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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ursion

쓰레기로 만든 예술마을,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카페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7. 10. 14.

추석 연휴가 장장 10일이었다. 이거이 꼬레아야, 독일이야? 

우리도 서유럽 수준에 올라선 줄 알고 '앞으로 이런 연휴는 종종 있겠지, 있어야지' 라는 간절한 기대를 품으며 달력을 휘휘 찾아보았으나, 2025년 즈음인가 일주일(?) 정도 장장 긴 연휴가 있다고. 그러니까 근 10년 간 다시 오지 않는 휴가였던 것이다. 아아, 지나간 옛 추억이여. 다시 돌아올 수 없나.

긴긴 연휴의 날들, 나는 '쓰레기' 여행을 했다. 쓰레기로 만든 손때 묻은 마을, 그리고 쓰레기 자체를 만들지 않는 카페 탐방.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펭귄마을은 마을에 쌓인 쓰레기들을 한때 누군가의 삶을 담은 물건으로 소환한다. 그리하여 마을에 역사를 부여한다. 한옥 마을, 관광 도시, 홈스테이 마을 사업, 혹은 뭐시기 축제나 행사 등에서는 쓰레기가 무더기로 나오고 자원을 무더기로 쓰기 쉽다. 양림동 펭귄마을은 다르다. 낡고 오래된 마을의 한 집에 불이 났다. 화재가 난 후 버려진 빈터에 하릴없이 버려진'쓰레기 산'을 2명의 주민들이 치웠다. 그리고 그 쓰레기들을 마을의 곳곳에 재배치하자 마을은 '골목 박물관'이 되었다. 그리고  쓰레기를 치우자 드러난 빈터에 텃밭을 꾸려 마을 주민들끼리 나눠 먹는다. 


유행 따라 살지 말고 형평 따라 살자! (펭귄마을을 꾸린 김동균 님의 어록)

페트병을 잘라 만든 꽃

남도 사투리의 집대성 '오메 좋은 거' (예전에 광주방송의 노래 배워보는 무슨 프로그램 제목이 이거였는데...)

 

광주가 남극도 아닌데 왠 펭귄일까. 펭귄마을을 돌아다니면 꽤 많은 정크아트 펭귄들을 만날 수 있다. 관광객들도 궁금해한다. 골목을 걷다 관광객들이 "근데 왜 펭귄이야? 무슨 유래가 있어?"라고 묻는 것을 몇 번이나 들었다.     

오마이뉴스 기사에 따르면 마을 이름이 '펭귄'인 것은 주민들의 걸음걸이 때문이다. 오래된 관절염이나 허리 통증 탓에 텃밭을 가꾼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뒤뚱거리면서 걷는 모습에서 펭귄이 나왔다. 뒤뚱거리고 삐걱거리면서도 텃밭에 줄 물을 가득 들고 여름이면 아침 저녁으로 채소를 키워내셨겠지.


소화기 펭귄

살충제 용기 펭귄 (정말 깨알같다!)

LPG 가스통 펭귄

동네 슈퍼 위의 펭귄

마을 텃

오래된 마을의 아우라


그리고 찾아간 서울 돈의문박물관마을. 문자 그대로 박물관이 아니라 박물관 마을이다. 이런 신기한 경험이. 양림동 펭귄마을도 일종의 박물관 마을이라 할 수 있는데, 돈의문박물관마을은 그 서울판 정도? 정크아트 대신 옛 건물의 리모델링으로 이뤄졌고 민 / 관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골목길 박물관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특히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도 '식량도시' 전시의 일환으로 문을 연 '플라스틱 일회용품 없는 카페'에 관심이 갔다. 파리나 뉴욕, 베를린에서나 보는 가게인 줄 알았는데 서울에도 생겼다! (우리 서울, 핫해핫해)


 에코백에 쓴 선언

"이 카페에서는 일회용 컵과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음료를 테이크아웃 하실 경우  컵 예치금을 오천원 받고 밀 텀블러에 담아드립니다."

생분해 밀 텀블러, 대나무 빨대

DMZ 사과 쥬스, 야생콩 두유, 태양열 빵 (므흣하도다)

텃밭에 놓인 꿀벌 음수대

빗물 저장장치 -> 텃밭 물 주기

 

살아가는 필요한 물건은 몇 개나 될까? 몽골은 300개, 일본은 6,000개, 그리고 독일은 10,000개쯤 된다. 지금까지 그 ‘10,000개’를 채우기 위해 인생을 달려야 했다. 그러나 지진을 감지하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떼처럼 더 이상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 내리막 세상에서 다른 삶의 방식을 찾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일본의 경우 동일본 지진 사고 때 해일에 휩쓸려가는 집과 물건을 보며 소유에의 욕망을 내려놓는 사람들이 극적으로 늘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는 것, 죽고 나서 트럭 3대 분의 쓰레기가 남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것, 사람들은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일본과 미국의 젊은 세대는 앞 세대가 그 나이에 가졌던 만큼의 자동차를 소유하지도 않고, 별로 욕망하지도 않는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좋든 싫든 저성장 아래 소유보다는 공유, 과시보다는 관계를 존재의 이유로 삼는 법을 익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