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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House

[거실] 망원동 거실의 '물물교환' 스토리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8. 3. 18.



망원동으로 이사온 지 5년여, 거실의 가구 위치를 바꾸었다. (봄맞이 대단장 인테리어 뿜뿜 기분으로다가...) 그러고 보니 다시금 친구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친구들! 고마워. 나는 지금도 자기들 물건을 소중히 잘 쓰고 있다냥~




5년 전 이사를 하다 보니 필요한 물건들이 생겨났다. 비 온 후 솟아나는 봄날의 고사리처럼 당췌 집만 옮기면 왜 그렇게 부족한 가구나 가재도구가 생기는지. 종이 박스를 뒤집어서 밥상으로 쓰다 이건 아니지 싶어 '이케아'와 '다이소'를 털어버릴 각오로 '지름신 쇼핑 리스트'를 썼드랬다. 때마침 절친이 이사를 하면서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한다며 살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집에서 물푸레 나무 테이블, 견고한 책장과 깜찍한 옷장, 그릇과 수저 등을 업어올 수 있었다. 


이렇게 집 안에  들어온 내 친구의 손때 묻은 가구와 살림들이 보기 좋았더라. 애초에 좋은 재료로 견고하게 만든 물건들은 어디서든 소중한 살림으로 다시 쓰일 수 있다. 물푸레 나무 테이블은 내 친구도 중고품을 구입한 거라 내가 세 번째 사용자였는데 넘나 마음에 들었다. 이후, 쇼핑은 우선순위의 가장 밑단에 내려놓고, 먼저 필요한 것들을 주변에 소문 내서 알음알음 구해서 장만했다. 바야흐로 6단계만 거치면 전 세계 사람과 연결된다는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 아닌가. 살림 많은 집일수록 고리적 냄새 나는 장롱과 서랍 깊숙이 존재 자체를 잊은 채 쟁여둔 살림살이들이 고여있을 거다. 한 달 정도 주변에 필요한 살림살이 목록을 소문내자, 젓가락, 국자, 행주, 바가지, 반찬 통 등 웬만한 부엌 살림과 가재도구들이 우리 집에 당도했다. “필요하면 구하라, 그러면 얻으리라”는 진리였다.


거실에서 내가 새로 구입한 가구는 빨간 색 의자 한 개, 온열기, 그리고 노트북 뿐.

 

생각지도 않았던 3인용 패브릭 소파도 굴러들어왔다. 내 친구 고양이가 성긴 소파 패브릭을 스크래치 삼아 긁어놓았길래 그 부분만 천으로 덮었더니 감쪽같았다. (고양이가 있는 집 패브릭 소파 경고...) 소파에 누워 책 읽는 호사를 누리자, 왜 영어에 소파(couch)에서 감자 칩을 먹으며 텔레비전 보는 ‘카우치 포테이토’라는 단어가 있는지, 여행자에게 공간을 제공하는 사이트 이름이 ‘카우치서핑’인지 들어가는지 알 것 같았다. ‘카우치(소파)’의 세계는 잠자리를 능가할 만큼 편안하고 아늑하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스크래치로 사용한 소파의 팔걸이, 천으로 가려놓았다.

 패브릭은 도시농부장터 마르쉐@의 다용도 장바구니 천 사용.

요즘 읽고 있는 펢! 뙇!! 다 읽은 책은 처분하고 현재 읽는 책만 놔둔다.


결국 우리 집 곳곳을 채고 있는 가구와 물건은 친구들 덕이다. 집에 놀러 온 친구들 역시 자기 물건을 발견하고는 낯설지 않다며, 남의 집 같지 않다고 후후 웃는다. 지금은 연락이 안 닿는 친구도 있지만, 물건을 통해 함께 였던 시간을 기억한다.    


'서울환경연합' 후원회 갔더니 선물로 준 노란색 화분, 

물을 주면 화분 아래 모여서 뿌리를 통해 재흡수된다.

세 명이 사는 집이라 테이블에는 세 개의 노트북.

방석은 이불 커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접어서 활용했다. (겨울철 엉덩이를 따뜻하게!)

바느질을 해야 하는데, 둘둘 접어 쓰다보니 까짓 거 몰라... 이런 시츄에이션.


이 도시에는 도자기가 많은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죠. 소파가 많은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죠. 단지 아직 서로를 못 찾을 뿐이에요. 이게 바로 도시예요.


카페에서 일어나는 물물교환을 소재로 삼은 영화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는 물건을 통해 ‘단지 아직 서로를 못 찾았을 뿐’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의 주인공은 “물건을 교환한다는 건 많은 이야기를 듣는 거야”라고 말한다. 영화는 중고와 자원 재활용에 초점을 맞췄던 시대가 가고, 나눔을 통해 관계를 만드는 ‘공유’의 시대가 왔음을 집어낸다.


그러니까, 이 글은 오년 전 물건을 넘겨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인증샷'이다. 앞으로 당신들로부터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바램을 담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