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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House

치매를 예방하는 에고에고 에코라이프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4. 2. 11.

동네를 휩쓰는 고스톱 솜씨를 갖추시고 아침마다 화투로 오늘의 운세를 점치시는 우리 엄마께서 암만 고스톱을 가르쳐봤자 쇠귀에 경 읽기 식으로 관심없는 나를 보고 한마디 날리셨다.


"그러다가, 너 치매 걸린다!"


오메오메, 왓 더 헬...당췌! 

화투 말고도 퍼즐, 낱말 맞추기, 책 읽기를 통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명절 때 엄마랑 고스톱 땡기는 효녀도 아닌 주제에 어디서 감히 말대꾸까지. 아서야지. 내 친구 시엄마께서는 이번 명절에 처음으로 고스톱을 전수받는 며느리에게 돌직구를 날리셨다 한다.


"넌 지금까지 당췌 뭐를 배우고 살았다냐?"


그래서 이대 나온 그 며느리는 "내가 누군지 알아? 나 이대 나온 여자야" 라는 타짜 모드로 돌변해 고스톱 세계에 빠져들었다. 우리 엄마에게 치매를 예방해주고 용돈벌이가 되는 화투가 있다면, 이대도 안 나왔고 여전히 화투의 피와 비를 잘 구분 못하는 나에게는 집이 있다. 왓 더 헬... 뭐래. -_-;;


룸메와 내가 집을 고치고 이사 온 지 약 10개월이 되어간다. 어느 날 룸메는 이 집에 살면 유전적 문제가 아닌 한 누구라도 치매에 걸릴 일이 없을 거라고 운을 뗐다. 이 집이 화투라도 된단 말이더냐.


최근 집들은 웬만한 시설이 모두 자동으로 설치되어, 조금이라도 덜 신경쓰고 조금이라도 덜 손이 가고 최대한 편하게 생활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신축 빌라였음에도 단열이 전혀 되지 않아 '합정동에서 시베리아를 보았다'였던 저번 집에도 화장실에서 전화를 받고 걸고 현관문을 열어주는 인터폰 기계가 달려 있었다. 다세대 빌라 1층에도 자동문이 설치되는 추세다. 이쯤이야 간질간질한 사례일 뿐이고, 최첨단 아파트는 원패스 카드만 대면 엘레베이터가 자동 호출되고 전기차 충전하는 동안 자동으로 전기세 납부가 된다고 한다. 문제는 정형외과 출입문처럼 필수적인 경우나 생활에 꼭 필요한 기능보다는 부가적으로 '잘 보이기 위해' 자동화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물론 인간 대신 '에너지 노예'가 자동화를 떠맡고 있다. 그에 반해 우리 집은 기계파괴 운동 '러다이트'를 기리기 위한 곳인냥 여기저기 시시각각 반(anti)자동이 포진해있다.


어느 정도냐면. 울엄마가 최신 전기압력밥솥을 떡 하니 우리 집에 보내셨다. (차라리 휘슬러 압력솥을 보내란 말이요! 난 보온 기능도 전혀 안 쓴당께!!) 엄마 검사필 뜰까봐 팔지도 못한 채 한 번 써봤는데 증기가 너무 많이 피올라 부엌이 거의 한증막이 되고 말았다. (원래 이런당가?) 내 절친에게 이 사태를 고발하면서 "내가 밥 때마다 밥솥 들고 베란다에서 밥 하다 죽어봐야~정신 차리겠지?"라고 했더니 내 절친이란 것이 고깟 불편이 너희 집에서 대수냐고 되물었다. 


아날로그를 좋아해서가 결코 아니다. 처음 집을 고칠 때는 편리하지만 에너지가 구조적으로 절약되는 집, 알아서 쉽게 그리되는 집을 염두에 두었다. 한번 사용한 물을 변기나 텃밭에 재사용할 수 있는 그레이 워터 (중수도) 시스템, 실내에 유입되는 공기를 겨울에는 따숩게 덮히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식혀주는 열교환장치 등을 생각했지만, 그런 시설은 스마트 그리드 정도는 깔려있는 최첨단 아파트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세면대에서 쓴 물을 용변 내리는 물로 재사용할 수 있는 세면대는 이태리 수입제나 디자이너 작품이었고, 빗물저장장치, 태양열 온수기 등 대안 기술을 몇 개 적용하면 콧구멍만한 빌라가 꽉 차 몸져 누울 곳도 없어 보였다.


그 탓에  시시각각 투보다 더 뇌를 깨어있게 만드는 에고에고 에코라이프의 세계를 접신하였다.


