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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House

좋은 이웃과 쿠팡, 샘빌라에서 생긴 일

by 불친절한 금자씨 2026. 7. 25.

몇 년 전 샘빌라 입구

<좋은 이웃과 쿠팡> 경향신문 20260724 녹색세상 칼럼을 썼다. 나보다 쿠팡의 폐해를 더 잘 써낼 인공지능의 글쓰기를 두고,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고민했다. (내가 이렇게 괴롭게 엉덩이 붙이고서 원고를 한땀한땀 쓰는데 인공지능은 너무 쉽게 잘 쓴단 말이지. ㅠㅜ) 

이야기의 시작은 김애란 작가(a.k.a 사회학자)의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에 실린 단편 '좋은 이웃'.

 

 


소설의 제목을 빌어 이번 칼럼은 좋은 이웃으로 시작한다.

"좋은 이웃이란 뭘까? ‘좋은 이웃’ 타령이라니, 요즘 세상에 ‘성은이 망극하나이다’를 고하는 기분이 드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인상적인 이웃은 옆집 할머니였다."

 

사실 이 책이 넘 좋아서 어디라도 써 먹고 싶었다. 인공지능은 아마도 사심이 없으니까 좋은 이웃과 쿠팡을 연결하지는 못 하겠지. 난 좋은 책을 보면 엄훤 남들한테 영업하고 싶어 근질근질 사심 한가득인데.

샘빌라의 단톡방 대화와, 역시 지금도 옆집 이웃이자 오지라퍼인 옆집 할머니가 이야기의 축을 잡아 주었다.

여기에 자본주의, 사회계약, 부르주아적 라이프스타일이 기준이 된 결과 소비자 정체성이 시민적 정체성을 앞살하는 현상을 잘 보여주는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의 시선을 빌려서 썼다.

 

 

"구마시로 도루 작가는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에서 “소비자가 아닌 시민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낯선 사람, 낯선 라이프스타일과 맞닥뜨리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여지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썼다.

내가 쿠팡을 탈퇴했던 이유도 싸고 편리하게 구입하는 경제적 합리성을 넘어, 불편하게 부딪히더라도 서로에게 다정한 시민이자 좋은 이웃이 될 가능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우연히 같은 날 경향신문 위근우 칼럼니스트의 '위플레이'에도 소비자 정체성 이야기가 나왔다. 결국은 나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달까.

"소비자 정체성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이들에게 불만족은 구조의 개선이나 개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닌, 오직 반품·환불·별점 테러로 해소하는 것이 된다.
‘올공 시위’가 자신들의 명분을 위해 ‘참정권’이라는 개념을 선점하면서도 그 참정권이란 단어의 의미가 작동할 수 있는 민주주의와 사회 계약의 원리 안에서 정치적 저항의 언어를 구성하는 대신, 이번 이수지 콘텐츠에서 논란이 된 ‘재선거’라는 구호만 외치는 것은 딱 이런 수준이다.
......

진짜 문제는 ‘올공 시위’가 블랙 컨슈머라는 사실이 아니다(물론 큰 문제다). 웬만한 깽판을 치더라도 그것이 판매자-소비자 구도로 이해되는 한에선 상당히 쉽게 용인된다는 것이 진정한 문제다. ... 탈정치적인 척 참정권을 침해받은 소비자의 억울함만을 호소하는 한에서 그들의 갑질은 부수적 피해에도 불구하고 환불이나 반품 전까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 주권이므로."

 


엉,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런 맥락이었다고 꺼드럭해본다. (감히 내가 좋아하는 위근우 작가님 글로 은근슬쩍 끼워 팔아봄) 이런 막돼 먹은 사심이 바로 인공지능과 인간이 다른 점 아니겠어? 

 

현재 샘빌라 입구 (자동문 시스템이 아님)



경향신문 녹색세상 '좋은 이웃과 쿠팡'
https://www.khan.co.kr/article/202607232001015

경향신문 위근우의 리플레이
'올공 시위’라는 악성 민원인으로 완성된 이수지의 악성 민원 풍자 코미디
https://www.khan.co.kr/article/2026072306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