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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life

3.11을 바라보며, 도쿄전력은 곧 나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1. 4. 14.



'슬로우 라이프', '행복의 경제학'의 저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쓰지 신이치 교수가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를 겪으며 지인에게 보내온 메일을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에서 번역하였습니다.
이 글은 여성환경연대 소식지 (4월말 발간)에 실릴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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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이후 몇 주간의 사건들을 겪으며 나는 뭔가에 집중하고 명료하게 생각하는 일이 때때로 힘들었지만
이번 일을 통해 내가 더 용감하고 창의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이제 터널을 빠져나와 나는 훨씬 편안한 기분으로 세상을 좀더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이 3.11이후 경험했던 것은 엑스레이와도 같다.

그렇다.
우리 모두와 우리 사회가 엑스레이에 찍혀 이제는 투명해졌다.
무엇이 보이느냐고?
우리에게는 침묵하고 애도와 기도를 드리고 경외할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죽음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깨달아야 한다.
틱낫한이 일본에게 보내는 최근의 글에서 썼듯 우리의 일부,
지구의 일부가 죽었고 그 죽음은 우리 안에 영원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어머니 지구를 어떻게든 통제할 수 있다는 우리의 오만이 환상이었음을
눈앞에서 보게 되어 충격을 받았다.

그 엄청난 쓰나미를 일으킨 지구는 우리를 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었던 지구와 똑같은 지구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경외심을 다시 마음 속에 심어야 한다.
어머니 지구와 우리 자신을 연결할 수 있는 길을 다시 찾아내야 한다.

우리가 이 문명의 일부였으며 우리의 탐욕과 증오와 무지-불교에서는 세가지 근원적인 독이라고 말하는 것들-
위에 이 문명의 폭력적인 시스템이 세워졌음을 분명히 볼 수 있다.
도쿄 전력과 정부를 비난하는 대신 우리는 정부와 미디어 다른 거대 산업들을 조종할 만큼 강력해진
도쿄전력이라는 괴물을 우리 자신이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 도쿄전력은 일종의 독재를 휘둘렀고 우리는 이에 기꺼이 협조하고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전기 소비를 70년대에 비해 5배나 늘려가면서 말이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올 덴카‘(all과 電氣化의 합성어. 가정의 급수 조리 난방을 모두 전기로 해결한다는 뜻) 캠페인을 통해 도쿄전력은 우리가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는
핵발전소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믿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


어부이자 철학자인 마사토 오가타는 ‘지소가 곧 나’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미나마타 비극의 생존자이자 증언자인 그가 미나마타 바다에 납 오염을 일으켜 사람을 비롯한
수많은 생물들을 죽인 그 막강한 지소 사(社)가 곧 자신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
도쿄전력은 곧 나다.

3.11과 그 이후의 사건들을 통해 우리가 배웠고 배우고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우리 삶의 방식이 지구에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주면서 만들고 유지되어왔고
따라서 아름다운 미래의 가능성을 줄여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매스미디어는 요즘 회복과 재건이라는 활기찬 노래를 불러대기에 바쁘다.
그러나 묻고 싶다.

우리는 무엇을 재건하려고 하는가?

(이번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곳과) 비슷한 종류의 도시와 마을들이 취약하다는 사실이
역사 속에서 수없이 증명되지 않았나?
집중화된 거대 에너지 시스템이 민주주의를 공허하게 만들고 시골 마을들과 외곽 지역을
대도시와 전력회사, 중앙 정부에게 종속시키지 않았나?
50기 원자로를 보호하기 위해 둑과 벽을 다시 세우고 원자로를
다음번 지진, 쓰나미, 태풍, 홍수, 산사태를 대비해 충분히 튼튼하게 만들자는 것인가?
한때 이름을 날렸던 일본 기술력과 불굴의 가미가제 정신을 다시 살려내
이번에 보여주었던 것 같은 실수와 태만을 더 이상은 저지르지 않을 참인가?
한때 기적적으로 성장했던 일본의 경제-사람들로 하여금 무한정 소비하게 하고
그 모든 핵발전소들을 건설하게 하여
건강했던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시골 공동체와 그곳의 아름다운 경관을 희생시켰던 -를 다시 일으키자는 말인가?


정치인들이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이러한 재건에 대해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게 이미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앞으로 수천년은 남아있을 엄청난 양의 핵폐기물 없이는
결코 우리가 세상을 재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난 몇 십년간 원자로를 많이 더 많이 만들었던 것도 건강했던 과거를 복구하고
더 건강하고 안전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하자면  3.11 이전의 세상을 복구한다는 것은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향한 남아있는 희망을 꺼뜨리는 일이다.
예전의 일본을 되돌리는 일에 No라고 말하자.
그리고 남아있는 가능성을 선택하자.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3.11 이전의 일들에 대해 지겹도록 반복해서 말하면서,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 핵 반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정치과학자인 더글라스 러미스 Douglas Lummis 가 한 말을 다시 들려줘야겠다.
핵의 대안은 비(非)핵이다.
우리에게 아직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걸 그만두자.
우리는 다른 재앙을 견뎌낼 수 없다.
바로 지금 상황이 이미 재앙이다.

3.11 이후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불교철학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조안나 메이시 Joanna Macy식으로 말하자면,
세계 곳곳에서 조금씩 그 싹을 보였던 '대전환'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녀에 따르면 대전환은 3가지 차원에서 동시적으로 발생한다.
환경운동, 반세계화 그리고 지역주의 운동이 우리 개개인을 영적으로 각성하는 순간, 대전환이 일어난다.
3.11이 우리에게 남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창조적인 과정에 동참하자.

물론 낙관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우리가 삶을 전환하고 지금까지 건설된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한다 해도,
여전히 모든 원자로가 식을 때까지 수십년이 걸린다.
그리고 우리 이후의 세대는 이보다 훨씬 오래,
이미 쌓여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군분투해야 한다.
그러니까, 차라리 이대로 부와 풍요를 맘껏 낭비할 것인가.
어쨌든 너무 늦었는데 말이다.
바로 지금이 아니라 조금 뒤에 멈춰도 되지 않겠는가?

우리, 어떠한 선택도 가능하지 않다는 핑계로 방관하지 말자.
만약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인류의 생존에 여전히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바로 지금 삶을 전환해야만 한다.
조안나 메이시가 촉구한 것처럼 우리가 사는 동안 생산된 핵물질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스스로 '핵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메이시의 이야기는 낙관적이지 않지만 그 자체로 깊은 위로를 준다.

"비록 대전환이 생태적 혁명을 향한 전지구적 실험으로 나아가는데 실패한다 해도,
대전환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

그것은 우리 존재의 기반인 자연을 향한 회귀homecoming이다."(Joanna Macy “The Great Turning”)

일본인이 쓰는 한자 중 위기를 의미하는 '危機'라는 단어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3/11은 물질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이제 그만 멈추고,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고 삶을 소박하고 천천히 즐기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참된 지혜는 즐겁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느리게 사는 삶'으로 전환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
우리는 진실의 순간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