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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life

[컵보증금제] 쓰레기덕후라서 그랬어, 한밤중 크래프티즘!

프루스트는 여행은 풍경을 탐험하는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체화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지난 5월 독일의 환경 수도라고 불리는 친환경 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 새삼스레 프루스트의 말을 떠올렸다.  재활용 할 수 있는 모든 플라스틱에 보증금을 매기라, 라는 말이 정언명령처럼 되새겨지는 새로운 시각의 개화. 알고는 있었지만 눈앞에서 직접 보니 파장이 달랐다. 보증금이라는 제도적 나침반 없이 개인의 선의에 기대 플라스틱 문제를 풀 수 있냐는 물음에 ‘아니’라고 답하겠다.

유럽연합의 플라스틱 반대 단체들은 북유럽과 독일의 사례에 기대 모든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보증금을 매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과 북유럽의 경우 페트병의 재활용률이 90%를 넘는다. 음료를 구입할 대마다 얼마간의 보증금이 하이패스 통행료처럼 자동 결재된다. 보증금 못 받는다고 속이 쓰릴 정도는 아니지만 뭔가 손해본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독일의 4인 가족은 월 평균 약 2~3만원의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이 정도면 어쩌다 길가에서 마주친 페트병 라벨까지 뜯고 자빠진  ‘오지라퍼’뿐 아니라(가끔 내가 그런다…) 웬만한 사람들이 알아서 나설 수밖에. 귀차니스트라도 괜찮다. 집밖에 버리면 다른 사람이 알아서 주워가니까. 돈이 영물이긴 영물이지. 재활용이 되게 만든다.

 

페트병은 유리병보다 싸지만 재활용이 쉽지 않고 환경을 오염시키므로 보증금은 더 비싸게 매겨진다. 보증금이 비쌀수록 더 많이 수거되는 것은 합리적 이치. 덴마크에 교환학생을 다녀온 내 친구 아들이 간증하길, 기숙사에서 밤새 파티를 하고 새벽에 일어났더니 잠도 덜 깬 애들이 가장 먼저 찾는 게 페트병이었다고. ㅎㅎ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딸려온 것처럼 페트병을 사면 물이 딸려온다. 생수 값은 100원인데 생수가 든 페트병 값은 300원이다. 생수보다 더 큰 유리병 값은 이보다 무려 70%가 싼 100원이고, 그 유리병은 새 것도 아니다. 재사용을 증명하듯 유리병 겉에는 기스가 나 있다. 독일의 유리병 재사용 횟수는 평균 40회로, 40번의 시간동안 새로운 유리병을 대신한다.  

 

유리병 pfand (병 환불금) = 0.08 유로 / 음료수 값은 1.20 유로
생수 페트병 pfand (병 환불금) = 0.25 유로 / 생수 값은 0.11 유로

   
누구나 쉽게 용기를 반납할 수 있다. 슈퍼 앞에는 바코드를 찍으면 보증금을 환불해주는 기계가 떡 하니 놓여있다. 페트병이든 유리병이든 보증금이 붙은 모든 용기를 반납할 수 있다. 한번에 10개까지 된다거나 여기서 안 샀는데, 하고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이 기계에 마음껏 유리병이든 페트병이든 바코드가 찍힌 병을 넣고 바코드를 읽히면 끝! 영수증이 나온다.
보증금 반납기에서 받은 환불 영수증을 가지고 슈퍼에서 물건을 사지 않은 채 환불을 시도했다. 아주 스무스하게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이 철저한 것들, 하고 놀란 일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일어났다.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환불 보증금을 공익활동에 기부할 수 있는 기계가 놓여 있었다. 더이상 유로화 잔돈이 필요하지 않는 여행자의 페트병마저도 싸그리 주워담겠다는 뜻이렸다. 

 

병 보증금 '기부 donate' 하란다. 이동단체, 환경단체 등 원하는 곳을 선택해 기부할 수 있다. 
페트병 모아 돈 주우러 간다!


내가 속해있는 쓰레기 덕후들의 모임인 ‘쓰레기덕질’에는 20~30대 직장인들이 많다. 수시로 카페를 들락날락하는 군상들. 자기 생활과 밀접한 쓰레기덕질로 카페를 정했다. 2018년 카페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을 모니터링하고 안에서 일회용 컵을 왜 쓰는 거냐고 포효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으르릉) 캠페인 클리어. 현재 매장에서는 법적으로 일회용 컵에서 제외된 종이컵을 빼면 일회용 컵을 제공할 수 없다. (호랑이 물어갈 법 같으니라고. 종이컵은 왜 일회용이 아니란 말인가! 종이컵이 텀블러야?) 

2019년에는 카페의 테이크아웃 컵으로 옮겨갔다. 텀블러 쓰는 사람들에게 300원 할인해 주는 것이 최선입니까? 좋은 제도지만 일회용을 음료 마시듯 자연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가닿지 않는다. 일회용을 쓰는 사람들을 움찔하게 만들 제도가 필요하다. 에머슨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선한 의도에는 얼마간 모가 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움찔하며 지금 이대로의 관습에 저항하는 변화가 생긴다. 테이크아웃 컵은 재활용률 5% 미만. 다른 음료 페트병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에 따라 재활용 분담금이라도 내는데 테이크아웃 컵은 같은 재활용 분담금을 안 내도 된다. 그러니 노답. 

