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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혼자 있겠습니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8. 8. 18.

얼마 전 자전거 라이더 숙박 공유사이트 웜샤워(warmshower.org)를 통해 미국인 두 명이 이틀동안 묵고 갔다. 그들이 내게 호스팅 말고 해외에서 다른 집에 묵어본 적 있냐고 물었다. 지금의 자신들처럼. '아니'라는 대답에 '왜'냐고 물었고, 그래서 나는 그 이유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답은 이렇다.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 






풍광을 보러 여행을 가는 것도,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러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다. 늙어서 그런지 사람 사는 게 별반 다르지 않고, 바다사자 수백 마리가 한여름 해운대 피서객 숫자로 바위 위에 누워있다는 갈라파고스 섬 같은 데가 아닌 한, 공항 가는 길이 좋던 시절은 끝났다. 익숙한 곳이 제일 좋은 나머지, 망원동 우리 집에서 휴가를 보낼 판이다. 아아, 꼰대 되어부렀어. 


내게 여행은 '홀로 있음'을 선사하는 장이다. 그 놈의 현지 유심칩 때문에 인터넷에 쉽게 연결돼서 홀로 있다 하기에 민망하지만, 애니웨이. 나는 수십번의 숙박공유 호스팅은 해도 해외여행을 떠나며 타인의 집에 머물 시도는 한번도 하지 않았다. 여행지에서는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머물던 8인실 도미토리 같은 분위기가 좋다. 한 공간에 분명 같이 있지만, 침범할 수 없는 타인들. 서로 비용을 지불한 '손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를 맺지 않은 채 비용을 지불하고 않고서 누군가의 집에 숙박을 의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홀로 떠난 여행에서 숙박공유 사이트를 통해 묵을 공간을 구하지 않는다. 돈은 없지만, 여행지라서도 혼자이고 싶다. 


당췌 그 '홀로 있음'의 의미와 가치가 뭐냐고 묻는다면 이 책을 들려주고 싶다. 오랜만에 잘 쓴 인문+사회 에세이를 읽었다. 내가 왜 홀로 여행하는지, 가끔 혼자 있지 못해 마음이 조급해지는지를 설명할 언어를 얻었다. <<외로운 도시>>처럼 저자의 사적인 경험과 인문학적 사유가 잘버무려진, 미려한 에세이집.  


이런 식이다. 저자는 오프리 게이. 파트너와의 짧막한 일상이 펼쳐지다, 릴케의 명언 "나는 이것이 두 사람 사이의 연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본다. 즉 각자가 타인의 홀로 있음을 보호해주는 일 말이다."로 흘러든다. 끄덕끄덕. 


 

'홀로 있음'의 이유를 '쿠엔틴 크리스프(Quentin Crisp)'라는 1920년대 초반의 동성애자를 통해 풀어내기도 한다. 크리스프는 영국에서 동성애가 불법이던 시절 (그니까 히틀러를 물리치게 하고 인공지능을 선보인 그 앨런 튜닝마저 호르몬 치료를 받고 모멸감에 자살해야 했던 그때 그 시절), 대놓고 동성애자 티를 팍팍 내고 거리를 활보한다. 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내는 스타일의 시위. 그가 가는 곳마다 대놓고 그를 놀리고 모욕하고 폭행하던 마초들에게 그는 이렇게 응수한다.  


“내가 신사분들을 몹시 화나게 한 모양이군요.”(112쪽) 

크리스프에게 개인적 스타일의 추구, 관행의 추방은 삶의 모든 곳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선행이다. (114쪽) 


사진 출처| https://www.thefamouspeople.com/profiles/quentin-crisp-2598.php


크리스프 씨는 <<벌가벗은 공무원>> 등 6권의 책을 쓰고, 영화에 출연하며 아주 장수하다가, 1999년에 사망한다. 스타일에 대한 책에서는 가난해졌을 때 "당신이 스타일은 당신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풍부해지거나 빈곤해지지 않는다"를 기억하라고 썼다. 한마디로 멋진 분이다.  


"스타일은 우리가 본연의 자신으로 존재할 때 생겨난다. 히치콕은 그런 노력을 ‘자기 표절’이라 불렀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이름을 남기지 못할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플랫폼 경제의 집단적 힘을 가볍게 무시할 줄 알며,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모든 기발함을 즐긴다." (115쪽)


우리 존재가 몇 조의 신경세포 스냅이 동시에 연결된 뇌처럼 전기적 신호가 촘촘히 연결된 넷망에 걸려있다. 자신으로 홀로 있지 못하는 '정신의 이스터 섬'. 이에 더해 노동시간이 긴 한국에서는 정말이지 '홀로 있음'이 허용되지 않는다. 노동이란 고로 타인과 연결되어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작업이므로.    


"오늘날 플랫폼 기술 덕분에 자연 자원뿐만 아니라 정신적 자원까지도 이익의 원천이 되어 완전히 고갈되고 있다. 우리는 타인의 홀로 있음에서 이익을 챙기라고 배웠다. 모리배들은 소셜 그루밍 기술을 만들어내고, 주위에는 기분 전환 거리로 넘쳐난다. 홀로 있음은 브라질의 열대우림이 벌채되는 것처럼, 앨버타 주의 석유 모래가 흡착되는 것처럼 소비되고 소모된다. 이렇게 하여 사람들은 정신의 이스터 섬을 만들어버린다." (300쪽) 


그러니 정신의 이스터 섬을 느낀다면, '잠시 홀로 있겠습니다'라고 스스로에게 여지를 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