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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Info

생리대 안전한 거야? 어느 여초모임의 수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7. 12. 31.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VOCs 74종과 농약 18종 조사 및 위해평가 결과 ‘인체 위해 우려 없다’고 발표한 날, 어느 연말 ‘여초’ 모임에서 일어난 대화들.  


야, 식약처가 또다시 생리대 문제없다더라. 좀 찜찜하지만 생리대 그냥 쓰면 되겠지?” 


사진| 여성환경연대


그 말을 믿냐? 식약처는 맨날 괜찮다고 하는 게 취미 및 특징이야. 지난 9월에도 결과도 다 안 나왔는데 이번 조사결과를 아는 것처럼 ‘하루에 7개씩 생리대 써도 괜찮다’고 했잖아. 무슨 짜고 치는 고스톱도 아니고. 진짜 별 문제없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나오니까 괜히 믿음이 안 가드라.”


“이번에는 그렇게 발표 안 했어. 검사한 물질에 한해서만 이상 없다고 했다고. 그리고 그동안 생리대 한두 번 썼냐? 괜찮다는데 괜찮은 거 아니겠어? 생리대까지 고민해야 하다니 피곤심이야. 걍 생리를 안 하고 싶다, 진짜.”


“야, 너네 단체에서 생리대 시험한 거 아냐? 당사자인 너님은 왜 아무 말도 안 하셔?”


“헐...올해 생리대 때문에 다크서클 콧구멍까지 내려오도록 일했는데 너네 만나서도 일이냐. 그리고 왜 나만 당사자야. 생리대 쓰는 여자들 모두 자기 문제지.”


사진| 여성환경연대


“그니까, 너는 식약처 발표 믿어?”


“VOCs 74종, 농약 18종, 아크릴산 등 샅샅이 조사했더라고. 조사도 빠르고 정보 공개도 시원하고. 다들 과로사할 만큼 진짜 열심히 일했을 듯. 외국 조사에서는 생리대에서 농약이 검출된 경우도 있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농약도 모두 불검출이라 다행이야. 근데...”    


“근데 뭐?” 


“너무 개별 물질만 좌르륵 나열한 느낌이랄까. 사실 이 시험을 한 이유가 생리대가 여성건강에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기 위한 건데, ‘여자’는 안 보이고 물질만 보이더라고. 뭐, 물질 조사를 했으니 어쩔 수 없긴 한데 그게 좀 아쉬워.”


“뭔 말이야. 정치인 화법 쓰지 말고 좀 알아듣게 말해봐.”


“그니까 생리대를 쓰면 한 가지 물질에만 노출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여러 개 물질에 노출되는데, 개별 물질별 따로따로 평가를 해 놓으니까 생리대 쓰는 여자들 현실과는 다른 거지. 식약처가 조사한 VOCs만 해도 84종이야. 만약 한 생리대에서 30종의 VOCs가 나왔다고 하면, 생리대 쓰면서 한 큐에 30개 물질에 노출되잖아. 그럼 ‘사람’ 입장에서는 30개 물질이 어떻게 건강에 영향을 주는지 누적해서 위해성을 평가해야 맞지. 여러 성분에 동시에 노출되면 위험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데 이게 빠져 있어.” 


“그건 넘 복잡해서 그러는 거 아냐? 그런 계산이 가능해?” 


“나도 잘 모르긴 한데, 전문가들이 환경오염지역에서 주민 건강피해 조사할 때 여러 가지 물질에 노출된 경우 중복노출 고려해서 위해평가 한다고 하더라고. 복잡하기는 하지만 이미 그런 식으로 평가하는 방법이 있다더라.”


“그래? 그런데 왜 그 방법을 안 썼대?”


“옴마! 그건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식약처에 물어보삼.”


인터넷에서 봤는데 피부랑 생식기랑 흡수율이 다르대. 그래서 유해물질이 질에서 더 잘 흡수된다 하더라. 이번 조사는 피부노출로만 잡은 거잖아?”


“야, 그래도 피부 흡수율을 100%으로 잡아서 최대한 끌어올렸는데? 질도 피부의 일종인데 100%로 잡으면 된 거 아냐?”


“그게 여성 생식기나 질 관련해 참고할 만한 연구가 거의 없어서 피부노출로 독성을 계산한 건데, 피부 흡수율 100%보다도 질이나 생식기 부위 흡수율이 더 높대. 남자 고환은 일반 피부보다 40배 정도 흡수율이 높고, 여성 생식기 외음부만 해도 팔꿈치 피부보다 4배 정도 더 높다더라. 흡수율이 좋으니까 항문이나 질로도 약을 넣잖아.” 


“맞아. 몇 년 전인가 미국에서 엉덩이에 탈크 파우더 뿌려서 난소암 걸렸다고 배상 판결나고 그랬어. 얼굴에도 파우더 바르는데.”


“그래서 믿으라고, 말라고! 어쩌라고?”


“조사는 잘 했는데, 뭐 좀 아쉬움이 있다고. 그래도 이게 어디야? 겨털 나고 처음으로 식약처가 나서서 생리대를 모조리 조사했어. 몇 년 전에 어느 국회의원이 남사스럽다고 ‘생리대’라는 말도 못 하게 하드만. 그분께 ‘생리대생리대생리대’ 백번 반복되는 보청기라도 하나 달아드리고 싶다.”


사진| 여성환경연대


“세상이 변하긴 했어. 식약처가 내년에 생리대에서 ‘프탈레이트’랑 ‘다이옥신’도 추가로 조사한다더라. 또 지속적으로 VOCs 검사와 공개도 한다 하고.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이렇게 뉴스에서 생리대 많이 나온 건 올해가 처음이야.”  


내년에는 생리대 전성분표시제도 된다며?”


“완전 대박. 미국에서는 백악관 앞에서 생리대 전성분표시제 요구하며 시위했는데, 내년에도 또 해야겠지. 미안하다. 우리 먼저 전성분표시제 찍는다.” 


“그나저나 생리대 쓰고 부작용 났다고 제보했던 건 어떻게 됐어? 조사에서 사람이 안 보인다며. 그게 바로 사람이 보이는 조사 아냐?”


“사실 제일 중요한 조사가 남았지. 생리혈 감소와 생리주기 이상을 겪은 여자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뭐 때문인지 밝히는 게 젤로 중허지. 결국 여자들 경험을 빼고 물질만으로 밝혀질 일은 아닌 것 같아. 물론 이번 조사도 꼭 필요했지만. 그래도 각각의 물질이 아니라 생리대 사용자인 여성의 몸으로부터 시작하는 조사니까, 이 건강역학조사를 제대로 잘 하는 것이 관건일 듯.”       


사진| 여성환경연대


“지켜보자고. 그래야 제대로 하지. 어쨌든 들고 일어났더니 뭔가 변하기는 하는 것 같아.대통령 탄핵도 그랬고, 생리대도 그렇고. 으흐흐흐흐”


“음식 다 됐다! 밥 먹자. 우리 모두 내년에는 건강하게. 해피 뉴이어.”


* 퇴사하면서 쓴 마지막 성명서. 성명서는 잘 안 읽히니까 실제 수다+성명서 내용을 섞어 가상의 대화로 재구성해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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