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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ble

텃밭의 진화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1. 11. 29.

에고고고, 춥다. 겨울이다. 
옥상에 있는 나의 애완 배추를 거두어들이며,
10마리의 배추를 기념하며 쓴다. 이름하여 '텃밭의 진화'
(실은 여성환경연대 소식지에 이미 썼던 글임 -_-;;;)

나는 “거울과 성교를 증오한다”라고 말한 보르헤스에 동의한다.
거울과 성교는 번식을 낳는다.
바퀴벌레의 번식도 싫지만 그만큼이나 인간의 번식도 싫었다.
어느 날, 퇴비용 음식물 쓰레기 속에서 ‘번식’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작은 새싹이 음식물 쓰레기와 흙더미 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더 많은 새싹이 ‘번식’하다가 번식의 결과물인 단호박이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했다.
그 단호박을 보는 순간,
자연의 순환과 유전자의 형질과 신의 섭리와 우주의 진리를 알게 된 기분이었다.
‘나를 미치게 하는 정원이지만 괜찮아’의 저자가 한 말이 떠올랐다.

“밭 한가운데에 선 나는 실존주의자였다. 캐모마일 밭의 카뮈였고, 샐러드 밭의 사르트르였다.
정원이 나의 전쟁터였다면, 골프 코스는 무간지옥이었다.
나는 밭에 거름을 주었고 자급자족과 건강, 신선식품에 대한 철학적 신념을 실천했다. 그 뿐이었다.”

나로 말하자면 옥상의 텃밭을 통해 기우제 올리는 농사꾼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고,
번식에 대한 울렁증을 극복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번식을 증오하는 인간을 낳는 생물학적 과정은 뭐 그렇다손 치겠지만,
내가 버린 씨앗이 해와 비를 맞아 단호박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기적 같았다.

지금 이 기적이 이 곳 저 곳, 도시 곳곳에서 번식하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에서 여러가지 새싹이 번식을 시작했듯,
도시텃밭도 옥상, 트럭, 캠퍼스, 병원, 감옥, 카페, 예술인 마을에서 자신만의 번식을 꾀하고 있다.
이름하야, 텃밭의 진화.


1. 트럭농장

가진 것은 낡은 픽업트럭 뿐인 뉴욕의 청년 둘이
트럭의 짐칸을 개조하여 움직이는 농장으로 탈바꿈한다.
옥상녹화기술과 대물림 씨앗을 이용해 뉴욕 한복판 도로를 질주하며 텃밭을  키우고 레스토랑 요리사와 주민들을 찾아가 직접 수확하게 한다.
트럭 뒷칸이 너무 작다고?
텃밭 친구들과 만나면 외롭지 않다.
트럭농장은 옥상과 소형 선박, 오래된 야구경기장, 맨해튼 아트 스튜디오 등 도심 속 곳곳에 마련된 텃밭 친구들을 찾아간다.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붕붕 자동차’의 원조 형님 격! 트럭농장은 도시 텃밭을 만나면 힘이 솟는다. 

트럭 농장 친구, 윈도우 텃밭 (창가에 걸어놓는 텃밭) 보기
http://www.windowfarms.org


사진 출처
http://fulltimewalker.tistory.com/entry/%ED%8A%B8%EB%9F%AD%EB%86%8D%EC%9E%A5-truck-farm
 
2. 어린이 텃밭 

캐나다 작은 마을의 교사 엘리너 보이토비치는 학생들이 직접 작물을 심고 키울 수 있는 ‘텃밭’ 프로그램을 시도한다. 아이들은 집 뒷마당에서 자기만의 텃밭상자를 돌보며, 작은 농부가 되어 마을 벼룩시장에서 농산물을 판매하기도 한다. 이들은 책임감과 자긍심을 넘어 지역사회의 먹을거리, 환경 문제, 건강 문제를 체화한다.

아파트 문화가 건재한 한국 땅에서 여성환경연대는 학교 앞마당에 어린이 텃밭을 열었다.
아이들은 학교 텃밭에서 봄부터 겨울까지 1년 작물을 모두 재배한다.
봄에는 새싹비빔밥, 여름에는 감자전, 겨울에는 김장을 해 먹으면서 학교 급식을 친환경, 지역 농산물로 바꿔낸다.
작은 농부들은 멀리 도시를 떠나 생태 캠프를 가지 않아도 학교 수업과 점심시간에 수시로 농사를 짓는다.

여성환경연대 굿바이 아토피 캠페인 로하스텃밭 가꾸기 홈페이지
http://www.goodbyeatopy.or.kr/ClassRoom/LohasGardenList.php
 
3. 캠퍼스 텃밭 

도시에서 그나마 녹지 공간이 남아 있는 곳은? 바로 공원과 대학 캠퍼스이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은 대학캠퍼스에 텃밭을 만들고 도시 청년들을 ‘레알 도시농부’로 거듭나게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고려대와 이화여대에서 ‘레알텃밭학교’에 참여한 젊은이들은 캠퍼스 텃밭에서 실습을 한다. 우석훈 씨가 제안한 도시의 실업 청년들이 ‘농업 공무원’으로 취직하는 날까지 캠퍼스 텃밭은 고고씽이다.

