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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작은 가게에서 어른이 되는 중입니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8. 6. 25.



일하는 곳에서 행사가 있을 때는 소풍가는 고양이에서 도시락을 시켜먹고는 했다. 서울 시내에서 1회용품을 쓰지 않고 아기자기한 '벤토'에 도시락을 싸서 날라주고는, 다시 그 도시락을 회수하러 오는 곳은 많지 않다. 소풍 가는 느낌이 퐁퐁 솟아나는 디자인과 깔끔한 메뉴와 집밥 같은 건강한 맛도 좋았다. 그리고 비대졸 청(소)년과 어른이 모여 일을 통해 의미를 찾는 작업장이라는 점도 마음에 와닿았다.  

 

홈페이지 따르면 "소풍가는 고양이는 사회적기업 ㈜연금술사가 운영하는 소박하지만 소신있는 가게입니다. 대학에 가지 않은 비대졸 청(소)년과 어른이 협동해 ‘공평하고 공정한 일터’를 만들고, 일을 통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곳"이다.


소풍가는 고양이의 그간의 기록을 담은 책이 나왔다. 제목이 고스란히 책 내용으로 현현하는, 어쩜 이렇게 제목을 잘 지었지, 라고 감탄하게 된다. 이름하야 『우리는 작은 가게에서 어른이 되는 중입니다』. 



책을 읽다 문득 깨달았다. 노동을 통해 어른이 되어 가는 여정을 거친 것은 청(소)년뿐 아니라, 이미 다 커버린 나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생계만 지탱할 수 있다면 노동은 하고 싶지 않다는 바램과는 달리, 청년도 성인도 노동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삶의 의미를 구하고 사람과 사물에 책임지는 방법을 배우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일자리는, 노동은 정말 '중허다'. 부부나 파트너 관계처럼 평생 고민하고 평생 노력하고 평생 부여잡을 화두가 바로 노동이다. 이 책은 어른이 되는 가는 노동의 장을 만들면서도 시장에서 살아남아 임금을 마련한, 가없는 기록노동으로 가득하다. 어떤 직장이 좋은 직장일까에 대한 고민, 적절한 임금과 적절한 노동시간을 위한 분투가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점철된 요식업계에서 펼쳐진다. 


흔히 월급 많고 오래 다닐 수 있는 직장을 ‘좋은 직장’이라 하지만 국제노동기구(ILO)는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정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모두를 위한 기회”가 좋은 일자리라고 천명했다. 그런가 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는 보고서에서 “질 좋은 일자리는 단순히 좋은 임금, 밝은 전망만을 뜻하지 않는다. 개인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근무 환경, 직장을 통해 포부를 품고 자신이 사회적으로 쓸모 있으며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자존감을 주는 일자리를 의미한다. 근무 환경의 질은 근로자의 정신과 신체적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 이런 다양한 면을 관찰해야 한다.”며 일자리의 질과 행복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밝혔다. 150    




일 속에서의 자율성인가 무엇인가. 동료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회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청소년 구성원의 의견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가. 업무 지시와 잔소리는 어떻게 다른가? 어른과 꼰대는 어떻게 다른가? 자기 일을 다 하지 못했을 경우 퇴근해도 좋은가, 아니면 남아서 끝까지 해야 하나? 그렇다면 이것은 초과 근무인가, 아니면 역량 부족인가? ‘주인’의 책임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꼼꼼함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노력하는 자세는 어떻게 길러지는가? 168쪽  


글쎄, 저런 심오한 질문이 식재료를 썰고 요리를 하고 배달사고를 일으키고 무단결근을 하고 회의를 하는 구체적이고도 고단한 노동의 결을 따라 풀어헤쳐진다. 그리고 그 질문을 푸는 끝판왕은 사업이 확장되면서 청(소)년보다는 어른이 일의 전반을 맡게 되는 상황에서 자치를 단행한 것이다. 어른들은 뒤로 한 발짝 빠지고 청(소)년에게 가게 운영 전반을 떡, 하니 맡긴 것. 그리고 몇 달간 질풍노도와 같은 사건사고를 거쳐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는다. 여전히 답을 모색 중인 '노동'하는 질문과 바램으로 끝마치는 대답. 


자치를 시작할 때 품었던 합리적인 의심은 솔직히 말하면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규모를 확장하고 생산을 늘리는 공격적인 성장 자체가 목적이 되어 다른 목적을 희생시키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돈 앞에서 무너지거나 돈에 압도당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문득문득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내뱉게 됐다. … 6개월의 시간은 그렇게 배운 것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이었고, 배운 대로 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코딱지만 한 가게에서 너무 지나친 거 아닌가,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런 시간을 보내다가 망하면 어쩌나 걱정되고 불안해지는 마음과 힘겹게 싸운 시간이었다. 212쪽 


그렇다고 우리가 생존을 넘어서는 것,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에 압도당하지 않는 방법을 찾은 건 아니다. 그 해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저 소풍가는 고양이를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구성원들과 나눌 수 있고 다양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적절한 이윤, 모두에게 적절한 보수, 적절한 노동량,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적절한 노동 시간, 적절한 의사소통, 적절한 고민, 적절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우리에게 맞는 ‘적절한 성장’이 무엇인지 찾아가고 싶다. … 213쪽 


결론은? 소풍가는 고양이는 성미산 마을 한 자락에서 도시락 사업을 하고 있으며, 아니, 케이터링과 다과사업으로 확장했으며, 책에 이어 다큐먼터리 영화도 개봉할 예정이다. 여전히 영업 중입니다. ㅎㅎ 이렇게 여전히 영업 중인, 시장의 자리를 지키고 버텨서 대안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과 작은 가게들이 많아지기를 꿈꾼다.  


개인적으로 소풍가는 고양이가 만든 아래 평가기준을 스스로도 써먹어 볼 참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실력과 성장 항목을 정한 뒤 모두 모여서 각자 어느 정도인지 평가했다. 역량은 모두 네 가지다. 상품을 만드는 ‘생산의 기술’, 다른 사람과 함께 작업하는 ‘협력의 기술’, 스스로 노력하는 ‘연마의 기술’, 마지막으로 내가 어떤 사회적 장소에서 일하며 회사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파악하는 ‘조직의 기술’. 네 가지 큰 항목에는 다시 세부적인 실천 항목을 달았다. 205쪽 



소풍가는 고양이 홈페이지

http://picnicc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