변기 오리엔테이션 

우리집 방문객은 장실 사용 전 '변기 오리엔테이션'을 거친다. 세면대에서 한 번 쓴 물이 변기에 모아져 용변물로 재사용되는데, 자동으로 유량 조절되고 잔여물을 걸러주는 제품은 찾기가 어려웠다. 드디어 찾았을 때는 특허 기술만 있고 제품 생산은 중단되었다는 답변을 접수했다! 세상에나. 멀쩡한 손 놔두고 진동으로 얼굴에 파우데이션 발라주는 기계가 있는 판에 이런 '자동화' 기술은 사장되고 있구나, 오오 통재라. 그래서 공사 담당자가 뜯어말리는 것을 뜯어말려 수동으로 조절되는 변기를 설치했다.




바로 이렇게! 세면대의 하수도를 변기 탱크에 연결했다. 수량조절, 자동유압 등은 모르쇠, 그냥 연결시켰다. 따라서 세면대에서 물을 많이 쓰면 그야말로 홍수가 난다. 욕실 곰팡이 청소하기 싫어서 변기 쪽은 100% 건식인데, 세면대에서 물을 많이 쓰면 비 올 때 창문 훤히 열어놓아 방바닥에 물 고인 방 꼬락서니 난다. 반대로 세면대에서 물을 사용하지 않으면 변기 물이 바닥나 용변이 내려가지 않는다. 그럴 때는 가스밸브처럼 생긴 밸브를 열어 신선한 수돗물을 공급한 다음 다시 꼭 잠근다. 설을 이용하는 방법을 정리해봤는데, 단연코 치매를 예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세면대와 변기 물의 수리역학적 방정식

읽고 이해하려고만 해도 머리를 굴려야 한다. 변기 오리엔테이션을 거친 사람들은 뭔 소리인지 아리까리하고 실수할까 두려워 화장실을 보이콧하려고 든다. 일 볼 때도 세면대사용량과 변기 물의 수리역학적 방정식을 계산해야 한다냐, 그런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 막상 두어번 사용하면 나름 쉽게 적응한다. 카우치서핑으로 다양한 국적의 외쿡인들이 집에서 자고 갔는데 쉽게 적응하고 홍수가 난 적도 없었다. (문화적 차이 있음, 서구권에 비해 아시아권의 적응도가 뛰어남) 다만 뇌를 사용해 시츄에이션을 살피고 밸브를 열고 닫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변기 사용할 때마다 숙지해야 하므로 치매 예방 지대로다. 간혹 세면대에서 물을 많이 쓸 때는 변기 쪽으로 뛰쳐나가 물이 넘치지 않도록 변기물 한 번 내려주는 센스 발휘.


양동이냐 하수구냐, 그것이 문제로다

부엌에서도 고잉 온. 우리 집 허드레물 배관은 도통 하수구로 이어지지 않는다. 싱크대 아래의 호스를 벽을 뚫어 부엌 옆 베란다 쪽으로 돌렸다. 기름기가 없거나 애벌 설거지를 마친 깨끗한 그룻을 헹굴 때는 큰 양동이에 사용한 설거지 물을 받는다. 생선 담은 그릇, 고추장 양념 묻은 그룻을 설거지 할 때는 하수도로 바로 흘러들어가게 한다. 양동이에 모아진 나름 깨끗한 물로 텃밭에 물도 주고 걸레도 빨고 베란다 청소하는데 사용한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줘야 하는 여름철에도 수돗물 틀어서 텃밭에 물을 준 적이 없다. 여기서도 역시 뇌와 몸을 써야 한다. 설거지 종류에 따라 호스를 하수구로 빼느냐 양동이에 두느냐를 신경쓰면서 부엌 베란다와 부엌을 왔다갔다 한다.  




 

잠 자기 전에, 외출 하기 전에 가스 밸브가 잠겼는지 살피는 것에 더해 모든 스위치가 꺼져 있는지, 모든 플러그가 뽑혀 있는지 확인한다. '다시 보자, 불조심'의 에너지 절약 버전 '다시 보자, 스위치'


 

온수를 사용한 후에는 수도 꼭지를 냉수 쪽으로 돌려 놓는다. 그래야 보일러가 일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며칠 전 깜빡하고 온수 쪽에 수도꼭지 두었다가 룸메에게 걸려 거실에서 '자아비판'을 행해야 했다. 어디에서나, 언제나 깜빡하지 말고 에고고고 에코라이프. 엄마에게 전해다오~화투는 못 쳐도 치매 걸릴 일은 없다고 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