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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life

비건 패션을 넘어선 정치적 올바름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3. 3.



비건 패션을 넘어선 정치적 올바름 


신문 칼럼을 쓰는 활동가 주제에 무신 망발인가 싶지만, 언젠가부터 신문보다 패션잡지를 보는 것이 더 즐겁다. 근래 감동을 선사한 필리버스터만 제외한다면, 패션계만큼 정치적 선동을 ‘엣지’ 있게 보여준 분야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자보처럼 “나는 비닐백이 아니랍니다”를 새긴 힌드마치의 에코백이 대박을 쳤을 때 낌새가 왔다. 이 도도한 흐름은 우유나 달걀까지 먹지 않는 가장 엄격한 채식주의자 ‘비건’(vegan)을 일컫는 ‘비건 패션’으로 이어졌다. 비건 패션이란 생산과정에서 동물학대가 자행되는 가죽이나 털을 사용하지 않은 옷이나 가방 등을 의미한다. 사실 비건 패션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동물의 동영상을 통해 오랫동안 강매하듯 존재해왔었다. 그러나 세계적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가 전면에 나서고 패셔니스타들이 시위하듯 돈을 쓰는 명품 인조모피 브랜드 ‘쉬림프’(Shrimp)의 탄생으로 싸구려 인조모피는 ‘잇아이템’으로 승격되었다. 자유총연맹의 산실 같은 미국에서 사회주의 운운하는 샌더스 후보가 돌풍을 일으킨 것처럼, 패션계는 고루하게 들리는 ‘정치적 올바름’을 스타일로 승화시켰던 거다.







쉬림프(shrimps) pre spring 16 

http://shrimps.co.uk/collections/pre-spring-lookbook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듣던 이야기 아닌가. 일상을 채우던 철, 나무, 짚 등의 천연소재를 합성수지가 대체한 결과, 수많은 인간이 넘치도록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자연에서 인출한 광물성, 동물성, 식물성 소재만으로 지금의 생활수준을 유지했다면 이미 지구 10개쯤은 우주의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을 거다. 백여 년 전만 해도 종이 원료가 부족해 이집트 미라의 붕대를 풀어 쓰고 대영제국의 파운드 화를 넝마와 걸레 천으로 찍어냈다. 하지만 이제 역사는 자연에서 빌려온 천연소재가 아닌, 화석연료를 가공해 인류가 만들어낸 합성수지로 채워진다. 화석연료는 대량의 유기체가 지구 땅밑에서 오랫동안 열과 압력을 받아 생성된 에너지다. 즉 엑기스 팩에 담긴 진국처럼 억만년 동안 우려낸 생명의 즙이 화석연료로 농축되었다. 어떤 원료가 자동차와 난방 연료는 물론 칫솔, 인공관절, 섬유, 비닐봉지, 원단, 단열재, 페인트, 화장품, 매트리스, 태양광 패널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는 초창기에 자동차를 “기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대두 농장에 투자했었다. 그러나 그는 뭘 해도 식물에서 뽑은 재료는 화석연료의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 깨달았을 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합성수지의 점령 결과 우리 몸에는 환경호르몬이 흐르고 지구에는 썩지 않는 일회용 플라스틱이 쌓이고 있다. 또한 탄소순환고리의 바깥에 있는 화석연료의 탄소가 대량으로 배출되면서 기후변화로 인한 대멸종이 점쳐진다. 최근 플라스틱 업계는 포드의 초심으로 돌아가 옥수수, 대두 등 재생가능 원료를 이용해 ‘그린 플라스틱’을 개발 중이다. 더 급진적으로는 수많은 물건과 편리함을 보장하는 ‘플라스틱 삶’을 기꺼이 벗어버린 사람들이 물건 다이어트와 단순한 삶의 기쁨을 간증한다. 


그러니 동물성 소재를 합성소재로 대체한 ‘비건 패션’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게다가 합성소재라니! 윤리적으로는 옳되 환경적으로는 옳지 못한 아슬아슬한 진정성 아닌가. 그럼에도 부유하고 우아한 여자가 공기처럼 모피를 걸치고 나오는 영화 ‘캐롤’을 보고는 비건 모피를 사고야 말았다. 우물쭈물 찾은 변명은 올 겨울 구입한 새 의류는 오직 이뿐이고, 그밖에는 친구들 옷장과 재활용 가게에서 건진 옷이라는 사실이다. 






부유하고 우아한 여자의 완성, 모피 코트 

하지만 '캐롤'은 1950년대가 배경이니 2015년의 패션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고효율과 친환경 기술에 힘입어 오히려 더 많은 소비가 일어나는 현상을 ‘제본스의 역설’이라고 한다. 하이브리드 차를 몰면 더 많은 거리를 달리고 멀쩡한 물건을 친환경 물건으로 바꾸는 식이다. 자본주의의 대안이 제본스의 역설을 넘어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는 삶에 이를 수 있을까. 우선 나부터 비건 모피를 얹어도 총 옷 가짓수는 줄어드는 역설을 실천해야겠다.








한국일보 2016.3.1에 쓴 <삶과 문화> 칼럼 

https://www.hankookilbo.com/v/02b1776a1919477086bf6e828b34ad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