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co Info

기업하기 좋은 나라? 건강하기 좋은 나라!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2. 12. 8.

초록투표 시즌을 앞두고 각 단체마다 각자의 주제로 프레시안에 연재 글을 쓰는데

사무처장 깡 샘의 바쁜 일정 탓에 '아뿔사, 나는 왜 요새 안 바쁜가!!'에 걸려 대타로 쓰게 된 글이다.

그래도 프레시안에 글이 실리다니 아유 기뻐. ㅋㅋ

(-> 평민다운 이 촌스러운 기세는 뭐다냐. 이러다가 프린트해서 코팅이라도 하겄네, 잉~ -_-;;)

 

아이들 건강 생각한다면 '초록'에 투표하라!

['초록'에 투표합니다]<8> 기업하기 좋은 나라? 건강하기 좋은 나라!

 

저녁이 있는 삶, 내 컵으로 마시는 커피

 

6시 퇴근 후 집 앞 동네카페에 들러 '저녁이 있는 삶'을 시작하기 전, 텀블러를 준비한다. 요새 카페에서는 일회용 컵을 쓰면 컵 보증금이 1000원이니 무서워서 일회용 컵을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 모세혈관처럼 퍼져 나간 전국의 카페들로부터 1년간 돌려주지 못한 보증금들을 모으면 내곡동 사저쯤이야 거뜬히 살 수 있다. 그러나 이 돈은 안전하고 6개월 안에 생분해되는 친환경 물질을 개발하는 녹색화학 기금으로 사용된다. 카페, 일회용 컵 제조업체, 무엇보다 종이컵이나 테이크 아웃 컵을 휙휙 버리던 소비자들까지 일체 단결하여 '가스통 할아버지'의 기세로 과도한 조처라며 거세게 반대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결국 시행됐다. 뜨거운 물을 부어도 환경호르몬이 안 나오며 쓰고 버려도 인간의 일생보다 더 빨리 사라지는 일회용 컵이란 없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밥값보다 더 비싼 음료를 파는 프랜차이즈 카페들의 일회용 종이컵에서 갑상선 호르몬을 교란하는 '과불화화합물 (PFCs)' 이 검출되었다. 이 유해물질은 프라이팬, 피자 종이, 팝콘 봉지, 고어텍스, 일회용 컵 등에 사용되어왔다. 일단 이것이 인체에 들어오면 그 양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5년이 걸린다. 한국인들의 혈액 속에서 과불화화합물이 광범위하게 검출된다는 연구와 여성 갑상선 암 발병률이 세계 1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책이 탄력을 받게 되었다. 또한 텀블러 사용이 생활화되면서 환경호르몬인 프탈레이트와 안티몬이 검출되던 생수를 사 먹는 대신,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먹는 사람이 많아졌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주 반다눈이라는 마을처럼 대학 캠퍼스와 공공시설의 매점에서 플라스틱 생수를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곳곳에 정수기가 설치되고 있다.

 

어린이가 건강하기 좋은 나라

 

이렇게 동네 카페에 들러 텀블러에 차를 마시며 생각해보니, 참 변해도 많이 변했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가 나부끼던 시절과 국민이 '건강하기 좋은 나라'가 모토가 된 시대를 비교하자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요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새집증후군의 원인이 되는 유해물질이 나오는 건축자재를 사용할 수 없다. 툭하면 유해물질 검출기준을 초과했던 학용품과 어린이 생활용품의 기준도 엄격해졌다.



  학용품 유해물질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는 초등학생 어린이들 여성환경연대

 

환경호르몬인 프탈레이트가 나오는 PVC 소재의 플라스틱은 학교 안에서 사용이 금지되었고, 학교에서는 예전에 잡곡밥 검사를 하던 시절처럼 XRF라는 첨단 장비로 어린이들의 학용품을 검사한다. 납과 카드뮴이 들어있던 실내화는 갖다 대기만 해도 중금속 수치가 찍히는 기계 덕에 안전한 소재로 변경되었다. 변화된 분위기를 감지한 대형마트들은 어린이에게 건강한 물건만을 취급한다며 물품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유해물질이 들어있는 학용품과 어린이용품은 선반에서 밀어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건강에는 아날로그야!

 

여기는 무선인터넷이 되는 카페이지만 전자파에 얼마나 노출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우리 동네 전자파 지도가 나와 있어 어떤 곳이 전자파가 강한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국제암연구소의 발표로는 전자파는 발암가능물질인데 우리는 선진국에 비해 전자파 노출이 1.2배에서 3.4배 정도 높았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건강에는 아날로그가 좋다고 추천하는 대통령께서 스웨덴보다 414배 높았던 국내 전자파 기준을 일시에 스웨덴 기준과 동일하게 낮췄다. 또한 14세 이하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휴대폰 광고는 금지되었고 휴대폰을 살 때는 가격과 성능, 약정기간과 할부금 정보와 함께 '휴대폰 전자파 흡수율(SAR)'이 공개된다. 요새는 전자파 흡수율이 낮은 건강한 휴대폰 광고도 나오는 지경이다. 당연히 전자파 지도에서 최고의 수치를 달성한 송전탑 주변 주민이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고, 그 여파에 밀양의 송전탑 건설은 벌써 중단되었다. 미래의 먹을거리가 '원전'이라고 소리 높이시던 전 대통령도 전자파에 덜 노출되고 있겠지?

