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co life

우리는 쓰레기 없이 팔기로 했다! '더피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7. 6. 23.

    망원시장을 사랑한다. 

     홍대의 힙한 거리를 걷는 것보다 파자마 입고 주전부리를 사 먹으면서 돌돌이 시장 가방 끌고 거니는 망원시장 산책이 몸에 배었다. 공동체 화폐 '모아'를 삼만 원 쯤 지갑에 넣고 망원시장에 가면 세상에, 이토록 다양하고 풍부하고 생생하고 예쁜 생명들을 꼬박꼬박 먹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러니까 가끔은 망원시장 한복판에서 '성당'이나 '절'에서 느끼는 숭고한 기분에 휩싸인다. 내일이라고는 없을 사람처럼 일상의 자잘한 순간순간이 너무 어여뻐서 감격하게 되는 느낌. (미쳤구나 ㅎㅎ) 

     망원시장에 갈 때는 장바구니, 밀폐되는 글라스락, 양파망, 재사용 비닐봉지 등을 또박또박 챙긴다. 되도록 흰색 스티로폼 용기에 채소를 올리고 랩으로 둘둘 말아놓은 가게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파는 것들을 펼쳐놓은 곳을 찾는다. 생각보다 이런 가게들이 별로 없어서 단골이 생겼다. 내 입맛에 제일 잘 맞는 반찬가게 '남경야채' 사장님은 우리 집 글라스락 무게를 아신다. 두 말 없이 글라스락에 반찬을 넣고 뚜껑까지 딱, 덮어주신다. 인심이 후해서 무채를 공짜로 주시곤 하는데 이때만 '크린백' 비닐에 담아주신다. 그래도 검정 봉다리에 두 번 싸주시지는 않는다. 파, 감자, 고구마, 당근 등은 큰 양파망에 담아서 가져온다. 생선이나 고기는 플라스틱 반찬통에 넣어 달래서 그날 먹을 양만 빼놓고 물로 헹군 후 즉각 냉동실로 고. 이젠 신기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반찬통에 담아주신다. 망원시장에서 돌아와 식재료를 차곡차곡 정리한 후에 남는 쓰레기는 거의 없다. 아, 요즘에는 수박 반 통을 싸고 있던 비닐랩이 나오지. 수박 한 통은 무겁고 양이 많고 냉장고에 들어가지를 않아 반 통을 사는데 이 수박을 싸고 있는 비닐랩은 어쩔 수 없다냥.



미리 조금 수고함으로써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 하는 것, 리싸이클링

함께 간 단추의 모습

더피커는 성수동 주택 1층에 자리잡고 있어서 브런치 즐기기에도 좋다.  


     그래서 독일, 파리, 뉴욕 등에 있다는 '제로 플라스틱' 가게의 소식을 들을 때 망원시장에도 이런 가게가 하나 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백 번 정도 생각했다. (내가 사업가 기질이 있었다면 시민단체 그만 두고 망원시장에 가게를 냈을 텐데!) 혹은 파리바케트의 직영점 파리크로와상이나 맥도날드의 맥카페처럼 이용객이 많고 다양한 생협 매장 중 몇 곳이 선도적으로 '제로 플라스틱' 샵을 한 쪽에 열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생협에서 주요 식재료를 구입하지만 가끔 생협이 아니라 망원시장을 이용하는 이유도 생협은 이미 포장된 재료만 팔기 때문이다. 모두 비닐봉지에 꽁꽁 싸여 있다. 아, 유정란만이 종이 골판지에 들어있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하다는 성수동 서울숲 근처에 '제로 플라스틱', 혹은 '제로 웨이스트' 가게가 생겼다. 바로 '더 피커(The Picker)'. 작년에 안식월에 해외에 있을 때 이 소식을 접하고 메모장에 '더 피커'라고 적어 놓았는데 이제야 방문했다. 직접 용기를 가져오거나 가게에서 용기를 사서 식재료를 담아 간다. 곡물은 호텔 조식뷔페 때 보던 씨리얼 분배기 같은 곳에 참하게 쌓여 있고, 양파와 당근 등의 채소는 바구니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대나무 칫솔, 씻어쓸 수 있는 스테인리스 혹은 대나무 빨대, 텀블러, 면 주머니, 유리용기, 낙엽 접시 등 '플라스틱 프리 샵'에서 구할 수 있는 물품이 오밀조밀 자리를 차지한다. 



     함께 갔던 우리 팀 단추와 나는 스테인리스 빨대와 대나무 칫솔을 샀다. 여름에도 종종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지만 이 스테인리스 빨대를 써보고 싶은 마음에 텀블러에 덜그락 덜그락 얼음이 덜컹거리는 찬 음료를 담았다. 쭉쭉 빨아마시리라! 득템했다. :)  

     그런데 성수동은 내게 너무 멀고, '더피커'는 너무 힙하다. 나는 유기농 미국산 크랜베리 같은 먹거리가 아니라 무농약 땅콩이나 식혜 같은 것을 장 보는 '망원시장' 스타일의 생활인. '더피커'에서는 생활인이나 시장의 향취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곳에서 파는 메뉴인 버섯렌틸, 과카몰리처럼 '브런치'스러운 느낌이랄까. 문제는 '더피커'가 아니라 실제 삶 속으로 '쓰레기 없는 가게'가 스며들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문화이다. '더피커'가 그런 문화를 바꾸고 조금 '미리' 수고해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최고로 블링블링하다는 것을 뽝뽝 어필해주기를. 

애니웨이, 망원시장에 '제로 웨이스트' 가게 생기면 쌍수들고 달려갈 거에요. 자원봉사라도 할 거임. 




성수동 '더피커'  

http://map.naver.com/local/siteview.nhn?code=38273880&_ts=1498170784293

영업시간  

매일 11:00~20:30

매일 15:00~17:30 break time

토요일 12:00~18:00

일요일 휴무


주요메뉴 

버섯렌틸 9,000원

과카몰리 10,000원

슬림그린 6,500원

리얼그린볼 9,000원


서울특별시 성동구 서울숲2길 13

지번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1가 685-502

전화번호 010-8688-3828 

https://www.instagram.com/thepicker

http://www.facebook.com/thepicker.offi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