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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Info

집안으로 들어온 농약, 살생물제 (biocide)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2. 11. 14.

영어로는 바이오사이드 Biocide, 우리 말로는 살생물제.
살아있는 미생물, 세균, 바이러스 등 사람이나 동물을 제외한 모든 생물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되는 물질을 의미한다.

즉, 논밭에 뿌리면 농약이고 농사 외 용도로 집, 학교, 공장, 사무실, 화장실 등에서 사용하는 '비농업용 농약'인 셈.

마트 선반에 진열된 살충제, 살균제, 소독제, 보존제, 항균제 등이 '살생물제 (biocide)'의 범주 안에 하나로 묶어진다.

사람 여럿 잡았지만 지금껏 공산품에서 약사법의 의약외품으로 관리 수준이 달라진 사실 외에는

실질적으로 어떤 피해보상이나 대책도 나오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도 살생물제에 포함된다.



 여러가지 가정용 살생물제의 종류

환경부의 <바이오사이드 관리정책 로드맵 마련> 연구의 착수보고회에 가기 전에 인터넷에 '살생물제'라고 쳐봤다.

기대했던 세정제, 욕실청소제, 탈취제, 살균제, 세제, 항균제 등의 정보는 별로 뜨지 않고

불교의 자비심 넘치는 언설로 페이지가 점철되어 나왔다.

그제서야 바이오사이드라고 무심코 불렀던, 외국어라서 그 뜻이 그닥 전달이 안되었던 단어를 새삽스레 우리 말로 불러보았다.

살생이라니.

우연히 티벳트 불교에 대한 다큐먼터리를 보았던 것이 생각났다.

늦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그 청춘같은 시기에, 여전히 춥지만 새움이 파릇파룻 떨면서도 삐죽 땅을 뚫고 나오는 그 시기에,

티베트 사람들은 발걸음을 삼가고 되도록 외출을 자제한다.

나올 일이 있어도 온 발로 걷지 않고 발 앞꿈치를 이용해 조심조심 걷는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다큐먼터리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티베트 사람들은 미생물이나 씨앗의 싹 등 작은 생명들이 소생하는 시기에

혹여라도 인간이 이 생명들을 무심코 짓밟아 죽이지 않도록 발걸음을 조심한다." 

봄의 기운이 움트는 시기, 겨울을 뚫고 나온 햇볕이 가장 고마운 시기에 티베트 사람들은 특별히 살생을 삼간다.


작년 문래예술인마을 텃밭을 시작하는 즈음에 사람들이 물었다.

철공서의 쇳가루가 날리고 공기도 안 좋아 보이는 영등포에서 어쩌자고 농사를 짓느냐고 했다.

너무 지당한 말씀이어서 중금속 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먹을 만하다고 검출시험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는 먹을 거리에 잔류하는 미량의 농약에도, 중금속에도 부르르 떨면서

어쩌자고 농약을 집에서, 사무실에서, 화장실에서, 급식소에서 마구 뿌리는 걸까.


유럽연합에서는 살생물제에 쓰이는 성분은 회사가 신고를 하면 평가와 승인을 거친 후에만 사용할 수 있다.

당국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도 생활용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국내와는 달리,

살생물제의 경우 반드시 승인된 성분 목록에 해당하는 성분 만을 사용해야 하고 그 외의 성분은 승인을 거쳐야 한다. (positive list)
미국에서도 살생물제의 활성물질과 최종제품은 모두 환경청 (EPA)의 승인을 받아내만 하고,

환경청에서 직접 제품에 들어간 성분을 찾아보고 그 유해성 정보를 알리는 사이트도 운영한다. 



www.epa.gov/pesticides/chemicalsearch


유럽연합에서 금지시켜야 한다고 뽑은 살생물제 성분 목록에는 가습기 살균제의 PGH도 포함되어 있다.

2013년 2월까지 시장에서 퇴출시키라고 지목하고 있는 성분이다.



제품표기도 엄격하다.

유럽연합에서는 살생물제에 '비독성', '무해', '환경친화적', '천연'이라는 광고 문구를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에 '아이에게도 안심'이라고 버젓이 써놓고 사람이 죽었어도

옥시 벌금 5,000만원, 홈플러스 벌금 100만원이 전부인 상황에서 보니 참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정책이구나 싶다.


올해는 살충제와 농약으로 죽어버린 새와 숲을 이야기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나온지 50년 되는 해이다.

레이첼 카슨이 고발한 DDT는 여전히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하지만 비농업용 농약은 논밭과 숲을 건너 집안까지 침투해버렸다.

욕실 선반에 살생물제 하나쯤 놓이지 않은 집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살생, 이라는 단어는 말 자체도 무서운데 살생을 위해 돈을 주고 이것저것 생활용품을 사다 쟁인다니.

우리 참 잘못 살고 있구나, 이러다가 벌 받겠다는 종교적 결론으로 귀결되고 마는 건 또 뭥미. -_-;;

침묵의 봄 50주년, 우리는 우리네 생활마저도 침묵의 봄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걸까.


*살생물제로 인한 사고
-2010년 미국 7개 주에서 살충제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호소한 경우 111건
-2011년 5월 태국에서 휴가를 즐기다 갑자기 사망한 20대 뉴질랜드 여성의 사인:

  호텔방에 사용된 독성 농약으로 분류되는 클로르피리포스 성분
-스페인 호텔방에 사용된 살생물제로 인해 MCS 신드롬 발생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살생물제 성분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살충제 성분은 총 55개다.

이 중 클로르피리포스를 비롯해

△피리미포스메칠  △바이오레스메츠린  △알레스린  △바이오알레트린 △에스바이올 △붕산

△페니트로치온 △프로폭술 △히드라메칠논 △퍼메트린 △피페로닐부톡시드 △피레트린엑스

13개는 미국과 EU 등에서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사용을 금지한 물질이다.


*reference

-농약관리법상 취급 제한 물질까지 버젓이 모기약으로 유통 (신동아 2012년 1월호, 송화선 기자 자료) 참고

http://blog.daum.net/foodtox/8699579

-(주) 켐토피아 살생물제(biocide) 관리정책 로드맵 마련 착수보고회 발표 자료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