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very day

전주에서 처묵처묵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2. 5. 8.

내려간다면, 난 전주로 갈거라고 생각해왔다.

외갓집의 기억에, 음식도 맛있고, 평지라서 자전거 타기도 좋고, 한옥마을 덕에 된장질을 누릴 수 있는 수많은 카페들,

운전만 제외하면 전라도와 충청도를 합쳐놓은 듯한 느릿한 태도와 말투, 온화한 성격,

스타벅스가 들어설만한 적당히 큰 도시지만

눈만 돌려도 여기저기 빈 땅과 텃밭들을 찾아볼 수 있는, 운전면허 없어도 대중교통 덕에 불편하지 않은 곳,

서울과 적당히 멀되,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서울 나들이 쯤이야 걸리는 시간도, 교통비도 감당할만한 곳.

그래서 전주였다.


고향인 광주는 적당히보다는 규모가 너무 크고 너무 억세고 (마치 나처럼? -_-;;)

무엇보다도 그곳에 거주하고 계신 우리 부모님과

'스프가 식지 않을 만한' 거리에 살면서도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할만큼 쿨한 관계를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아마 내 집 비밀번호를 어떻게든 알고 '삐삐삐삐' 문을 따고 들어와 냉장고에 김치를 넣어놓는 흔적을 남기시겠지. 


강의차, 금요일에 전주에 내려가 2박 3일을 머물다가 왔다.

블로그에 자기가 갔던 맛난 집, 숙소, 거리 등을 포스팅하는 사람들 팔자를 부러워하면서도

(혹은 에너자이저들의 열정에 감탄하면서도!)

휴대폰 사진첩에 사진만 몽땅 찍어놓고 절대, 네버 에버, 포스팅 따위를 하지 못했던 인생을 한탄하다가

오늘은 '전주'니까 마음먹고 블로그질.

그다지 자랑할 거리도 없지만 역시 여행은 봄이좋아, 전주가 좋아, 라는 마음으로 :)

무엇보다도 처묵처묵을 기억하고 말테닷! 라는 다짐으로!!



             전주 한옥마을에 피어난 청보리, 나도 텃밭상자 이런 멧돌같은 놈으로 하나 가지고 싶다고!

             

             채식커리 '상덕' : 문구, 완구, 서적의 예전 간판위에 나무와 타이어로 업사이클 upcycle 

    

             상덕의 입간판: 채식의 녹색이 파릇파릇


             채식카레 상덕의 운영시간은 11:30~오후 3:00까지

             오후에 상덕 옆 카페 '스토리'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자니,

             상덕의 주인장이 오셔서 3시 이후의 삶을 즐기고 계시더랬다.


             메뉴는 그러니까 매운맛, 부드러운 맛 단 두 개.


             매운커리, 상덕빵, 요거트 세트

 

             내부 모습


맛은 깔끔한 편,

커리가 홍대 산울림 소극장 앞의 '봄베이 키친' 의 빨락 빠니르 정도는 아니지만

채식, 짧은 운영시간,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가게 인테리어, 간판 재활용에서 풍기는 철학을 망라하면

한옥마을에서 여자 혼자 여행하면서 낮에 햇빛쬐며 기분좋게 식사하기에 강추.

경기전 뒤쪽, 교동아트센터가 위치한 길을 걷다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전주 갈 때마다 한옥마을에서 기거한 탓에 전북대 앞으로 숙소를 새로 정했다.

'또마 하우스'

캐릭터 귀엽고 가격도 적당하지만 (준특실 55,000원, 특실 65,000원: 주말기준)

방은 토마 하우스의 캐릭터로 좀 귀엽고 욕조가 넓고 특실에는 방안에 욕조가 있고! 외에는

일반 모텔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특히 주말에는 정말정말 시끄럽다.

옆의 '안경나라'에서 틀어놓은 버스커버스커 노래를 따라부르며 잠들어야 한다.



             파리, 서울, 도쿄의 휴먼 프로젝트 '또마하우스'




             주차장 벽화도 산뜻


                     

                                                                 http://www.ttomahouse.com/



             어느 숙소나 엘리베이터를 안 타고 계단으로 다니다보면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빨래감, 청소도구, 세제.

             머무는 동안 청소 안해도 된다고 미리 말씀드리고, 낮에 나가있는 동안 뽀송하게 마른 수건을 재사용하고

             5층 이하는 짐 옮길 때 외에는 계단으로! 숙소에서 나누어주는 일회용품패키지는 다시 돌려드리자! 

             여행으로 탄소발자국을 탕진한 여행객들이 그나마 지켜야 하는 예의랄까. 



             전북대 앞에서 망고를 하나 시켜놓고, 김현진의 책을 읽었다.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그러나 망고의 연인이 되고 싶어!

             제철과일도 아니고, 국내산 과일도 아닌데

             여행에서 풀어진 마음, 먹고싶은 것 탐닉.



             전주비빔밥으로 유명한 가족회관!

             고기는 빼 주세요, 란 말도 잊고 시켜버렸다. -_- 처묵처묵!

             (여행하면서 처묵처묵에 실려 점차 정치적 개념 상실 중)

             전주 택시아저씨의 "고궁이나 한국관 가지 말고 가족회관이 진짜다"에 빠져 들어간 곳,

             무슨 비빔밥에 이 황송한 반찬들이란 말이냐. 

             반찬도, 손님도 많아 반찬 옮기는 쟁반을 통째로 상에 올려주신다. 지금 봐도 침나와!


             너무 한국스럽게 처묵처묵하다보니

             (먹지는 않았지만 친구따라 남부시장 '피순대' 집 투어로 눈과 코까지 한국적 맛으로 담금질된 상태)

             느끼한 것이 땡기는 '호강에 초쳤네' 모드가 되어

             전북대 앞 '레몬테이블'을 찾아 갔다.

             (전북대 앞 네오다다 맞은편 할리스커피 2층)


             꿀에 찍어먹는 따끈한, 갓 구운 파이

             꿀단지의 저 '쳇'하는 척 하면서 은근 자랑질하는 표정은 뭐냐. ㅋㅋ           


             그린 샐러드 파스타

             친환경 채소 처묵처묵


             우리 사람 무형광 무표백 좋아한다 해~

   

             그리고 느끼한 떠먹는 떡피자! 



                                         오늘의 친환경 채소 알림판


대략 2박 3일간 먹은 음식과 숙소.

실은 대박 맛난 '메밀 방앗간'을 빠뜨렸는데

메밀옷을 입힌 후라이드 치킨과 메밀 냉면을 하는 곳이다.

메밀을 빻던 방앗간을 그대로 살려 식당을 만든 정겨운 곳. 

'육식의 종말'과 '동물해방'을 떠올리면서 비빔냉면만 처묵처묵할라고 했는데 

내 앞에서 후라이드 치킨을 먹는 친구를 보니      .........  ............

한입만  ............

아........ ................. 


친구와 내가 내린 평가는 우리가 먹어 본 치킨 중 제일 맛있었다는 것.

나는 정녕코 한입만 먹어봐서 미련과 아쉬움과 한 입 더의 욕망과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른 처음의 최고 높은 효용만을 맛본 꼴이라

과대미화의 위험이 있지만서도

전국 쵝오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채식커리에서 시작해 후라이드치킨으로 마감하고 만 처묵처묵 여행이여,

전주가 좋아! 

(하지만 개념상실은 반성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