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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Info

[살림이야기] 나의 라이벌은 고현정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3. 1.

나의 라이벌은 고현정

글 고금숙 _ 그림 홀링

 

 

 식물들에게 나는 영화 <매드맥스>의 독재자 ‘이모탄’이었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 될 거라는 일기예보에도, 외부 창이 꽁꽁 얼어붙어 문이 열리지 않아도, 베란다에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되었다. 아무리 추워도 밖에서 온전히 겨울을 살아 내는, 강한 생명력을 증명한 식물만이 나의 ‘워보이’가 될 수 있었다. ‘이모탄’은 결코 20℃의 온화한 공기가 젖과 꿀처럼 흐르는 실내에 그들을 들여놓을 리 없었다. 그런데 올해 그들이 실내로 소환되었다.

 

 

 

건조한 공기는 감기를 폐렴으로
‘귀차니즘’에 경도된 독재자는 유약한 생명은 추워 죽도록 방치하는 자연선택의 과정을 신봉했다. 물이 철철 흘러 넘쳐도 문제가 되지 않는 베란다와 달리 집안에서는 바닥에 한 방울의 물만 튀어도 걸레로 닦아 내야 하니까. 그런데 베란다의 ‘워보이’들이 ‘이모탄’의 침실에 들어온 이변이 벌어졌다.
겨울이 되니 곤히 자다가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코와 목이 칼칼했다. 집안의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틀어막고 난방을 해 대니 실내 수분이 증발해 버렸다. 겨울철 적정 실내온도는 18~20℃, 쾌적한 습도는 40~50% 선이다. 습도가 40% 이하로 떨어져 실내공기가 건조해지면 목이나 기관지도 건조해지고 결과적으로 기도의 섬모 기능이 저하되어 감기에 걸리기 쉽다. 또한 공기가 건조하면 일반 감기도 기관지염이나 폐렴으로 발전할 수 있다. 따라서 실내에 오래 머무르고 감기나 폐렴이 합병증을 불러오는 영유아와 노년층은 건조한 실내공기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흔히들 멍멍이의 코가 말라붙어 있으면 건강하지 않다고 하는데, 건조한 공기에 사람의 코 점막이 말라도 그런가 보다. 잠시 실내를 촉촉하게 해 줄 가습기나 에어워셔에 대한 욕망이 일었으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생각나고, 전기를 소비하기도 싫고, 무엇보다 기계를 씻고 닦는 일이 귀찮아서 마음을 접었다.

 

실내 면적 10% 식물로 채우면 습도 20% 높아져
그런 이유로 나의 ‘워보이’들이 실내로 소환된 것이다. 식물은 뿌리로 빨아들인 수분을 잎과 줄기를 통해 공기로 뿜어내는 증산작용을 활발하게 한다. 건축자재와 가구에서 나오는 휘발성 유해물질을 정화하기도 한다. 실내 면적의 10% 정도를 식물로 채우면 겨울철 습도가 최소 20% 높아진다. 고무나무, 관음죽, 테이블야자, 보스턴고사리, 싱고니움, 스킨답서스, 아이비 등이 실내에서 키우기도 쉽고 습도 및 정화작용도 뛰어나다. 베란다에서 거실로 테이블야자를 옮겨 놓고, 침실 협탁에 스킨답서스와 싱고니움 등을 배치하니 집이 사랑스러워졌다. 비록 화분에 물을 준 다음 화분받침 너머 장판 위에 범람한 물을 걸레로 닦아 내야 하지만. 싱고니움, 스킨답서스, 아이비 등과 허브는 가지 친 줄기를 잘라 물에 넣어 두기만 해도 잘 자라니, 화분에 물주기 귀찮다면 유리병 한가득 물을 채우고 이 아이들을 그저 꽂아만 놓자. 며칠 지나면 가지 밑에서 하얗게 삐져나온 뼈 조각처럼 생긴 뿌리들을 볼 수 있다. 문제는 수목원을 만들 기세로 집안을 식물로 채워야 효과가 있다는 것! 작은 화분 한 두 개로는 어림없고, 최소 실내 면적의 5%를 식물이 차지해야 한다. 개미 콧구멍만한 빈 공간이 없어서 머리에 화분을 이고 지고 살아야 형편이라면 다음 방법을 추천한다. 장독대 뚜껑 같은 큰 그릇에 숯이나 솔방울을 넣고 3분의 1 정도 물을 채운 다음, 주기적으로 물을 뿌려 준다. 솔방울과 숯의 미세한 숨구멍을 통해 습기가 퍼진다. 절반으로 자른 페트병에 물을 채운 다음 페트병 위에 젓가락을 걸치고 키친타월을 걸어 두면 키친타월에 흡수된 물이 증발하면서 습기가 높아진다. 하지만 인테리어를 생각하다면 암, 솔방울이 훨씬 낫다! 페트병 가습기는 효과가 좋은 반면 자취방의 비키니 옷장처럼 궁상스러워 보이니, 밤에 잘 때만 슬쩍 옆에 두는 것이 좋다. 헌 옷과 테이크아웃 컵을 이용한 재활용 가습기도 만들기 쉽다. 테이크아웃 컵에 물을 붓고 자투리 면천이나 버리는 면 속옷을 물에 적셔 찜질방 ‘양머리’처럼 예쁘게 구겨 넣으면 된다. 서울시의 ‘원전하나줄이기센터’에서는 아이들이 펠트 천으로 가습기를 만드는 체험 학습을 진행한다. 궁극의 인테리어를 구현하면서 은근슬쩍 습기를 높여 주는 방법도 있다. 요즘처럼 건조한 실내에 꽃과 식물을 거꾸로 매달아 두면 생명체의 습기가 빠져나오면서 아름다운 꽃의 미라, ‘드라이플라워’가 남는다.

