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co Info

아이도 죽고 엄마도 죽었는데... 이 광고는 뭐죠?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2. 7. 18.

아이도 죽고 엄마도 죽었는데... 이 광고는 뭐죠?

죽음을 부르는 '가습기 살균제', 여전히 '아이에게도 안심' 광고





지난 2011년 9월 29일 서울 서초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여성환경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규명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제조업체의 책임을 묻고 정부의 근본적인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에이즈 치료제와 신종플루 백신을 생산하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라는 영국계 다국적 제약업체가 미국에서 30억 달러의 벌금을 물게 됐다. 30억 달러는 우리 돈으로 약 3조 4000억 원이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대 금액의 합의금일 뿐만 아니라 단일 제약회사가 지불한 액수로도 최고 금액이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당뇨병 치료제인 '아반디아(Avandia)'의 안전성 보고를 누락시키고, 18세 이하는 사용할 수 없는 항우울제 '팍실(Paxil)' 투약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부추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은 제약업계의 고질적인 불법로비 외에도 의약품의 안전성 정보와 미성년자의 건강보호를 주요한 쟁점으로 삼았다. 특히 피해자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조처가 취해져 혹시 모를 건강상 장애를 예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바다 건너 일어난 기사를 읽으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떠올랐다.  

 

지난해 5월 출산 전후의 수십 명의 산모와 유아들이 원인 모를 폐질환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 후 기침, 가슴 통증 등의 증상을 보이다가 급속하게 병이 악화됐다. 몇 달 후인 8월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 시 폐질환 위험이 47.3배 높아진다는 역학조사를 발표하면서 '원인미상 폐질환'의 위험요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추정했다.

 

올해 6월, 한국환경보건학회는 95명의 피해자를 조사한 보고서에서 사망자가 33%, 장기 이식 등을 받은 심각한 피해사례까지 포함하면 치명적 피해자는 39%라고 밝혔다. 이 중 어린이와 가임기 여성이 각각 65%와 26%를 차지한다.

 

이렇게 사망에 이르는 심각한 건강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한 푼의 보상도, 벌금도, 사과 한마디도 없었다. 기업이 안전성 정보를 찾는 노력을 했는지조차 모르겠고, 판매를 허가한 정부는 피해자가 각자 알아서 소송으로 해결하라고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그 사이 피해자들은 국무총리 면담을 거절당한 채 광화문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피해자 모임을 조직하고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판매 기업이 제대로 된 안전성 정보를 찾는 노력만 기울였다면, 생떼같은 아이들이 죽는 일은 막았을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가습기 살균제 허위과장광고 여부 심사
 
복지부는 실험을 통해 이상 소견이 확인된 2종, 문제의 제품과 같은 성분이 함유된 3종, 유사 성분이 함유된 1종 등 총 6종류의 가습기 살균제를 제품안전기본법에 따라 한 달 안에 수거하도록 해당 업체에 명령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현재 가습기 살균제 운동은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첫째는 피해자들의 보상과 관련된 법적인 해결수단인 집단분쟁조정과 소송이며, 둘째는 정부의 개입과 규제를 촉구하는 활동이다. 셋째는 안전성을 광고한 가습기 살균제 업체에 대한 허위과장광고 제소의 건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3일 가습기 살균제의 허위과장광고 여부를 심사한다. 허위과장광고로 인정된다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처음으로 실제적인 처벌이 내려지고, 집단분쟁조정의 판결에도 영향을 주리라 기대된다. 바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 결과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시 폐질환 위험이 47.3배 높아진다는 질병관리본부의발표 후, 제품에 버젓이 적혀있는 '흡입 시 안전, 환자 및 노약자에게 안전,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광고문구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안전성 문구는 단순히 제품의 이미지를 호도해 소비자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단지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문구를 믿고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을 뿐인데 8000만 원에 이르는 폐 이식 수술비를 감당하고도 가족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더군다나 예전부터 미국에서는 성분을 미세하게 쪼개 분사하는 초음파 가습기에는 수돗물의 불순물조차도 우려되므로 정제수만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었다. 약간의 지식이 있다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런 논문에도 '허위과장광고' 심사가 열리기까지 약 8개월의 기간이 걸렸다. 그 사이 해당업체가 공식적으로 사죄를 하거나 당장 병원비가 급한 피해자들을 구제할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업체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법무법인을 내세워 피해자의 대응에 철저하게 준비하거나, 회사 관계자의 참석을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 일정을 늦추기도 했다. 결국 기다리는 피해자들만 지치고 아프고 갑갑하고 억울하다. 진작에 위해성 정보에 근거하지 않고 안전하다고 선전한 가습기 살균제 업체들에게 엄정한 책임을 물어 거짓된 건강정보를 전에 규제해야 하지 않았을까.

 

마구잡이로 사용되는 화학물질, 대안 마련돼야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이 지난해 11월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를 기다리면서 집단분쟁조정에 참여하는 피해자들의 전화를 받았다. 한 살 난 아이의 죽음을 말하다가 채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거나, 아이가 떠난 지 한 달 만에 아내의 장례를 치렀는데 나머지 한 아이마저 폐질환에 걸린 가족도 있었다.

 

한 둘이 아니다. 소비자 피해를 사후에 신속하게 구제하고자 만들어진 '집단분쟁조정'에 참여하는 피해자만 100명이 넘는다.

 

그리고 사망과 심각한 폐질환이 대부분인 피해자의 절반은 10세 이하의 어린 아이들이었다. 이 어린 아이들의 죽음을 대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자세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엄정히 책임을 묻고 제도를 개선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또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좀 더 편리하고 쾌적한 생활을 위해 우리 자신과 생태계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현재 환경부에 따르면 화학물질 4만3000여 종 가운데 6000여 종의 신규 화학물질을 제외한 나머지 3만7000종이 유해성 정보도 확인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화학이 미래를 창조했지만, 또한 동시에 미래를 도둑질했다'는 말처럼 화학물질로 점철된 쾌적함과 편리함은 우리의 존재기반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쓰거나 또 다른 화학물질 찾기보다 단순하고 자연적인 대안을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여성환경연대 고금숙 활동가입니다.


태그:가습기살균제, 유해물질 안전성, 집단소비자분쟁조정, 허위과장광고, 공정거래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