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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life/etc.

아날로그 필카의 오롯함과 어록의 향록, 이것이 우리의 삶 life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9. 27.

새언니에게 오빠 뒷다마를 깔 때마다 '당췌 무슨 대포를 맨날 갖고 댕겨? 개 띠라고 개 멋일까?"라고 했다.

오빠의 취미는 사진이었다.

요즘은 폰카도 잘만 찍히는데 어디 갈 때마다 목에 걸면 목 디스크는 

족히 걸리게 만들 DSLR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의아했다.

사진이나 이미지 좋은 블로그를 볼 때면 부러워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정작 사진기나 사진 찍는데 공을 들이는 사람들을 보면 '뭘 저렇게까지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프 사진전을 보고 나오는 길,

대포같은 DSLR을 매일 가지고 다니면 저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법칙이라도 있다면

목과 손목 디스크의 우려도 접은 채 DSLR을 늘 가지고 다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라이프 사진전은 인간 대 인간, 역사에 기억될 순간,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삶이란 세 부분으로 엮어져 있다.

아날로그 흑백 사진의 오롯함과 그 절묘한 아우라에 어울리는 어록의 향연이 세종문화회관 갤러리를 채운다.


포스터 출처: http://cakorea.com/archives/6570



둘 다 타고난 웅변가였고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성공한 정치인에 그림에 조예가 깊었다. 모두 우울증에 시달렸다.

제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비슷한 연대기를 지닌 두 정치가가 극대점에 대치한다.

한 명은 죽어서 더 추앙받게 되었고, 한 명은 다시는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기억할 사람이 되었다.

히틀러와 영국을 향해 진격해오는 그를 향해 '히틀러에 대한 투항은 없다'고 맞선 윈스턴 처칠이다.





간디와 체 게바라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지만 그 방법은 달랐다.

간디가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길이다"라는 비폭력 정신을 보여주었다면

체 게바라는 "정의를 지지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며 혁명이 성공한 쿠바를 떠나 남미의 게릴라가 되었다.

비폭력 정신과 사회주의 혁명의 지도자는 인도와 볼리비아에서 각각 총탄에 맞아 암살되었다.


앙리 마티스와 피카소는 당신들의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미술가로서 서로를 지목한다.

앙리 마티스는 "내 그림은 피카소 그림 옆에 놓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마릴린 먼로의 전 남편이었던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가 그녀가 죽고 나서 20년간 

매주 무덤에 프렌치 장미를 바친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마릴린 먼로의 비석 앞에 꽂혀 있는 그 장미를 사진으로 보자

미망한 사랑인지, 사랑을 자기에게 증명하려는 자기애의 발로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저 애틋한 마음이었다.


그런가하면 영 처음 접해본 이야기도 보았다.

헤밍웨이가 처음 보내온 '노인과 바다' 원고를 당시 한국전쟁을 취재하던 라이프지 편집장이

강원도 산간 부대 초소불빛 아래에서 읽고 그 다음달 라이프 잡지를 이 소설로만 채우기로 결정했다는 일화이다.

헤밍웨이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쓴다는 것은 ... 그것은 가장 고독한 삶이다"라고 말했다.





유리창에 난 두 발의 총탄을 통해 김구 선생이 서거하였다.

그 당시 김구가 머물던 경교장 앞마당에 모여 애도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선연하다. 

10일간 거행된 김구의 장례식에 모여든 사람들의 줄이 경교장을 넘어 서대문 앞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라이프지의 사진가 유진 스미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종군기자로 일하다가

오키나와에서 폭격을 당해 생사를 헤맬 만큼 크게 다친다.
살을 갉아먹는 고통 속에서 다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절망한 순간

정원을 산책하는 자신의 두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사고 후 처음으로 사진을 찍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의 제목은 '낙원으로 가는 길'이다.


이 사진 위에는 앤드류 매튜스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정녕 마지막인 것만 같은 순간에 새로운 희망이 움튼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1900년대를 담은 라이프지의 극적 사진은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을 담은 전쟁의 이미지들이다.

라이프의 창간인 헨리 루스는 '인생을 보기 위해, 세상을 보기 위해 (To see the life, To see the world) 만든

라이프가 결국 그렇게 바라지 않았건만 전쟁 잡지가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는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반전 메세지가 되고 만다.

사진은 이미지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겪어보지 못한 자에게 있어 전쟁이란 달콤한 것이다. (에라스무스)"


"항상 양심과 싸웠다.

혹시나 내가 남의 슬픔을 이용하지 않는가 하고"

베트남 전쟁 종군기자였던 라이프의 사진작가 래리 버로우즈의 말이다.

그는 베트남에서 사진을 찍다가 사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프가 찍은 모습이 한 쪽에 일방적이었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세계대전에서는 연합국의 모습만이, 한국 전과 베트남 전에서는 미군의 모습만이 남아있다.

전쟁의 처참함에 충분히 동의하겠으나 모든 전쟁이 똑같은 뿌리를 가진 것은 아니다.

같은 전쟁일지라도 2차 세계대전의 히틀러와 베트남전의 베트콩은, 그리고 한국전쟁의 북한군과 빨치산을

어떻게 동가로 놓을 수 있을까.

맥락이 생략된 전쟁 사진을 보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