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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ursion

[명절 넋두리] 차 없는 섬, 호주 로트네스트 섬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8. 10. 13.

바야흐로, 가을. 

이 아름다운 계절에 여행을 떠나고 싶다. 계절감을 최고로 만끽할 수 있는 여행의 방법 두 가지는 맛깔 난 현지 제철 음식을 먹는 것, 그리고 자전거 타기가 아닐까. 이 가을 햇살 아래 신나게 자전거를 달리는 자체만으로도 어여쁠 것 없는 일상이 여행의 순간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지난 9월 22일은 ‘세계 차 없는 날’이었다. ‘차 없는 날’은 1997년 프랑스 서부 항구도시인 라로쉐에서 ‘도심에서는 승용차를 사용하지 맙시다’라는 구호와 함께 시작됐다. 이후 이 캠페인은 전 세계 40여 개국 2,100여 개 도시로 확산되어 해마다 9월 22일이면 세계 각지에서 다채롭게 열리고 있다. 국내 주요 도시들도 동참하고 있으며, 특히 서울시에는 ‘차 없는 주간’을 설정해 차를 몰아낸 공간에서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도록 독려한다. 단 며칠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도로에서 차를 몰아낸 결과를 보고 싶다면? 생태도시로 유명한 독일의 보봉마을까지 갈 것 없이 신촌 차 없는 거리, 수원 행궁동에서 분위기의 변화를 쉽게 볼 수 있다.


올해 '세계 차 없는 날'은 추석 연휴와 겹쳤다. 나는 본가에 가는 먼 길을 버스 전용 차로 덕에 고속도로를 주차장처럼 채운 차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게을러 터져서 초단위 클릭질을 해야 하는 명절 기차표는 내 인생 한 번도 끊은 적이 없고, 다만 버스 전용 차로에 이 한 몸 의탁하여 삼십분 정체만에 목적지 도착! 올레!


고속버스 창문으로 한 줄로 서서 먹을 것을 나르는 개미 행렬 같은 차들의 기나긴 행렬을 바라보며, 마음은 고향이 아니라 서 호주의 로트네스트 섬에 가버렸다. 유체이탈, 정신 딴데 빙의. 본가 가족님들하... 우리도 명절 때 놀러가면 안 되는 것입니꽈! 차들에 둘러싸인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차 없는 섬' 로트네스트 섬을 떠올렸다. 태국 '코피피'는 저리가라할 정도의, 포카리스웨터 선전에나 나올 아쿠아빛 바다도, 풀 뜯어서 주면 처묵처묵해주시는 '웃는' 유대류 '쿼카'도, 차가 없는 섬이라서 오롯이 즐길 수 있었다.

 


청솔모+회색쥐 스타일의 유대류(주머니과 동물) '쿼카' 

캥거루, 코알라처럼 호주 근처에서만 사는 종족!

사진에서 잡수고 있는 저 잎파리를 사랑하는 채식주의자.


잘 알지도 못함시롱 쿼카의 마음을 해석하자면

지금 배부르고 즐겁다, 이런 시츄에이션.

눈과 입이 웃는 상입니다.




직접 눈으로 보면 대환장!

포카리스웨터의 청량함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느낌의 바다.



선착장과 페리에서 빌려주는 자전거.

자전거 외에 이륜차(오토바이), 자가용 등은 섬 자체에 애초에 진입금지.

아주 가끔씩 섬을 도는 공공투어버스가 어슬렁어슬렁 기어다님.

자전거보다 별로 빠르지 않은 속도라 

차답지 않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음.

자전거에서 떨구고 간 잎사귀를 잡수는 도로 위의 쿼카 두 마리.


약 3시간 ~ 4시간 정도면 천천히 섬 한 바퀴를 모두 돌고 수영까지 가능!

자전거 타다 땀나면 수영을 하고

다시 자전거 타며서 물기 말리고.

(에헤라디야~ 무릉도원이로구나)

옷 안에 수영복 입고 가길 잘했네, 잘했어!

외쿡인들은 수영복 입고 자전거 타면서 선탠도 하고 물기도 말리고 막 이럼.



로트네스트 섬으로 들어가는 페리가 닿는 선착장, 프리맨틀에도 아름다운 해변들이 널려있다. 휠체어 가능한 해변, 개 산책 비치 등 '다양성' 해변 대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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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비치 (DOG BEACH): 개들을 위한 해안가

여기 개들이 나보다 팔자가 좋지 아니한가...




휠체어, 자전거, 유모차 어떤 바퀴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해변


자전거 타는 가족


프리맨틀 해변 휠체어 보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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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반대로, 우도는 말입니다. ㅜㅠ (우도, 쏴리...)

바다는 로트네스트 아일랜드처럼 아름답기 그지 없었으나, 너무 많은 이륜차와 '툭툭' 같은 오토바이 개조 차량들로 점철돼 있었다. 작은 섬에 너무 많은 차량들이 바글바글거린다. 자전거를 타다가 뒤에서 위협적으로 추월하는 차와 오토바이에 흠칫흠칫 놀란다. 마음의 평화 따위... 이 기시감! 


줄리아 로버츠 언니가 어여쁘게 자전거를 타는 영화를 보고 나도 발리에서 자전거 타다 도로 한복판에서 자전거 내팽개치고 돌아갈 뻔 했었지. 우도는 발리보다야 안전하지만, 그래도 로트네스트 섬처럼 동물이 안전하게 도로 위에서 풀 뜯어먹고 두 손 놓고 자전거  타도 아무 걱정 없는 조용한 섬이 되었더라면. 섬에서라도 천천히, 하늘하늘, 한적한적을 바라는 이 내 마음, 이기적일까.  



우도 안의 서점 겸 카페


바다색으로 따지면 제주도도 로트네스트 섬 못지 않다.

(늦겨울이라 해가 쨍하지 않은 데도 이 정도니, 봄이 되면 완전 환상)


우도 바닷가에서 텀블러 자랑질

카페에서 담아온 커피를 바닷가에서 홀짝홀짝.


우도에서 자전거 타기

허나 도로로 나가면 이륜차와 개조 오토바이들의 소음과 혼잡함 ㄷ ㄷ ㄷ


그러니까, 본가 가족님들하.

명절 때 자전거 타고 한들한들 여행하면 어때요. 제 사심을 이렇게나 길게 타전합니다. ㅎㅎ 그래도 버스 전용차로 덕에 집에 가는 길이 20년 전처럼 10시간 걸리지는 않으니, 위로가 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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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로트네스트 섬 가는 왕복 페리는 서 호주 '퍼스'나 '프리맨틀'에서 매일, 거의 매시간 출발. 왕복 55,000~80,000원 사이. 당일치기 가능. 매주 화요일인가(?) 20%인가 할인을 해줬는데 기억은 가물가물. 할인 폭이 크니 페리 할인되는 날과 시간에 맞춰 타면 좋아요. (또 게을러서 정보를 안 찾아서 몰랐는데, 도미토리 같은 방에 묵던 바지런한 일본 여행객이 알려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