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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life/etc.

마지막까지 현역으로, 삶의 존엄을 잃지 않으셨던 박영숙 선생님.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5. 22.

석가탄신일이 금요일이었던 지난 주의 황금 휴일.

가까운, 그리고 노동 중독인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일주일 정도는 쉬어야 골든 위크(황금 휴일)라고 하는데

우리는 주말까지 끼고 3일 쉬면 황금이로구나,

황금이 유동 자산도 아닌데 국가마다 가치가 달라지는구나, 라고 푸념하고 있던 사이

황금 휴일에 서울을 뜨지 말고 대기하라는 사무처장 깡샘의 메세지가 문자로 날라들었다.

뭥미?

박영숙 선생님이 위독하시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 소식이 전해진지 하루 만에 박영숙 샘께서 돌아가셨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황금 휴일보다 먼저 머리를 스친 것은

닭튀김과 북한 순대와 우리 언니였다.

 

나는 지금까지 먹어본 닭튀김 중에 박영숙 샘께서 집에서 바로 튀겨주신 닭튀김보다 더 맛난 것을 먹어본 적이 없다.

교촌도 못 따라온다.

그리고 후배 활동가들을 위해 핸드메이드로 북한식 순대를 만들어 주셨고

집에 갈 때는 또, 그리고 이번에도 물론 본인께서 직접 구워놓은 쿠키를 한 뭉큼씩 싸 주셨다.

누군가의 결혼식이 신부의 드레스도, 결혼 장소도, 부케도 아닌 뭘 먹었느냐로 기억되듯

(거기 갈비탕 별로였어, 관자 스테이크 좀 맛났지~ 등으로)

선생님의 장례식장에 가는 길에 그녀가 차려주신 그 밥상들이 떠올랐다. 

곧이어 프로젝트 작성시 단체 정보를 적는 페이지 대표자란에 '박영숙'이라 적고 그 옆에

'우리언니'로 읽어지던 이메일 주소를 쓰던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고 말았다. 

우리언니, 란 말.

 

명망가들을 가까이서 보면 기대와 달라 실망스러울 때가 종종 있지만

박영숙 선생님은 '우리 언니' 같은 사람이었다. 

깨알만한 어린 활동가들에게 복사 한 장 안 시키고 물 한 잔 따라오라는 적이 없었다. 

4대강 공사 반대 시위의 뙤약볕에서, 칠순이 넘은 노인이 대중교통을 타고 이포대교까지 와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여성환경연대에서 일하면서 멋진 점은 이렇게 진정성 있는 멋진 언니들과 만날 수 있다는 거다.

 

생애 마지막까지 현역으로 살고 싶다고 하셨던 선생님,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을 잃지 않으셔던 우리 언니가 

편안하게 영면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