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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ble

[퍼온글]수카라의 파머스 마켓 다이어리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2. 12. 8.

'마르쉐@혜화동'을 함께 만드는 마르쉐 친구들 '김수향' 샘이 일년 전 쯤 말씀하신

세계 곳곳의 지역농산물시장 마르쉐 이야기,

마르쉐@혜화동을 함께 꾸려가는 마리 끌레르가 글을 실어서 퍼왔다.


수카라의 파머스 마켓 다이어리

슬로푸드와 오가닉을 지향하는 카페 ‘수카라’를 운영하는 김수향은 멕시코와 일본의 동네 시장을 구경하며

마르쉐@혜화동을 그려갔다. 농민과 소비자가 직접 만나 먹을거리를 사고 파는 곳, 파머스 마켓 구경하기.



멕시코 산크리스토발 지역의 오가닉 마켓.

흙, 바람, 물. 한 번도 이 세 가지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당연한 것들이니 말이다. 일본에서 대규모 지진으로 원전 사고가 나던 날, 순식간에 그곳의 흙과 바람, 물은 사람에게 닿아서는 안 될 것들이 되고 말았다. 그곳의 흙에서 자라는 채소, 숨 쉬는 내내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바람, 물속에 사는 물고기 모두 그곳에서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곳에 남은 생명체는 죽거나 모양이 해괴하게 변했고, 사람들은 언젠가 생길지 모를 잠재된 재앙에 두려워했다. 그곳은 결국 폐쇄되었다. 땅이 죽었다. 원전 사고가 있던 날, 수카라의 김수향은 고향인 요코하마에 머물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그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을 보고 그녀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내가 쓰는 전기가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이 어떻게 내게 오는지조차 모르고 살았구나.’ 그리고 생각했다. 먹고 쓰는 것들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 직접 대화를 나누고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그렇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며 물건을 사고 판다면 좀 더 정직한 것을 구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르쉐를 상상하게 됐다.




아오야마 파머스 마켓의 채소와 채소 주스. 다양한 빛깔의 싱그러운 채소가 시장에 활기를 더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녀가 여행지에서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다.

농부가 직접 채소를 들고 나와 파는 파머스 마켓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곳은 그녀가 즐겨 찾는 아오야마의 파머스 마켓과 멕시코의 오가닉 마켓. 아오야마의 파머스 마켓은 일본 정부의 지원 아래 3년 전 문을 열었다. “아오야마의 파머스 마켓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는 거예요. 물건을 사는 사람은 이것저것 물어볼 것이 많고, 생산자는 자신이 가져온 것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랑하느라 바쁜 거죠.”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파머스 마켓을 쭉 둘러보면 물건이 순환되는 모습이 보인다는 거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집에서 키운 오이를 가져온 농부, 그 오이로 병조림을 만든 사람, 유기농 사과를 들고 나온 농부, 그 사과로 잼을 만든 사람…. 농부가 시장에 들고 나온 채소와 과일로 누군가 또 다른 먹을거리를 만드는 셈이다. 먹을거리의 원재료가 무엇인지 한눈에 들어오는 시장, 그곳이 아오야마의 파머스 마켓이다. 물론 대규모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가지고 나오는 물건의 양은 대형 마트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종류가 참 다양하다는 거다. 소소하게 농사짓는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종류는 오히려 다채로운 것.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왼쪽 흙이 그대로 묻어 있는 채소에서는 건강함이 느껴진다.

오른쪽 파머스 마켓의 채소는 다량 구매할 수는 없지만 품종만큼은 매우 다양하다.

