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물건 다이어트'고 칼럼 원고를 마감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냈는데, 마감 바로 전날 밤 주제를 바꿨다. 전 룸메 '씨앗'과 전화로 폭풍 수다를 떨고 난 후 마음이 코끼리 팔랑귀처럼 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밤 12시에 시작해 새벽 3시까지 꼼짝 없이 거북 목의 자세로 자판을 쳤다. 사서 고생했지만, 결론은 기승전'투표'! 그런데 투표하고 와서 포털에 뜬 뉴스를 보니 이대로 가다가는 투표율 60%를 못 넘는다고 하는데... 알고야. 생고생 했네 그랴.
글의 팔 할은 씨앗의 생각에서 베껴 왔고, 루이비통과 베네통 브랜드를 구별 못 하는 생생한 사례는 현 룸메와 백화점 1층을 지나가다 얻게 됐다. 룸메들이야말로 글의 '뮤즈'랄까. -_- (음악도 아니고 뭔 뮤즈냐고... 애니웨이 어감이 아름답잖혀~) special thanks to 룸메들!
한국일보 [삶과 문화] 2016년 4월 12일자 원고
원본 읽기 https://www.hankookilbo.com/v/5df1d846df5c4b3eb682fe4ae31286c9
인터넷에서 논란이 된 이완 작가의 디올 전시회 출품 사진 '한국여자'. 디올 유튜브 동영상 Lady Dior As Seen By Seoul 캡처
명품 백을 든 젊은 여자를 유흥가 앞에 조신하게 세워둔 <한국 여자>. 이 작품은 명품 브랜드 디올(Dior)이 시대를 대표하는 현대 미술가에게 자사의 상품을 재해석하도록 의뢰해 제작한 것이다. 작품이 실린 전시회 제목은 ‘레이디디올에즈씬바이서울(Lady Dior as Seen by Seoul)’. 작가는 광주 충장로에서 여대생을 촬영한 뒤 불 켜진 간판을 합성하여 “치열하게 살아가는 한국 젊은 세대의 초상을 담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자리의 화장품 가게와 식당은 사라지고 ‘룸비 무료’, ‘놀이터 룸 소주방’ 등 유흥가만이 남았다. 전시회 제목을 띄엄띄엄 한국어로 발음하면서 “이게 뭔 말이지”하던 의문이 작품 의도를 볼 때도 똑같이 들고 말았다. 이게 대체 뭔 소리랍니까.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뭔 소리’는 이렇게 해석되었다. 한국 여성을 명품 백을 사기 위해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김치녀’로 묘사하다니!
작가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저 흔하디 흔한 유흥가를 찍고 디올 백을 든 여대생을 배치했을 뿐인데, 한 순간 한국 여자를 ‘술집에서 일해 명품 백이나 사는’ 족속으로 낙인 찍은 사람이 됐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의 특성 상, 돼지껍데기 집이 놓여있어도 하등 이상할 것 없는 허름한 유흥가에서도 무한 리필되는 돼지껍데기처럼 명품 백이 흔히 보이는 모습을 읽을 수도 있었다. 혹은 OECD 회원국 중 남녀임금격차가 가장 크고 그 이유가 근속연수, 교육수준, 직종이 아니라 단지 여자이기 때문인 한국에서 “술집여자가 돼야 디올 백을 살 수 있어요”라고 비꼰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 <한국 여자>는 청 테이프에 다리가 묶인 채 트렁크에 갇힌 여체를 표지로 내세운 <맥심 코리아>나 ‘자극을 가한 여자가 아릅답다’고 말한 아라키 노부요시의 ‘로프’ 사진처럼 명백한 여성 혐오는 아니다. 그러나 거리의 ‘룸’마다 성의 거래가 일어나고 젊은 여성이 지극히 성애화되는 사회에서, 여성 혐오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하필이면 유흥가와 젊은 여자라니. 북새통 전통 시장을 오가는 젊은 여자나 유흥가 앞에 선 ‘배추머리’ 중년 여성이 디올 백을 들었다면? 이미지를 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세상의 상투적이고 외피적인 재현이 아니라 그 이면을 들여다보도록 ‘깨는’ 의외성이다.
글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씨앗'이 보내준 사진은 예술의 '의외성'을 명명백백 설명한다.
사진은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은 소녀>라는 작품.
두 번째 사진은 단전에서 솟아오르는 인자한 미소로 남근 '뻑'을 먹이는 듯하다.
씨앗은 털옷 입은 부르주아의 디테일을 칭송(?)했다. ㅋㅋ
어쨌든 작품의 제목은 <작은 소녀>.
이제 여성들은 묻는다. 술집에서 일해 가방을 샀다면 그 성을 산 남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또는 디올 백을 산 돈은 누구의 지갑에서 나왔을까. 이탈리아의 타이어 회사인 피렐리는 50년 동안 저명한 사진가와 모델을 섭외하여 VIP를 위한 한정판 ‘핀업걸’ 달력을 만들어왔다. 올해 처음으로 옷을 입은 여성들이 달력을 채웠고 그들은 테니스 선수, 코메디언, 예술가 등으로 다양했다. 바야흐로 여성 운전자와 자동차 구매자가 늘면서 여성들의 지갑을 열 수 있는 달력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인디 음악가의 곡에서 “자궁냄새가 난다”고 말한 남성 보컬에게도 같은 맥락의 댓글이 달렸다. “인디씬을 먹여 살리는 돈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생각해보세요.”
디올은 사석에서 인종차별 발언을 한 디자이너를 자르고 할리우드 남녀 배우들의 임금격차를 지적한 <헝거게임>의 제니퍼 로렌스를 모델로 채용했다. 그런 만큼 일을 의뢰한 아티스트에게 전권을 부여하기도 했고 한국의 ‘룸’이 의미하는 바를 몰랐을 수도 있다. 그 결과 디올 백은 한국에서 ‘룸녀백’으로 등극해 “디올 백을 어떻게 들고 다니냐”는 성토를 받게 됐다. 오매불망 모은 돈으로 명품 백을 장만했더니 한 순간 격이 떨어져버린 기막힌 상황. 토닥토닥, 괜찮아요. 루이비통과 베네통은 구별 못 해도 ‘페미당’에 가면 여성 혐오 정치인은 바로 알 수 있으니까요. 김무성, 김을동, 황우여 님이 탑 3를 차지했다. 바로 내일, 명품 백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격을 높여보고 싶다. 기승전’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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