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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day

야성의 꽃다방, 나들이 "우리 제법 잘 사고 있...나요?"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1. 5. 18.
마포 FM 야성의 꽃다방 방송에 나가서 수다를 떨고 왔다.
제주에서 농사짓고 물질하는 라봉이 소개해서 진행자 잇지를 만나 섭외되었다.
마포구에 오래 살았고 친구들과 동거중이고 방송진행자를 알고 시간이 널널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ㅎㅎ
잠 못 이루는 언니들과 함께 하는 세상 뒷담화, 야성녀 코너 ㅋㅋ

http://blog.naver.com/femidio

헤드폰을 통해 자기 목소리가 들리는 라디오 방송은 처음이어서

마치 <엘워드>의 알렉스 피아제키 쇼라도 나온 기분으로다가 재미있고 약간 긴장되었다.

그렇다.
나는 마포구에 친구 세명과 함께 2년을 살았고, 전세 재계약을 통해 앞으로 좀 더 살아볼 예정이다.
그 전에도 친구들과, 아니면 룸메를 구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가난한 집 이사다니듯이
살다 찢어지고 다시 만나면서 동거 고잉온인 중년의 여인.
그래서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웠다.
아, 남들은 이렇게 살고 있군. ㅎㅎ
나는 이렇게 살고 있어요. ㅋㅋ

진행은 고길동과 잇지. 입담이 강력한 그녀들은 혈연가족과 살고 있다.
다른 수다 참가자는 무사고, 동거녀와 거주하는 생물학적 남성 페미니스트이다.

1.
군대축구처럼 흔한 스토리,
방바닥에 떨어진 한 올의 머리카락과 무심코 던져놓고 나간 타올 하나에 그 동안 울분이 빡터져
룸메 생활 몇 달만에 다시는 그 친구 끄댕이도 보기 싫어진다는
가사노동과 감정노동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었다.

우리 셋은 일주일에 한번씩 공동공간인 부엌, 거실, 화장실 등을 청소하고
꼭꼭 챙겨먹는 아침은 주 5일 중 월화(씨앗)/수목(금자)/금(깡)으로 나눠서 당번제로 한다.
주말은 같이 외식하거나 하고 싶은 사람이 알아서 식사 준비를 하고
생협 회원이고 망원시장산책을 사랑하는 내가 장을 본다.
대신 우리 '아저씨'  깡 샘은 하수구를 뚫고 못을 박고 영수증을 계산하고
텃밭화분 밑에 기거하는 바퀴벌레를 박멸한다.
방값과 생활비는 함께 나눈다.

살림을 함께 할 때에는 '손해'본다는 그 순간의 계산기를 두드리기 보다는

언젠가는 다른 형태로 서로서로 돌려받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엌에 세계가 들어있다'는 간디였나, 암튼 누군가의 말처럼
일상생활에 대한 철학이 서로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
밥은 꼭 집에서 하루 한 끼를 먹어야 하고, 생협이나 로컬푸드가 우선순위이고, 
겨울에는 양말을 신고 외투를 입으면서 난방을 낮추고
되도록 살림은 소박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겉멋없이!
살림을 인스턴트 음식처럼 해 치워서는 안된다는 합의나 이상점이 맞아야 할 듯 싶다.
그게 동의가 안되면 가사분담실패보다 훠얼씬 더 스트레스 받는다.
우리집은 환경단체 활동가가 둘이라서 만약 이 지점이 동의가 안되는 사람이 들어오면
식단부터 집 온도까지, 가전제품의 가짓수와 빈약함에 학을 떼고 나갈수 밖에 없다.
때마다 뽑아버리는 플러그도 귀찮을테고 말이다.

2. 동거인과 갈등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과정이나 노하우는?

흠, 잘난척해서 거시기하지만 지금까지 싸운 적은 없는 듯하다.
그게 우리가 잘난 인간들이기도 하거니와 :-)
구조적으로 세 개가 충족되면 싸울 일이 별로 안 생긴다.

첫째는, 반지하방도, 미닫이 방도, 칸막이라도 좋으니 자기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

둘째는, 화내지 않으면서 원하는 것이나 자기 의견을 솔직하게 말할 줄 아는 대화기술
그것을 감정적으로 소화시키지 않을 만큼의 서로간의 신뢰와 예의가 있는 관계일 것.
셋째는, 인생이나 생활의 단계가 너무 다르지 않아야 할 것.
예를 들어 한 명은 직장이 너무 바쁜데 한 명은 굉장히 널널하다던가,
나는 아이가 없는데 내 친구는 아이를 데리고 있어서 생활의 욕구와 경험이 다르다던가,
이렇게 함께사는 동안 서로의 인생의 단계가 다르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건 연애도 마찬가지잖아요. ㅎㅎ

3. 동거인이 갖춰야 할 덕목(?) 같은 것이 있다면?

우선 어른일 것, 아니면 어른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일 것.
그래야 서로가 타인으로서, 한 개체로서 존중감을 유지하면서도 애정을 나눌 수 있으니까.
일반적인 가족관계가 힘든 것은 서로가 타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이 아닐까.

<수영장>이라는 영화도 이렇게 말한다.
"결국은 부모, 자식도 서로 다른 존재인 거잖아요."
한가지를 더 바라자면, 개인주의적 코뮤니즘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캬아~더욱 좋다.

4. 비혼으로서의 삶, 혼자 사는 삶에 대한 마지막 마무리 멘트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지만,
혼자 사는 삶은 생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마치 큰 빵을 조각조각 자르면 표면적이 늘어나듯이
혼자사는 삶도 자기만의 화장실, 자기만의 부엌, 자기만의 살림살이를 모두 요구한다.
함께 쓸 수 있는 세탁기와 화장실과 청소기와 냄비를 혼자서 소유해야 한다.
정서적으로도.. .흠, 그렇지 않을까?
동거 파트너로 고양이 님을 추천합니다.


김어준은 정신적인 '어른'으로 성장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여행과 연애.
살림을 함께하는 관계맺기도 연애 만큼이나 인간을 '어른'으로 성장시킨다.
순간순간 도저히 이해가 안 가지만 그 사람의 스타일이라며 이해해야하고
나만 손해보는 것 같아 마음이 샐쭉해지다가도 어느 순간 내가 민폐를 끼치게 된다.    
내가 여성들이 주인공인 '섹스앤더시티'나 '엘워드'에 열광했던 이유 중 하나는
연애를 전면에 다루는 후면에 연애 그 이상의 위로를 주는 '프렌드쉽'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미드 속의 '프렌드쉽'이 다른 말로 하면, 가족같은 관계였을 것이다.
친구들 사이의 가족관계.

박완서씨는 부모와 자식에게 좋은 거리는 '스프가 식지 않을 정도'에 사는 거라고 했다.
지금의 동거녀들과 언제까지 함께 살지는 몰라도
가족같은 친구들과 그 네트워크 안에서, 프렌드쉽의 망 안에서
'스프가 식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왔다갔다 하며 살고 싶다.
(요새 '두 남자의 집짓기'라는 책에 눈독을 들이며 우리도?? 라고 눈을 빛내는 중이다.ㅋ)

결혼을 하든, 비혼으로 살든 어쨌든 우에노 치즈코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화려한 싱글, 돌아온 싱글, 언젠가 싱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