미국의 예일대, 아틀란틱대, 캐나다의 맥길대 등에서도 캠퍼스 텃밭이 생겨 텃밭작물을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사용하고, 인근 주민들에게 기부도 한다. 게다가 지역 농부들과 연계해 캠퍼스 안에서 파머스 마켓(농산물 직거래 시장)을 열기까지! 


 
4. 병원에서 희망을 만드는 텃밭 

노르웨이에서는 수감자들이 집과 농장을 오가고 농사를 지으며 치유된다.
치유의 힘이 필요하기는 몸이 아픈 사람도 마찬가지!
여성 암환우를 지원하는 ‘초록나무 캠페인’를 진행 중인 여성환경연대는 이대목동병원에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여성 암환우들은 일주일에 한 번 병원텃밭에서 농사도 짓고 텃밭치유수업도 받는다.  텃밭작물이 많이 수확될 무렵에는 가족, 친구, 병원 선생님을 초대해 텃밭 요리를 대접하기도 한다. 텃밭의 생명력이 환우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희망텃밭! 
 
5. 문래 예술인마을 도시 텃밭 

홍대 근처에 사는 나, 홍대 앞 집세의 가파른 상승세를 알고 있다.
예술가들도 홍대 근처 아뜰리에를 접고 다리를 건너 철공소 단지로 이주했다.
바야흐로 문래동 철공소 단지에 또리 튼 ‘문래 예술인 마을’의 탄생!
영등포 타임스퀘어를 선두로 으리번쩍한 건물들 사이에 파묻힌 철가루 날리는 재개발 단지에서 예술가들이 농사를 예술로 짓는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수압이 낮아 옥상에는 물도 잘 안 나오는 낡은 건물 옥상에 지역주민, 예술가, 철공소 아저씨들이 모여 상추를 따서 삼겹살 파티를 여는 중.
영등포로 이사하면서 여성환경연대가 꾸었던 꿈,
텃밭 농사를 잘 지어 홍대 카페에 유기농 채소를 공급하자던 바로 그 계획이 실행 중이다.
올 봄부터 홍대 ‘수카라 카페’는 문래 도시텃밭의 작물로 샐러드를 만들고 있다.
 
 여성환경연대 문래 도시텃밭 http://cafe.naver.com/mullaefarm

6. 카페 텃밭 
 

도시 된장녀의 상징인 카페, 그 카페에서 된장질이 아니라 호미질이 시작되었다.
합정동에 위치한 ‘별의별씨’카페의 옥상에는 1인 가구인 싱글녀, 싱글남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다. 스티로폼 박스, 화분, 쓰레기통, 바구니, 쌀자루까지 동원해 상자텃밭을 일구고 씨 뿌리기, 거름 주기, 잡초 뽑기를 하면서 카페를 소통하는 작은 광장으로 만든다.
여성환경연대의 ‘촛불켜는 가게’ 인 ‘얼티즌’ 카페도 팜카페로 다시 데뷰했다.
충무로 한복판 카페에서 농사짓고 수확물을 따고 농사 교육도 받고 진짜 된장질, 된장도 담근다. 
원예명상 프로그램까지! (것은 뭘까? ㅎㅎ)
 
별의별씨 카페의 옥상텃밭인 이웃랄랄라 cafe.naver.com/ecolalala
(요새는 카페에서 안 하고 각자 집에서 텃밭한다는 분위기 -_-;;;) 
팜카페 얼티즌 www.eartizen.com 
 
7. 일터에서 도시텃밭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의 한 켠에서 쌈지농부 직원들은 1,652 제곱미터의 밭에 농사를 짓는다.
이들이 짓는 농산물은 ‘오가닉튼튼밥상’의 음식재료로 사용되고, 농사 지으면서 만든 농기구와 공예품은 쌈지농부의 친환경 상품 매장인 ‘지렁이다’에서 판매되고,
이들이 디자인 컨설팅한 도시텃밭과 농가 제품은 곳곳으로 퍼진다.
쌈지농부는 자신들이 직접 도시텃밭을 기르면서 ‘농사를 예술로 짓는’ 방법을 전파해 사회적 기업을 꾸리고 있다. 이들은 친환경 농산물 쇼핑몰을 열고 관련된 아이폰 어플리케이션도 내놓을 예정이다. 도시텃밭이 스마트폰의 앱으로 진화하다니!
이래서 번식이 무섭다니까요. -_- 
 
쌈지농부 홈페이지 www.farmingisart.com

작년에 일본 긴자 거리의 건물옥상에서 꿀벌 키우는 곳을 방문했었다.
꿀벌 통은 달랑 세 개가 있었는데,
그 세 개의 통에서 100 킬로가 넘는 벌꿀을 수확해서 롤케잌을 만들어 판매했다.
그런가하면 ‘슬로우 워터 카페’를 운영하는 일본 젊은이들은
일주일에 삼일은 근처 텃밭에서 토종 콩을 기르고
그 콩으로 카페 음식을 만드는 ‘대두 레볼루션’을 일으키고 있었다.

도시텃밭은 양봉, 과수 재배, 예술, 아이폰 앱으로 번식과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그러나 상자텃밭을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바람 속에 일렁이는 하얀 고추 꽃,
아침 이슬이 방울진 토마토 열매,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어스름한 초저녁에 어울리는 가지 잎사귀 자체가
이 우주가 만든 진화의 선물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