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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life

[살림이야기] 나 혼자 닭을 키우지는 못하니까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5. 6.

<<살림이야기>> 2016년 04월에 실린 원고 

(2016년 일년 동안 친환경 도시살이로 살림이야기에 글을 쓰고 있어요. :) 


[ 친환경 도시살이-음식물 쓰레기 제로에 도전한다 ]

나 혼자 닭을 키우지는 못하니까

글 고금숙 _ 그림 홀링

주변에서 키우는 애완 지렁이는 꿈틀꿈틀 음식물 찌꺼기를 먹고 기특하게도 영양가 넘치는 분변토 퇴비를 싼다고들 했다. 그런데 우리 집 지렁이들은 빼빼 말라 죽어 갔다. 대신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몰려들어 내 사랑에 응답했다!





음식물 쓰레기의 70%는 가정과 소규모 음식점에서 배출된다.
전기의 경우, 아무리 가정에서 아껴 써도 전체 소비량의 80%를 차지하는산업과 상업용 전기를 줄여야만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나 음식물 쓰레기는 소규모 음식점과 가정집만으로도 전체 판도를 바꿀 수 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 국방비 예산 절반만큼
나는 짝사랑 중독자인가. 난 만지고 싶고 뽀뽀하고 싶어 애가 닳는데, 그놈들은 물어뜯거나 ‘하악질’만 해댈 뿐이다. 내 주변 비혼여성의 90%가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나 역시 부양해야 할 길냥이와 갚아야 할 대출금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수 없다. 그러면 뭐하나. 동물은 어린이와 노인을 싫어한다는데 ‘젊은 언니’인 내 사랑을 외면하는 걸 보니 눈이 삐었나 보다. 지렁이도 그랬다.
작정하고서 ‘환경부’스럽게 말하자면 이렇다. 음식물 중 1/7이 버려지며, 생활폐기물 중 음식물 쓰레기가 28%를 차지한다. 한국 국민 1인당 음식물 쓰레기 발생량은 프랑스나 스웨덴보다 많다. 2005년부터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용은 연간 18조 원인데, 2015년 국방비 총예산이 37조 원이니 국방비 예산의 절반만큼이나 된다. 2013년까지 폐기물 해양 투기를 금지한 런던협약에 가입한 나라 중 유일하게 한국만이 폐기물을 바다에 내다 버렸다. 게다가 음식물 쓰레기의 70%는 가정과 소규모 음식점에서 배출된다. 전기의 경우 아무리 가정에서 아껴 써도 전체 소비량의 80%를 차지하는 산업과 상업용 전기를 줄여야만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나 음식물 쓰레기는 소규모 음식점과 가정집만으로도 판도를 바꿀 수 있다. 즉, 우리 하기 나름이다.
다시 환경부 공익광고식으로 말하자면, 먹을 만큼만 요리하거나 덜어서 먹고, 상하기 전에 해치우고, 대량으로 장보지 않고, 냉장고 문에 식재료 이름을 유통기간 순서대로 써 놓아 쓰레기를 원천봉쇄한다. 나도 그랬다! 심지어 껍질째 먹는 건강식 마크로비오틱 요리도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 받아들였다. 배를 깎아 먹겠다고 읍소하는 룸메이트에게 껍질째 먹으라고 했다. 암만 그래도 양파 껍질과 북어 대가리 등 소화시키지 못한 쓰레기가 나온다.
그런데 획기적인 방법을 시행하는 지역도 있다. 서울동북여성민우회는 4천300세대가 사는 아파트에서 조리 전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 경기 팔당 유기농가로 가져가 퇴비를 만든다. 아파트 주민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 처리 비용을 아끼고, 유기농가는 믿을 수 있는 퇴비를 공급 받는 환상의 구조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있는 ‘신정 텃밭’에서도 주변에서 수거한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어 텃밭에 뿌린다. 미국 헬로우컴포스트는 주민이 음식물 쓰레기를 동네 텃밭으로 가져오면 텃밭에서 키운 작물로 바꿔 준다. 미국의 사회적기업 테라사이클은 대학 구내식당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를 지렁이 농장으로 보내고 ‘지렁이 똥’을 빈 페트병에 담아 친환경 비료로 판매한다. 인천 검암동의 셰어하우스 우리동네사람들(우동사)은 옥상에서 닭을 키운다. 닭들은 조리대 수챗구멍에서 꺼낸 음식물 쓰레기까지 다 먹는 대식가이다. 그리고 이 닭들이 싼 똥을 거름으로 만들어 텃밭 농사에 쓰는데 난데없이 쓰레기 속의 수박과 고추씨앗이 닭의 위장을 거쳐 땅에서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에 가까운 일이 생기곤 한다. 몇 년 전 바퀴벌레의 사랑만 받고 지렁이가 죽어나간 상자에서 수박 넝쿨과 감나무가 자라는 광경을 못 봤다면 나도 믿지 못했을 거다.

 

발효제 뿌리고 흙에 묻어 두는 ‘태평흙법’
내가 사는 서울 망원동 다세대 빌라에서 닭을 키우거나 유기농가로 음식물 쓰레기를 가져갈 수는 없는 현실. 맘 편하게 종량제를 믿고 싶지만 음식물 쓰레기의 일부가 매립되거나 소각되고 퇴비와 사료로 가공되는 비율은 20% 미만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태평흙법’이다. 농약과 비료 없이, 땅도 갈아엎지 않은 채 자연의 힘으로 농사를 짓는 ‘태평농법’처럼 흙에 맡기는 방법! 부엌에 습기와 냄새를 차단하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마련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넣는다. 간혹 한번씩 EM 음식물 발효 촉진제와 음식물 쓰레기 발효제인 ‘흙살림 부엌살림’을 살살 뿌려 둔다. 음식물 쓰레기 1kg당 20~30g 정도, 즉 김치 담글 때 배추에 양념 버무리는 정도로 섞어 주면 된다. 통이 찰 무렵 거름망 아래로 빠지는 수분은 하수도에 버리고, 거름망 위 음식물 쓰레기만 흙에 묻는다. 주변에 화단이나 자투리땅이 없다면 큰 화분이나 스티로폼 상자를 구해 음식물 쓰레기 절반과 흙과 톱밥, 낙엽 등을 절반 정도 섞어 준다. 흙만 이용해도 된다.
음식물 쓰레기 텃밭 상자는 건물 뒤편이나 옥상 등 집과 떨어진 곳에 둔다. 간혹 벌레가 생기거나 냄새가 나면 무조건 흙으로 덮어 준다. 그리고 ‘해가 들면 썩겠지’ 라는 마음으로 잊는다. 달리 ‘태평흙법’이랴? 6개월 후 열어 보면 윤기가 잘잘 흐르는 까만 흙이 당신을 기다릴 터. 단, 스티로폼 상자에게만은 태평하면 안 된다. 보일 때마다 재빨리 확보하자. 폐자재 줍는 분들이 금세 가져간다.

 

 

↘ 고금숙 님은 도시에서 ‘에코에코’하게 살아가기를 꿈꾸는 철딱서니 없는 비혼입니다.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에서 일하며 얼마 전에 《망원동 에코하우스》를 펴냈습니다.
↘ 홀링 님은 위로가 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카스테라 속 외딴방(holling60.blog.me)에 그림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