약 20만원을 내야 했다. 당시 내 수입은 없거나 가끔 원고를 쓰면 20만원 수준. 참고로 나는 사보험은 하나도 없지만 식비를 아껴서라도 사회보험료를 내는, 완전 공공보험 신봉자입니다. 건강보험료가 매겨지는 나의 자산은 내가 거주하는 25년 된 15평 다세대 빌라 한 채. 아, 그러니 아래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을 수 있으랴. 


꼭 프리랜서가 아니더라도 한 조직에 속하지 않고 조직 안팎을 넘나드는 2030세대가 많아지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예를 들어 조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바뀔 필요가 있어요. 30쪽


2015년 프랑스의 ‘사업고용협동조합’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프리랜서와 1인 창업자들의 자율성을 살리면서도 노동자 지위를 보장해 주는 조직이었어요. 조합은 프리랜서들과 고용계약을 맺고, 교육과 일감 연결 등을 해 줘요. 프리랜서들은 조합에 수입의 일부분을 수수료처럼 내고요. …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위한 안전망을 국가와 사회가 만들어 가는 거죠. 앞에서 ‘플랫폼 노동’도 얘기했는데, 이 플랫폼을 기업이 가져가는 게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거나 정부의 자원이 들어간 비영리 기관으로 만드는 방법도 모색할 필요가 있어요. 161쪽 


그리고 이건 책을 읽다 깨닫게 된 것. '전문성'이나 '탁월성'에 대한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조직에서 나와 여러 사람과 일을 하다 보니 한 가지 일을 해도 속살의 여러 일까지 완결성 있게 해 내는 사람, 그 반대로 딱 한 가지 일도 구멍이 송송 나게 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래서 깨달았다. 나 스스로부터 맡은 일 처리를 혼자 힘으로 제대로 해낼 것, 큰 틀에서 일의 프로세스를 조망하고 일머리와 성실함을 갖출 것. 일의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전문성 아니겠는가. 조직에 있든, 프리랜서 활동가로 살든,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민폐가 안 되도록 맡은 일을 완결성 있게 해내고 싶다. 그게 내 노동의 목표다. 


전문성이란 지금 맡의 일의 체계를 제대로 만들어 놓아서 다음에 누가 와도 이어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 제 생각에 전문가란 어떤 업무가 주어졌을 때 방향을 제시할 수 있고, 실제로 그 일을 직접 할 수도 있는 사람이에요. 184쪽 


저는 최근에 ‘전문성보다 탁월성이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는데요. 전문성이건 탁월성이건 지금까지와 같이 경직되고 단일한 시각으로 봐서는 제대로 평가할 수 없어요. 어느 부서에 발령을 내도 무난하게 일하는 사람을 유능하다고 평가하는 렌즈밖에 없는 사람은 다른 탁월성을 가진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겠죠. … 전문성을 일을 제대로 완수하기 위한 기술, 일의 맥락을 읽는 기술로 보면 어떨까요? 186쪽 



 


      




     

댓글4

  • 최지 2018.09.29 12:34

    저도 프리랜서 활동가(?) 비스무리한 실험을 하는 중에 있어요. 내년을 장담할 수 없는, 엄청 간당간당한 삶. 미래를 모르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현재의 버는 돈은 족족 통장에 쌓아두는 것 뿐이라 현재의 시점도 미래만큼이마 녹록치 않네요. 그래도 금자님 말마따나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야금야금 늘고 있으니 어딘가에 답은 있겠지요. 지치지 않고 버티되 즐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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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지 님:) 그때 노트북과 가방을 양 팔에 보따리 장사처럼 들고 나타타셨을 때 우리가 지금 같은 처지라는 깜이 왔습니다. ㅎㅎ 위에 안 쓴 말이 있는데, 어쨌든 하루하루 자기가 주도하는 느낌이 있죠. 영화 '버닝' 식으로 말하자면 '뼛속부터 느껴지는 베이스' 같은 거? ㅎㅎ 그리고 진정,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협업을 하게 되죠. 그러니 하루하루 즐겁게! 프리랜서 비스무리 활동가 인생에 치얼쓰.

  • 익명 2018.10.03 02:29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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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ㅋ 나도 블로그에 별 반응은 없는데, 글 쓰는 50% 이상이 내 생각 정리하고 내가 기억하려고 나 보라고 쓰는 것이라 반응이 없는 갑다, 이케 살고 있어요. 원래 인기가 읍는 인생이라 꿈쩍을 안 함. 옮기는 게 귀찮잖아. ㅎㅎ 그나저나 글 칭찬 완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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