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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ble

망원시장의 멋 부리지 않은 먹부림을 펼쳐놓는 카페M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1. 20.


중학생이 된 조카들이 서울에 놀러왔다. 이번에 다녀 본 서울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묻자 '서촌'을 뽑았는데 추억의 오락실과 먹을 것이 많아서라고 했다. 겨울이라 롯데월드나 야외 놀이공원을 못 가서 어른스럽게 '서촌'을 골랐을 듯. 그래도 서촌에 한옥이 아니라 먹을 것이 많다니 이 뭔 소리.  


캐물으니 먹을 것이 많다는 말은 바로 통인시장의 양 쪽 길가를 수놓는, 보기만 해도 므흣한 주전부리들과 그것들을 엽전으로 사 먹는 도시락 카페의 즐거움에 있었다. 이미 오래 전 엽전 도시락에 혹해 통인시장을 거닐며 기름 떡볶이와 가지런히 놓인 전들과 떡갈비와 '슈퍼커피'의 오렌지 비앙코를 카피한 오렌지 커피와 회오리 감자를 섭렵한 나였다. 그런데 느자구 없게도 이런 생각이 들고 말았으니, 주전부리에 있어서 단연코 우리 망원˙월드컵 시장이  더 낫지 않은가! 두둥!! (이하 망원시장으로 지칭)


물론 통인시장에 비해 망원시장은 훨씬 '동네' 시장스럽다. 규모는 통인시장보다 더 크지만 오렌지 커피처럼 핫한 아이템도 없고 젊은 친구들이 런칭한 톡톡 튀는 가게들도 거의 없다. 통인시장이 젊고 활기찬 기운으로 리뉴얼되면서 동네시장보다는 관광객들이 찍고 가는 이벤트형 시장으로 거듭났다면, 망원시장은 자영업 '아줌마, 아저씨'들의  삶의 터전이 덕지덕지 묻어나며, 돌돌이 시장 가방을 끌고 장을 보러 나온 40~60대 동네 주민들이 주를 이룬다. 그러니 당연히 채소, 생선, 고기, 반찬 등 '집밥' 재료들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더 많고, 가격도 이렇게 싸면 어떻게 먹고 사나를 걱정하게 할 만큼 저렴하다. (친구들을 데불고 망원시장 갔더니 다덜 크레이지! 연희동 사는 친구도 마을버스 두 번 갈아타고 망원시장 오는 경지!!) 그런데 주전부리마저도 실하기 그지 없다. 망원동 주민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을 전제하고, 통인시장의 주전부리보다 더 싸고 종류도 다양하고 맛도 더 좋다. 멋 부리지 않은 먹부림이 판을 치는 망원시장 주전부리 같으니라고.


크림 소스와 과일 소스 등을 골라 먹을 수 있는 닭강정, 삶은 문어, 오징어 순대, 백화점 지하 매장에 입점한 고로케, 레알 부산오뎅, 핫바, 미미네 빰 치는 국물 떡볶이, 3,000원 대의 칼국수와 닭곰탕, 참한 전들과 떡들, 크레페, 마른 안주 편집샵! 군밤, 호떡, 옥수수, 김밥 같은 평민급 먹거리는 다루지 않으리~


좀 오래 전의 것이라 공사다망한 가게들의 업데이트가 필요하지만 (커밍 쑤운!) 망원시장 지도도 그려보았드랬지. 

망원시장 내 맴대로 지도 1   http://ecolounge.tistory.com/287

망원시장 내 맴대로 지도 2   http://ecolounge.tistory.com/297             


애니웨이, 망원시장에 놀러와 다양한 주전부리를 제약 없이 펼쳐놓고 먹부림 할 수 있는 카페가 생겨났다! 그동안 장바구니들을 새끼 손가락에 아슬아슬 낑구고 한 손에는 고로케를, 한 손에는 식혜를 들고서 곡예하듯 먹어야 했던 나날이여 안녕. 통인시장의 엽전처럼 재미나게 계산하지는 못해도, 망원시장에서 사온 먹거리를 아메리카노와 프레첼, 그리고 맥주를 주문하는 '엄연한' 카페에서 마음껏 늘어놓고 잡수셔도 된다. 그야말로 카페 엠은 망원시장의, 망원시장을 위해, 망원시장에 의해 태어난 카페이기 때문이다. 





시장 한복판에서 와이파이를 외치다!


아메리카노 3천원, 나머지 메뉴도 4천원 선으로 가격도 괜츈!







바야흐로 약 3년 전, 합정동에 홈플러스가 입점할 때 망원시장은 4차례의 전면적 파업을 진행했다. 모든 상가와 가게들이 문을 닫아 홈플러스 입점에 반대했고, 동네 주민 1만 8천여 명이 홈플러스 입점 반대에 서명했고, 지역 및 시민단체가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몇 달간 천막농성과 문화제를 진행했다. 그 시절 망원시장에 갔는데 시장 스피커에서 울려퍼지던 '산 자여 따르라~'라는 민중가요를 들으며 장을 보고는 했다. 시장 전체가 '트재앵'으로 파이팅하고 있는 분위기였었지... 


그리하여 홈플러스가 지역에 들어오되, 전국 최초로 1차 식품 15가지 품목 판매 금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망원역 점 폐쇄, 그리고 망원시장 고객센터 부지 매입이 이루어졌다. 카페 엠은 이때 망원시장 고객센터 부지 매입으로 망원시장 상인회가 받은 건물의 1층에 문을 열었다. 시장을 보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고객센터의 깨끗한 공용 화장실을 이용하고, 다리가 아프면 좀 쉬어가고, 사먹은 주전부리도 펼쳐놓고, 짐도 맡기며! 망원시장을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아지트 같은 공간이 될 거란다.  




카페에서 시장 먹거리 먹부림 possible! 




맥주도 가능!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모리 선생은 "의미있는 삶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를 둘러싼 지역 사회에, 그리고 자기에게 목적과 의미를 주는 일을 창조하는데 자신을 바치는 데 있다. 거기엔 돈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다."고 말했다. 쪼매 거창하지만 망원동으로 이사오면서 지역사회를 위한 일을 하면서 의미있는 인생으로 늙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향을 떠나 정처없이 떠돌이로 살고있는 장돌뱅이 같은 인생에 정박지를 만들어간달까. 그래서 처음 한 일은 길고양이들을 중성화시키고 꾸준히 밥을 주는 거였는데, 길고양이들 평균 수명이 3년 정도라고 대차나 밥을 주기 시작한 3년 즈음, 이 놈들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ㅠ.ㅠ 그리고 요즘 나는 '마포 공동체경제 네트워크 모아 MORE'의 모임에 끼여들기 시작했다. '모아'는 카페 M을 망원시장의 아지트로 만들기 위해 작당할 뿐 아니라 공동체 경제 기금, 공동체 가게 네트워크 등 우리 동네를 '지금, 여기서' 좀더 살고 싶은 대안적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난 조직이다. (일 끝나고 저녁도 못 먹고 달려가 회의를 하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안달!' ㅋㅋ) 




 카페 탄생을 축하해주는 사람들!

     

오마이뉴스에 군산에서 태어나 군산에서 학교를 나오고 군산에서 작은 가게를 차려 생계를 꾸려가는 젊은이들을취재해 기사를 쓰는 분께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연대하는 마음"으로 대형마트나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동네 시장, 동네의 작은 가게들을 이용한다고 말이다. 나는 모리 선생의 '의미있는 삶'을 생각하며 망원시장의 주전부리들을 처묵처묵한다. 아, 처묵처묵 거리가 이렇게 지천으로 널려있는 시장이란 얼마나 황홀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