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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서 골프치지 않는 자의 행복을 위한, 디버블링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1. 3. 29.


                                                     한 달 반만에 혼자서 처음 간 카페, 그 곳에서 침 묻혀 가며 읽은 디버블링



목발 짚고 5분 거리의 동네 카페를 20분에 걸쳐 혼자 걸어가 척 펼쳐든 책이다.
누구의 도움 없이, 택시 타지 않고, 옆구리에 가방을 끼우고 나 혼자 밖에 나가다니
마치 엄마에게 늘 받기만 하던 김장김치를 내가 직접 담가 고향집에 보낸 것처럼 대견했다.
교통사고 난지 거의 한 달 반만의 쾌거. :-)
그것은 카페에서 책 읽는 즐거움. ㅋㅋㅋ

내가 찾은 오타도 많고 내가 모르는 경제학 수식 오류도 있어서
우석훈씨 블로그에는
“1,500부의 초판을 사준 독자를 초대해 사과하고 간담회라도 갖고 싶다”는 글이 올라오고
그 댓글로 “수정해서 찍고 있는 2판으로 불량품(?)을 바꿔달라”는 제안이 있음에도,
바로
전에 나왔던 생태요괴전, 생태페다고지에 비해 한결 재미있게 읽었다.
이전 책들에 나온 문제의식과 대안들을
함지박에 넣고 싸그리 버무려 한결 맛깔나게 차려냈고
강준만의 해학과 비스무레한, 사회과학서적의 문어체 말고
우리끼리 ‘명박씨’ 성토할 때 열라 수다떠는 구두체의 말투가 다정하다.

나는 우석훈 씨의 장점이자 기여는
‘생태경제학처럼 지역학에 기반하는 학문마저 유학하고 돌아와야 하는 현실’에서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을 생생히 보여주고 우리네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처럼, 조순이나 정운찬이나 시카고 학파들이나 모두 ‘디테일'에 약해
한국사회의 도면을 이리저리 요리저리 뜯어본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 큰 이야기만 해왔다.

우석훈이 드는 소소한 예들도 너무 한국스러워서 징글징글하다.
핀란드의 작곡가인 시벨리우스가 살아 있을 때,
그의 집 상공으로는 작곡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고 비행기 운항을 금지시킨 반면
박경리 선생이 한창 토지를 집필 중일 때 그가 살던 집이 택지개발지구로 편입되어
강제 수용을 당한 탓에 토지문학관이 건립되었다는 것.
프랑스 노동부는 독거노인 및 청년 실업까지 같이 해결하도록
노동과 연대부로 확대 개편했고, 여기에서 노동, 가족, 노인 문제를 다룰 때
한국에서는 노동부가 갑자기 ‘고용노동부’로 악화된 것 등. (대체 뭥미??)

토건족의 공사다망한 ‘공사주의’도 징글 몸서리쳐진다.
산불 진압시 도로가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임도’를 만들어 땅투기를 해 먹고
농업기반공사가 어느덧 한국농촌공사로 바뀌어
농업행위가 아니라 각종 명목의 건물과 도로건설에 지원금이 나가고
결국 공사할 곳이 없어지자 보존대상인 자연을
국민경제의 재생산 양식 내에 폭력적으로 삽입시키는 4대강 공사가 밤낮으로 진행되고

계속해서 블라블라블라~고잉온~~
(오늘도 열라 파고 있겠지?)

토건과 쇼비니즘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는 디버블링이 오기 전
생태적 전환과 파시즘적 전환 중 하나를 준비해야 한다.
우석훈씨 왈, 우리가 추진하는 방식 그대로 디버블링을 맞는다면
잃어버린 10년의 일본형이 아니라
60년대에 세계 5강의 위치에서 끝없이 몰락했던 아르헨티나형이 될 가능성이 높단다. (아흑! 뭔꼴이고~) 

뒷감당은 평생 아파트 하나 장만할 꿈은 언감생심, 원룸도 감지덕지,
다음세대 재생산은 어느 메요, 내 목구멍도 포도청인 우리, 탈토건 세대가 해야 한다.
디버블링이 경제학 교양서가 아닌, 우리 세대의 처절한 실용처세술로 읽히는 까닭이다.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정규직, 완전연봉제, 지방도시에 지하철 건설 대신 무료버스,
집 대신 방을 꿈꾸는 세대를 위한 주거권, 주 4일 수업, 생태 교부금과 생태세 등
우석훈씨가 제안하는 대안들을 보면서 나름 행복했다.

이 땅에서 ‘골프 치지 않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대안들.

“누군가에게 골프를 치지 말라고 할 생각도 별로 없고,
그들의 취미 생활이나 단련 행위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골프 치지 않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더 즐거울 수 있는
그런 국민경제를 지난 수년간, 간절하게 희망했다.
우리는 더 즐겁고, 더 명랑하고, 더 행복해야 한다.(298쪽)“

강박적으로 들리는 명랑과 행복일지라도
나 역시 골프 치지 않는 우리가 더 행복할 수 있는 국민경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좋았다.
그것만으로도 이 만원이 넘는 책값도, 500쪽이 넘는 쪽수도 감당 할 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