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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life

생리컵, 내 인생의 공로상을 받아줘.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8. 3. 10.

생리대 유해물질 검출시험 결과를 받아보고는 ‘릴리안’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분명 잘 팔리는 제품으로 조사대상을 골랐다는데, 화장품 이름 같은 이 브랜드를 처음 봤던 탓이다. 이건 뭐, 재벌가 자제가 버스 요금이 얼마인지 모르는 시츄에이션이랄까. 내게는 15년 전 일회용 생리대를 써 본 경험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나는 생리컵과 면생리대만으로 월경혈을 처리해왔다. 지금껏 아낀 돈과 쓰레기만 따져도 대안생리대는 내 인생의 공로상 정도는 받을 만하다.


날마다 들고 다니는 파우치 속 물건들

생리컵, 대나무 칫솔, 손수건, 고체 치약, 자운고 연고(립밤 및 핸드로션 대용)


2017년 10대 뉴스에 선정될 정도니 일회용 생리대 유해물질 이야기는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면생리대에서도 일회용 생리대에서 검출된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이 비슷하거나 더 높은 수준으로 나왔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다르다. 최초 한 번만 삶아도 96% 이상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리대 파동’이 터졌을 때 재고가 없어서 못 팔릴 만큼 면생리대가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건강과 안전성으로만 따지면 여전히 면생리대가 ‘갑’이다. 이는 면생리대 사용 후 생리통이 줄었다는 여자들의 ‘간증’에서도 증명된다. 그럼에도 나는 완경 때까지도 끄떡없을 수십 장의 면생리대를 쟁여놓은 채, 생애 첫 해외직구로 생리컵을 사버렸던 것이다. 보통 면생리대 빨기가 귀찮아서 생리컵으로 갈아타고들 하지만 다른 이유에서였다.  

15년 전인 당시에도 ‘신문물’ 좀 아는 페미니스트들이 생리컵을 말해왔지만, 가격 장벽과 실패의 두려움에 사기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두 달간의 인도 여행을 위해 짐을 싸는데 면생리대 부피가 전체 옷 부피와 같으니 지를 수밖에. 결과적으로 손가락 두 개 크기에, 깃털 무게의 생리컵 덕에 훌쭉해진 짐을 쌀 수 있었다. 그뿐인가. 생리컵은 질 내에서 월경혈을 받기 때문에 피가 질 밖으로 흐르는 축축한 느낌이 없다. 은하선 작가의 표현처럼 보지로 ‘굴 낳는’듯한 기분 끝! ‘뽀송뽀송’의 시작이다. 여행이 끝날 즈음 숙소 샤워실의 야구공만한 하수도 구멍에 생리컵을 빠뜨리고 할 수 없이 일회용 생리대를 쓰면서 알게 됐는데,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쓰레기통이 구비된 화장실을 찾기 힘든 인도에서, 다 쓴 생리대를 길가 쓰레기 방치장에 몰래 버려야 했던 것이다. 쓰레기 무단 투기라니, 인사 청문회에서 이것만은 밝히지 말아다오. 

당시 생리컵 정보는 지금만큼 구체적이지는 않았다. 그저 나는 겁이 없었고 탐폰 사용자라 삽입형 생리대에 익숙했고 무엇보다 인도라는 곳에서 절박했다. 그래서 생리컵 중 가장 단단한 천연고무 재질의 제품을 구입해 한 번에 집어넣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생리컵을 빼내는 과정이었다. 공기를 빼지 않고 힘을 줘서 마구잡이로 생리컵을 끄집어내는 바람에 몹시 아팠다. 애를 낳을 때 이런 고통인가 싶었다. 그럼에도 생리컵은 자주 갈지 않아도 되므로 산고(?)를 참는 노력으로 열심히 사용했다. 이후 질에 삽입된 생리컵의 한 부분을 구부려 공기를 뺀 다음 천천히 생리컵을 꺼내는 방법을 터득하고서야, 기가 막혔다. 귓밥 파는 것만큼이나 쉽고 간단하고 느낌도 없잖아! 신이시여, 그 고통은 무엇에 쓰는 겁니까.  


다양한 생리컵의 모습 (사진| 여성환경연대)


그러니 인터넷 상의 생리컵 정보를 살펴본 후 시도하는 것이 좋다. 요약하자면 

1. 월경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컵 사이즈를 고른다. 양이 많으면 큰 컵, 작으면 작은 컵 선택. 

2. 월경기간 동안 자신의 중지를 질에 쑤욱 집어넣어 질 입구에서 포궁까지의 길이를 잰다. 손가락을 다 넣어도 닿는 것이 없으면 높은 포궁 (긴 생리컵 선택), 손가락이 거의 다 들어가 뭔가 닿으면 보통 포궁(취향 따라 선택), 손가락을 일부 넣었는데 뭔가 닿으면 낮은 포궁! (짧은 생리컵 선택), 나는 자전거 탈 때 생리컵 꼬리가 걸리는 감이 있어 꼬리를 살짝 잘라내 쓰고 있다. 

3. 취향에 따라 단단하거나 말랑한 컵을 선택한다. 말랑하면 압박감이 적고 넣기도 쉽지만 컵이 질 내에서 잘 펼쳐지지가 않거나 월경혈이 새기 쉽다. 단단한 컵은 탄력이 강해 질에 넣기만 하면 잘 펼쳐지는 반면 압박감이 있거나 뺄 때 아플 수 있다. 

4. 머리로만 생각하면 오히려 더 어렵다. 3번 정도 월경 주기를 거치면 몸으로 사용법을 익히게 된다. 포기하지 말고 시간을 들여 익숙해지자. 

5. 넣고 뺄 때는 마음에서도 몸에서도 힘을 털어내고 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진행하자. 

실리콘 재질의 생리컵의 경우 ‘실록세인’이, 천연고무 재질의 생리컵의 경우 니트로사민이 우려된다. 아직 생리컵 사용으로 인한 건강정보는 보고되지 않았으나 민감한 사람이라면 유의하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일한 재질으로 만들어지고 날아갈 것처럼 편리하고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생리컵을 계속 쓸 예정이다. 지금보다 더 다양하고 더 기발하고 더 안전하고 더 환경 친화적인 월경용품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내 삶과 월경 경험을 바꾼 페미니즘 만세.     


구체적인 생리컵 사용 정보: 생리컵 정보(Terra) 블로그를 참고하세요!   

http://terrabozi.tistory.com  


*언니네 마당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