멕시코에 여행 갔다가 들른 동네의 오가닉 마켓도 인상적이었다. “처음 멕시코에 여행 갔을 때만 하더라도 그곳에 대한 편견이 있었어요. 멕시코가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으니 분명 시장도 특별할 것이 없을 거라는 편견 말이죠. 하지만 의외였어요. 대개 선진국에서 파머스 마켓이 열리는 것이 일반적이라 멕시코의 파머스 마켓에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참 멋진 곳이더라고요.” 멕시코는 많은 채소와 과일의 원산지다. 많은 품종이 멕시코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지역마다 파머스 마켓의 규모와 색깔이 제각각이다. 그녀가 간 곳은 멕시코의 산크리스토발 지역에 있는 곳으로 커피 농사를 하는 부부가 처음 시작했다. 이곳의 모든 상품은 유기농으로 재배하거나 만든 것이고, 물건을 사고 파는 이들은 모두 동네 사람들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터를 잡고 농사를 지어온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서로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아는 사람들끼리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다. 이곳의 풍경은 참 소박하다. 고작 토마토 수십 개 들고 나온 할아버지도 있고, 달랑 채소 몇 가지만 파는 농부도 있다. 그렇게 아주 소소한 수확물을 들고 온 사람들은 물건이 다 팔렸다고 해서 금세 자리를 털고 떠나지 않는다. 장이 끝날 때까지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하루를 보낸다.




온 동네 사람이 모이는 멕시코의 파머스 마켓.

먹을거리에는 상상 이상으로 큰 힘이 있다. 우울한 날에는 다디단 초콜릿이나 생크림을 잔뜩 얹은 케이크를 먹으며 마음을 달랠 수도 있고, 기운이 빠진 날에는 몸에 좋은 보양식으로 힘을 충전하기도 한다.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빙수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단팥죽 한 그릇이 생각난다. 음식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능력을 가졌다. 바꾸어 말하면 동시에 몸과 마음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멀고 먼 곳에서 긴 여정 끝에 오느라 농약을 잔뜩 머금은 과일, 수확량을 늘리려고 유전자를 조작한 채소, 오래오래 같은 모양새를 유지하게끔 보존제를 듬뿍 넣은 온갖 음식들…. 대량과 대형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음식과 음식의 재료들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알 수가 없다. 먹을거리가 생산된 곳에서 소비되는 곳까지 이동하는 거리를 푸드 마일(food mile)이라고 하는데, 현재 우리 밥상에 오르는 음식들은 어마어마한 푸드 마일을 기록한다. 국내에 수입되는 뉴질랜드산 키위는 9994km, 미국산 밀가루는 20062km, 중국산 배추는 968km를 이동한 끝에 우리의 밥상에 오른다. 푸드 마일이 길어질수록 운송 과정이 길고 복잡하며 당연히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공해를 일으킨다. 그뿐 아니라, 밥상에 오르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더 많은 농약이 사용될 수도 있고, 더 많은 보존제가 들어갈 수도 있다. 지금 지구 곳곳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로컬 푸드 운동이 일고 있다. 로컬 푸드란 장거리를 이동하지 않은, 흔히 반경 50km 이내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말한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로컬 푸드 운동이 꽤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Know Your Farmer, Know Your Food’라는 신념 아래 로컬 푸드 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파머스 마켓은 로컬 푸드를 만날 수 있는 장이 되어준다.




멕시코의 파머스 마켓에는 채소와 과일뿐 아니라 치즈, 향신료 등 다양한 먹을거리가 있다.

작은 텃밭을 가꾸고, 동네에서 가꾼 채소를 사 먹고, 농부의 얼굴을 보고 구입한 과일을 장바구니에 담다 보면 우리의 밥상은 훨씬 정직하고 건강한 음식으로 채워질 것이다. 이것이 지구를 구하는 일이라는 거창한 신념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정직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물건을 사고, 그들이 자랑하고 싶어 하는 음식을 먹고, 깨끗하게 세척되어 얌전하게 비닐봉지에 담기는 대신 못생기고 흙이 묻어 있는 채소를 장바구니에 담다 보면 우리의 삶은 느리지만 건강한 변화를 만날 것이다. 그리고 마르쉐가 그 변화의 출발점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왼쪽 채소며 과일과 그것으로 만든 주스와 잼 등을 구입할 수 있는 파머스 마켓.

오른쪽 아오야마 파머스 마켓 한쪽의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


MC CREDIT
  • 에디터:   박민
  • 포토그래퍼:   김수향
  • 출처:  www.marieclair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