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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Info

화평법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막으려면.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8. 23.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 올해, 드디어 통과되었습니다.

이미 유렵연합의 화평법인 리치(REACH)를 따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화평법 관련 법안을 실시하고 있으니

국내의 움직임이 빠르다고 할 수는 없지요.

그간 화평법을 실시하면 '화학업계가 타격을 받는다, 국내 산업이 위축된다'며 산업계의 반발 탓에 지진부진하다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국내에서도 화평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공감대에 밀려 드디어 통과되었습니다.

그런데 시행을 앞두고 시행령을 정하는 시점에 '화평법'을 검색하면 온갖 부정적인 기사가 뜹니다.

업계의 언론 플레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네요.

 

<<지자체, 재계' 화평법' 개정 압박>>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746017

<<화평법에 화평(和平) 없다>> 파이낸스타임즈 기사

<<화평법 시행땐 건당 등록에만 9개월신제품 개발 사실상 불가능>> 한국경제신문 기사 등

 

첫번째 기사는 김문수 경기도 지사가 정치권에 화평법의 독소조항 폐기를 촉구했다며

"화평법이 모든 화학물질에 대해 예외 없이 등록의무를 부과하는 등 근본적인 제약이 있는 상황"이라고 보도합니다.

기사와는 다르게, 화평법이 등록의무를 부과하는 물질은 '모든 화학물질'이 아닙니다.

기존의 화학물질은 업체별로 1톤 이상 사용할 경우에만 해당하고

그 중에서도 평가위워회가 심의해 '등록대상 기존화학물질'로 지정되어야만 등록대상이 됩니다.

신규 물질은 1톤 이상의 경우 모두 등록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기사는 '모든' 화학물질이라고 약간의 '오버'를 합니다.(기자님, 오노 액션?) 

유럽의 리치법은 신규든 기존의 화학물질이든 1톤 이상 화학물질은 모두 등록대상이며

게다가 유럽의 화학산업은 한국의 거의 20배 규모라 하니, 유럽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 국내법이 후퇴한 거라고도 볼 수 있죠. 

여하튼 이런 기사들의 결론은 '화평법이 화학산업을 죽이게 생겼으니 재계와 업체가 힘을 합쳐 화평법을 개정하거나

최소한 시행령에 안전 장치나 예외조항을 만들어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식입니다. 

먹고사는 문제니 업체들도 할 말은 있겠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보다 우선은 아니겠죠.

아마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유가족이라면 이렇게 말할 듯 합니다. 

우선 목숨은 부지해야 먹고 사는 것도 문제가 된다고요.  

'SK 케미컬'은 가습기살균제의 호흡독성을 알고 호주로는 그 성분을 수입하지 않은 채

국내에서 가습기살균제의 원료 성분을 팔아 이윤을 남겼습니다. 

생떼같은 아이들과 사람들이 죽어갔지만 아직까지 사과 한 번 한 적 없는데, 그런 비극을 막고자 제정된 화평법에

관련 업계가 쌍수들고 일어서 '이 법 때문에 죽겠다'라고 하니 정작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답답한 마음만 한 가득. 

생떽쥐베리는 "이 세상은 인간을 위해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팔기 위해 인간이 생산되는 곳이다"라고 말했는데, 

화평법 시행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황에도 들어맞네요.  




이러한 시기에

국내 시민사회, 환경, 노동자, 교육 관련 단체와 생협 등이 모여 발암물질 감시운동을 하는 '발암물질 국민행동'에서 

네오앤비즈의 이종현 박사님을 모시고 통과된 화평법의 의미와 한계를 짚어보았습니다. 




1. '화학물질 제조 등의 보고'에 따라 화학물질을 연간 1톤 이상 제조 또는 수입하는 자는 

학물질의 용도 및 양 등을 환경부장관에서 보고해야 하는데요. (보고와 등록은 다릅니다~) 

구체적으로 보고할 화학물질의 용도와 양에 대해서는 '시행령'에서 명시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가습기살균제의 예에서 보듯 용도가 세정제인지 살균제인지, 그리고 피부나 섭취 노출인지, 흡입노출인지에 따라

그 위해성이 달라집니다. 가습기살균제의 경우 시장유통 전에 흡입노출에 대해 스크리닝만 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는데요.  