 

세계 최초, 생활용품 전성분표시제 시행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는 사람들 여성환경연대

 

 

가장 생활에 와 닿았던 제도는 세계 최초로 생활용품 전반에 전성분표시제를 적용한 거였다. 2008년부터 화장품에는 전성분표시제가 시작되었는데 생활용품에는 사실 난망했었다. 그러나 소비자원이 가습기살균제의 피해자들이 낸 집단분쟁조정의 결과를 발표하고 나서 상황은 한판 역전승. 폐 이식 수술과 사망사건의 피해자는 물론이고, 단순 구매 피해자들이 집단분쟁조정에 참여함으로써 배상액은 가습기살균제 업체들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궁지에 몰린 생활용품 업계에서는 전성분표시제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손소독제, 곰팡이제거제, 빨래 세제, 모기약, 구두약, 욕실세제 등 어떤 제품이든 라벨에 성분이 적혀있다.

 

미국에서는 '안전한 생활용품 법 (Safe Chemical Act)'이 이제야 슬슬 통과되는 모양인데, 우리가 미국보다 더 빨랐다. 빠름빠름빠름~ 2012년 국감 기간에 김영주 의원이 어떤 성분을 쓰는지 정보를 내놓으라고 해도 '기업영업비밀'이라며 모르쇠하던 기업들이 전성분표시제를 받아들이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또한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보면서 기존의 화학물질 법으로는 관리가 안 되는 살생물제(biocide) 성분은 '살생물제 규제 및 관리법'을 신설해 따로 관리한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살생물제는 따로 관리하고 있으며, 살생물제가 들어간 제품은 제품 표기에 '유기농, 천연, 내츄럴, 안전' 등의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 캐나다의 토론토 시처럼 공공장소나 시설에서는 조경을 목적으로 농약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례도 개정되었다.

 

대통령의 피 뽑아 거둔 성과, 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청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 (이하 화평법)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다. '정보 없이는 시장에 나올 생각도 말라'는 정신이 구현된 유럽연합의 신화학물질 관리법 (이하 리치법)에 따르면, 시장에 유통되는 화학물질은 업체가 미리 등록하고 안전성 정보를 제공하여 평가를 받아야 한다. 안전성 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성분은 사용할 수 없도록, 그래서 어처구니없이 화학물질이 사람 잡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단도리를 하는 것이다. 이 리치법을 국내에 맞게 적용한 것이 화평법인데 그 동안 기업 하기 좋은 나라답게 기업들의 눈치를 보니라 리치법처럼 제대로 된 화평법이 통과되지 못했다. 이제 건강하기 좋은 나라에서는 발암물질, 생식독성, 생태독성 물질을 규제하고 안전성 자료를 갖춘 성분만이 유통되도록 화평법을 전격 통과시켰다.

 

또한 그동안 기술표준원에서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으로 제품을 관리하고, 환경부에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으로 성분만을 다루던 부처별 업무가 하나로 모아지게 되었다. 환경부에서 제품과 성분의 안전성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나오면서 유럽연합의 화학물질관리청(ECHA)처럼 환경부 산하에 화학물질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예방대책을 세우는 기관이 설립될 예정이다. 이 기관에서는 공신력이 있는 발암물질목록을 펴내고 이 목록에 따라 당장 금지할 성분, 단계적으로 사용을 금지할 성분, 대체가 가능한 성분 등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물론 대통령 한 사람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건강하기 좋은 나라' 버스를 타고 전국을 투어 하면서 유해물질에 대해 알리는 캠페인도 하고, 대통령과 서울 시장의 혈액을 뽑아 유해물질이 얼마나 나오는지 공개하면서 정책이 변한 거였다.

 

날마다 투표, 바로 나의 삶

 

가습기살균제 사건, 구미 불산사고, 라면 스프에서 벤조피렌 검출 등 생활 속 화학물질로 인해 생명을 잃고 고통을 받고 큰 비용을 치렀다. 우리네 삶은 화학물질 없이 생활 자체가 안 될 정도이지만 그로 인해 건강과 생태계 피해는 무섭게 높아만 간다. '화학이 미래를 창조했지만 동시에 미래를 도둑질했다'는 말이 맞다. 초록 투표를 통해 화학물질 정책을 평가하면서 내 생활도 많이 변했다. 결국 우리는 선거 날에만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의 선택을 통해 내 인생의 투표를 거행하니까 말이다. 초록 투표를 통해 알게 된 가장 큰 깨달음이 아닐까.

 

글 금자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