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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House

우리집에 '깜박이'가 생겼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26. 8. 30.

빗자루를 사용하는 우리 집에 일반 청소기를 건너뛰고, 무선 로봇청소기를 입양했다. 청소는 내 룸메이트 담당인데 오매불망 청소기를 사고 싶어 했다. 그때마다 나는 "야, 후지무라 선생이 청소기가 쓰는 전기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들숨으로 먼지 빨아들여보랬어." 하며 들숨을 강요하는 내 기세에 눌려 결국 빗자루로 청소를 했다.

비전력 공방을 운영하는 후지무라 박사님 말처럼 먼지를 불어서 치우는 것은 별 힘 들이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는 반면, 들숨으로 흡입하는 방식은 뱃살이 빠질 정도로 힘이 든다. 청소기의 작동원리는 들숨으로 먼지를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쓴다.  

논리적 반박 불가한 사실 앞에서 내 룸메는 비질을 하며 순응하는 것 같더니, 어느 날 일회용 청소포를 쟁였다. 이거 산 거 아니고 언니가 안 쓰고 버린다 해서 가져왔다며, 10년은 너끈히 사용할 만한 일회용 청소포를 곳간에 일용할 양식을 쟁이는 것처럼 쌓았다. 와. 이렇게 빅엿을 멕이는 구만...... 나 일회용품 반대하는 직업으로 먹고살아.

그래서 나도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을 준비해 일회용품 따위는 못 쓰게 하겠다, 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내가 로봇 청소기를 당근으로 마련한 경위다. 전기를 사용하는 건 여전하지만 우리는 2주에 한 번 (이하로) 청소하고, 로봇 청소기는 바닥을 쓸면서 물걸레 청소도 동시에 하고, 지붕엔 태양광 패널도 12개나 달려 있으니, 이 정도 호사를 허용하기로 합니다!


7만 원에 샤오미 로봇청소기 E10 화이트가 우리 집에 생겼다. 그렇게 똑똑하고 섬세하며, 몇 번씩 같은 곳을 정성으로 쓸고 닦는다고 들었다. 로봇 청소기를 본 위층 하우스메이트는 드디어 우리 집에도 그 똑똑하고 일 잘한다는 이모 님이 오셨는가요?라고 환영 인사를 했다.

로봇 청소기를 쫓아다니며 하는 양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우리 집 청소 담당 룸메이트는 로봇 청소기의 청소가 끝나자, 그에게 '여사님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넙죽 절할 기세였다.

우리는 곧 그를 여사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알았지. 살림노동을 이모 님이나 여사 님 등으로 생각하는 것은 유아차를 유모차로 부르고, 육아도우미를 유모라고 하는 것처럼 성고정적인 단어라는 것을 말이다. 이런 말들을 사용하면서 여성과 남성을 고정된 성역할에 가두는 관행이 강화된다. 그게 자연의 법칙이 되는 거지. 원래 그래,라는 원래의 실체.

우리는 로봇 청소기에 '백집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집사는 남성형이고 가오 잡힌 명칭이지만, 젠더 불문하고 살림노동에 붙이는 단어로 존경의 마음을 담았다. 비서도 남성형 명사였으나 여성들이 맡는 업무가 되면서 그 전문성마저 하급 업무로 보는 인식이 생겨났다고.

원래 우리 집 기계들에는 '~짱'이라는 돌림자를 붙인다. 태양광 패널은 햇볕을 좋아하니 광짱이,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 기계는 반추동물의 혀처럼 교반봉을 돌린다고 해서 소짱이로 불린다. 하지만 로봇 청소기의 각 잡힌 행동거지에는 좀 더 예의 바른 이름을 붙여줘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백집사가 되었다.



여기 깜빡이라고 불리는 로봇 청소기가 있다. 2025년 교육영화제에서 보았는데, 깜빡깜빡이라는 영화의 등장인물이다. 할아버지와 함께 투톱 주연이다. 이렇게 경망스러운 이름에, 풀잎 장식물을 화이트 바디에 얹고 쪼르르르 할아버지를 따라다닌다. 우리 백집사 남은 화이트 장갑이라도 껴드려야 하는 포스지만, 깜빡이는 귀여운 키링을 달아줘야 어울린다.

나는 25분의 이 단편 판타지 영화를 보면서 기계와 인간의 관계,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는 심보선 시인의 말, 수리권과 리페어 활동까지 떠올리며 마지막에 깜빡이를 부르짖는 할아버지를 보며 울기까지. (주책바가지)

그니까 정말 좋은 영화였고, 수리상점 곰손에서 물건의 사망을 추모하는 마음, 배터리 부품 보유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수리권이 한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영화 이야기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_m.aspx?CNTN_CD=A0003041878

치매 노인과 로봇 청소기의 만남, 예상치 못한 결말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01."아버지, 저 이제 엄마 기일에나 올 수 있을 것 같아요."방바닥을 혼자 기어 다니는 이상한 로봇청소기 하나를 가져오던 날, 딸 영희(

star.ohmynews.com



영화를 보면 플라스틱 나무 잎사귀를 달고 뽈뽈뽈 할아버지에게 달려오는 깜빡이가 참으로 귀엽다. 깜빡이가 오래된 모델이라면서, 이런 구형 로봇 청소기보다 요즘은 더 좋은 로봇 청소기가 많다며 새로 장만하라는 서비스센터가 얼마나 잔인해 보이던지.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감성 충만한 수리권 영화다. 백집사 님과 함께 보고 싶다.

우리 백집사님은 이런 귀여운 맛은 좀 없지만, 그분의 절도 있는 움직임에 부응해 깍듯이 대하며 오래오래 함께 하기로!

백집사님의 입성에 감읍드리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