시행령에서 화확물질의 용도와 양에 대해 구체적으로 보고하도록 명시해 실질적으로 사전 예방이 돼야 하겠지요. 


2. 1톤 이상 사용되는 성분은 자동으로 등록대상이 되는 유럽의 리치와는 다르게

기존화학물질은 1톤 이상 사용되어도 '평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등록대상인지 아닌지가 결정됩니다. 

이외에도 평가위원회는 허가, 제한, 금지 물질도 지정하고 연간 1톤 미만 화학물질 중에서도 등록대상을 정하고 

유해성, 위해성 심사에도 관여합니다. 따라서 평가위원회 가습기살균제 사건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도록 

평가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대해 시민단체와 학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3. 유럽의 리치에서는 위해성 평가 대상이 아닌 1톤 이상 10톤 이하로 사용되는 화학물질도 '기술 서류'를 제출해야 합니다. 

기출서류에는 물질의 정보, 제조와 용도 정보, 노출정보, 유해성 정보 등이 포함됩니다. 

기출서류를 통해 물질의 용도와 노출정보 (노출 시나리오)를 확보하게 되어 위해성 평가에서 제외된 물질도 

사전에 안전성을 확인할 길을 열어놓았는데 현행 화평법에는 기술 서류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화평법에서도 유럽연합의 기술 서류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정보를 보고하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4. 유럽연합의 리치와 화평법의 가장 큰 차이는 리치에서는 완제품의 제조, 수입자도 화학물질을 등록해야 하는데

화평법에서는 화학물질 제조, 수입자만 등록을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이라는 완제품을 판매한 '옥시 레킷벤키저'는 등록 주체가 아니고 

원료성분을 제조한 '한빛화학'이 등록을 해야 합니다. 

하위 판매자(옥시 레킷벤키저)와 제조자(한빛화학) 간에 화학물질정보를 서로 주고 받도록 의무적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화학물질 제조사나 수입자는 대개 중소기업인 반면, 완제품 관련업체 (하위 판매자)는 대기업이라서

현실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는 대기업이 을인 화학물질제조사에 사용할 화학물질 정보를 제대로 제공할지 우려가 됩니다.   

 가습기살균제의 경우에도 몇몇 중소업체는 사건이 발생하자 폐업신고를 냈는데

소비자는 00화학이라는 라벨 뒷편에 쓰인 제조업자를 보고 구입한 게 아니라 판매자인 옥시, 홈플러스 등을 보고 구입했겠죠. 

따라서 화학물질의 제조, 수입자 이외에 판매, 사용자에 대한 책임이 규정되어야 합니다.    

또 한가지 문제는 '완제품' 제조, 수입자가 등록 주체에서 빠짐으로써 

완제품에 쓰인 화학물질은 화평법으로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반도체, 목재가구, 장난감, 문구류에도 유해물질이 사용되지만 화학제품이 아닌 완제품이라서 

그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을 등록할 필요가 없습니다. 

화학물질이 아닌, 제품으로 관리되는 경우 '위해우려제품' 8종만 해당합니다. 

(세정제, 방향제, 접착제, 광택제 탈취제, 합성세제, 표백제, 섬유유연제)  

유럽에서는 완제품에 사용되면 그 화학성분도 등록대상이 되는데 말이에요.

향후 화평법에서도 완제품을 등록대상에 포함해 화학물질의 제조, 운반, 이동, 사용 및 폐기에 걸쳐 통합적인 관리가 요구됩니다. 


5. 위해성이 높다고 우려되어 제조, 수입, 사용 전에 환경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허가대상물질'의 경우

유럽연합의 리치에서는 허가 신청시 대체물질에 대한 대안분석 및 대체계획 수립을 요구합니다. 

화평법에서는 이 부분이 빠져있어서 향후에 보완해야 할 것입니다. 

녹색화학은 국가가 지원해야 할 부분이구도 하구요. 

화학업계에서는 화평법 때문에 힘들다는 입장인데, 대체물질이나 녹색화학 연구분야에서 보조금이나 지원을 얻으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