 

 

고무나무, 관음죽, 테이블야자, 보스턴고사리, 싱고니움, 스킨답서스, 아이비 등이 실내에서 키우기도 쉽고 습도 및 정화작용도 뛰어나다. 베란다에서 거실로 테이블야자를 옮겨 놓고, 침실 협탁에 스킨답서스와 싱고니움 등을 배치하니 집이 사랑스러워졌다.

 

 

20℃ 이하 실내온도 유지, 하루 10분 환기
무엇보다도 겨울철 20℃ 이하의 실내온도를 유지하고, 하루 10분은 환기해야 실내공기가 촉촉해지고 건강해진다. 평소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하루 3번 각 10분씩 30분을 환기해야 좋지만 겨울철에는 어불성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에는 2~3시간 간격으로 2분씩 창문을 열거나, 베란다 바깥 창문을 1cm 정도 열어 둔다. 실내공기도 건강해지고 열이 고루 퍼지는 효과도 볼 수 있다. 환기를 할 때는 집안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창문이나 문을 동시에 열어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단, 미세먼지주의보나 경보가 내렸을 경우에는 환기를 하지 않는다.
그래도 너무 춥다고? 환기가 되면서도 따뜻한 공기를 유지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폐열회수장치와 태양열 온풍기다. 둘 다 재생에너지를 이용하여 외부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 실내로 들여오기 때문에 신선한 공기가 유입되면서도 실내가 따뜻하다. 비교적 설치비가 비싸고 남향과 외부 공간 구비 등 설치 조건이 까다로워 우리 집에도 못 달았지만 말이다.
나는 베란다에서 방으로 ‘워보이’들을 들이면서 배우 고현정 씨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뜨겁고 건조한 바람에 피부가 상하지 않도록 차에서 히터를 켜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 비록 미모는 고현정 씨에 미치지 못하지만 건강을 위해 이 정도도 못 하랴 하는 경쟁심이 불쑥 솟았다. 이제는 밤에 자다가 건조한 목구멍에 깨지 않으니 참으로 건설적인 경쟁심이지 않은가.

 

 ↘ 금자(고금숙) 왈 

 <살림이야기> 잡지에 2016년 동안 친환경 도시살이를 연재하고 있어요. 지난 호가 되면 글이 공개됩니다.  그래서 살림이야기에서 퍼왔어요. :)  살림이야기 http://www.salimstory.net/ 




 

↘ 고금숙 님은 도시에서 ‘에코에코’하게 살아가기를 꿈꾸는 철딱서니 없는 비혼입니다.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에서 일하며 얼마 전에 《망원동 에코하우스》를 펴냈습니다.

 
↘ 홀링 님은 위로가 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카스테라 속 외딴방(holling60.blog.me)에 그림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