쓰레기덕질은 재활용 가능한 모든 용기에 보증금을 부과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제도도 없고 재활용도 안 되는 테이크아웃 컵 먼저 보증금을 부과하라고 요구 중이다. 하지만 컵보증금제는 지난 2년간 국회에서 이런 저런 욕만 먹으며 통과하지 못 하고 있다. 내년 여름에는 또다시 지구 2바퀴를 돌리고도 남을 216억 개의 일회용 컵이 버려지겠지. 때마침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법안심사소위가 열린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에 ‘쓰레기없는세상을꿈꾸는방’ ‘제로웨이스트홈카페’ 등 쓰레기 덕후들은 일제히 위원회에 속한 국회의원 16명에게 직접 이메일 편지를 쓰고 SNS에서 메시지를 보냈다. 연락이 잘 가고 있는지 의원실에 전화했더니 메일이 너무 많이 와 메일함 정리가 힘들다고, 제발 좀 그만 보내달라고 한다. 임이자 의원은 메일을 보낸 쓰레기 덕후의 이메일을 수신 거부해서 분노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 ‘못난’ 사람 같으니라고. (feat. 자한당 팀킬)

 

 


랜선만 바라보고 있자니 속이 타들어가 직접 방문해야지, 마음을 먹었다. 원래는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장만한 ‘생생텃밭’에 플라스틱 컵이여 점검하라, 오큐파이!! 를 꿈꾸며 테이크아웃 컵 장식을 하려 했는데 텃밭 크기 보고 오조 오억 분의 1초만에 포기. 여의도가 참말루 방대하대요. 허허허허허헣.

 

우리는 16개의 버려진 컵을 주워 식물을 심고 컵보증금제 염원을 담은 ‘컵 화분’을 준비했다. 웃는 얼굴에는 침 못 뱉는다는 옛 말을 새기며 한땀한땀 만들었다. 허나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었다. 개똥의 법칙. (또 옛 속담을 새기며… 늙었나… 속담이 좋아졌…) 날이 추워서 거리에  버려진 테이크아웃 컵이 희귀템이 돼버렸다.

 

실종된 플라스틱 컵을 찾습니다. ㅠㅜ 결국 1시간 동안 쏘다니며 16개의 컵을 주워 세척하고 라이터 불로 지져 컵 바닥에 구멍을 뚫었다. 퇴근 후 만난 쓰레기덕질의 최지와 내가 밤 11시까지 이 짓을 했더랬지. “염병할 핸드메이드 직접 행동, 크래프티즘(craftism)”의 실천이랄까. 플라스틱 컵을 주워 카페에 돌려주는 ‘플라스틱 컵어택’의 분노를 크래프티즘을 통한 손 기술로 승화시켰다며 서로를 달랬다.

 

컵보증금 도입에 찬성한 한정애 의원실과의 기자회견 후 컵 화분과 편지를 들고 16곳의 의원실을 찾아갔다. 의원실에 들어가 컵 화분을 내밀었더니 얼떨떨해도 거절을 못 하고 받아주신다. 정성 들인 선물을 어떻게 거부해. 김영란 법에도 안 걸려요. 반대하더라도 두고두고 플라스틱 컵은 보시겠지? 2층부터 9층까지 16곳의 의원실에 간 쓰레기덕질 ‘올삐’의 만보계가 만 보를 넘겼다. 만보 걸었으니까 삼보일배한 셈 치고(?) 어여어여 컵증금제! 우리는 끝까지 한땀한땀. 

 


국회 환노위 소위원회 회의를 기다리던 중 ‘쓰레기없는세상을꿈꾸는방’에는 “이토록 국회 홈페이지를 간절히 들여다 본 적이 없다”는 고백이 올라온다. ‘제로웨이스트홈카페’의 카페지기 도연 님은 “그거, 회의 결과 어떻게 찾냐”고 득달같이 물어오신다. 핀란드처럼 국회 회의가 실황 중계되면 축구 덕후들보다 더한 열정으로 시청할 거야. 

 

‘한땀한땀’은 컵 화분에 구현된 것이 아니라 쓰레기덕후들의 마음에 있다. 그러니 이 간절한 마음에 국회는 답하라. 우리에게는 컵뿐 아니라 플라스틱 용기에도 보증금을 매기고 싶은 장대한 로망이 있다. 축구뿐 아니라 재활용 제도도 독일에 못지 않기를. 덕후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응원 중이다. 컵보증금제 부활하라! 

 

P.S.

11월 14일로 예정된 컵보증금제를 논의할 환논위 법안심사소위는 노동 52시간 법 논란에 밀려 언제 열릴지 기약일랑 없지만, 올해 안에는 논의되겠지. 휴유. 그때까지 우리의 컵 화분이 의원실에서 날마다 방긋 얼굴을 들이밀며 '보증금제'를 외치기를, 우주의 기운을 모아 보낸다.       

 

UBC 지구수다 '올바른 불편함을 선택한다는 것에 독일 판트 제도가 자세히 나온다. 

 

컵보증금제를 잘 정리해놓은 한겨레21 기사

근데 기사에 나온 사진인 플라스틱 컵어택과 온라인 액션 등 주로 개인들이 해온 활동인데... 우리는 환경단체가 아니라고 매번 기사에 안 실어주는구나... 세상 다 부질없다....... ㅎㅎ (비뚤어질 테다)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47854.html
                                                                                                                                                                                                                                                

 

[경제일반]500년 가는 일회용컵, 보증금 얼마면 되니?

'거리 일회용컵' 대부분 재활용 안돼...컵 보증금제 부활 요구 커져 "국회에서 보증금제 법 개정안 제대로 논의해야"

h21.hani.co.kr

 

  • 오래오래연주 2019.11.21 09:56

    이런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있는 시민단체가 있었다니 ,
    놀랍습니다~
    줍깅하면서 길거리에 떨어져있는 1000원짜리 지폐를 보고
    우리가 한번 쓰고 버리는것들에 값이 매겨지면
    너도 나도 주우러다니느라 버리는 쓰레기가 적어질텐데 하고 한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분들이 계시니
    조금씩이라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으리라
    생각하면 응윈댓글 남깁니다~^^♡
    아자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