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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life

"꽃보다 할매" 밀양으로 가는 길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10. 8.

지난 금요일 밀양에 다녀왔다. 나 같은 사람을 이른 바 '외부 세력'이라고 공격하는데, 직접 가봤더니 밀양에는 외부세력이 아주 많았다. 우선 밀양 외부에서 끌어모은 경찰병력 3,000명, 밀양에 자꾸 내려오시는 산자부 장관과 국무총리 같은 외부 세력들이 발에 널리고 채였다. 그에 비해 탈핵 희망버스를 타고 내려간 사람은 한 줌의 소수, 약 80명이었다. 


밀양에 같이 내려간 김혜진이 한 말처럼, 나도 '내 마음 편해 보려고' 밀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집에서 썩어가는 빨래, 와우북 페스티발이 열리는 홍대 거리, 여름 옷을 정리하고 가을 옷을 꺼내야 하는 시기를 뒤로 하고 불금의 밤, 탈핵희망버스를 타고 5시간이 걸려 밀양에 내려갔다. 내려가봤자 이미 시작된 공사를 얼마나 막을 수 있겠냐마는,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주말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개인적으로 보내려니 죄 짓는 것처럼 마음이 불편했다. 마음 불편한 것보다 몸이 좀 피곤한게 차라리 낫다는 새디스트적 마인드로 버스를 탔다.



 

밀양에 가려면 비상식량을 잘 챙겨야 한다. 우리는 '노숙조'였는데 다음 날까지의 비상 식량이 '천국'에서 내려온 김밥 한 줄이었다. 따라서 영양갱과 곡물바처럼 식사 대용일수록 좋다. '할매'들께서 농성 와중에 우리 밥까지 깨알같이 챙기시는데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먹고 대신 비상식량을 안겨드려도 좋다. 사과, 배, 밤 등은 경찰과의 대치 상태에서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낼 때 야금야금 깍아서 '할매'들과 나눠먹으면 시간도 잘 가고 입도 즐겁다. 특히 시간과 정성을 요하는 밤 깎기를 강추한다. (밀양 가기 전날 밤에는 꼭 밤을 찌세요. ㅎㅎ) 단, '외부 세력'이 칼 들고 설친다고 트집잡을 수 있으니 유념, 또 유념해야 한다. 밤 깍는 '쌍둥이 칼'도 흉기라고 음해할까봐 무섭다.




희망버스가 밀양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였다. 이 시간에 버스에서 내려 약 30분 정도를 달밤 체조 하듯 휴대폰 손전등 앱을 활성화시키고 그 불빛에 의지해 바드리 마을 공사장으로 향했다. 송전탑 공사가 시작되는 산 근처이다.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50개가 넘는 송전탑이 산에서 내려와 농사짓는 땅으로, 사람이 사는 집 근처에도 빼곡하게 들어설 예정이다. 물론 그걸 막아야 하는 거고! (얼쑤!!) 바드리 농성장으로 올라가는 길에 바라본 하늘에서는 별이 총총히 쏟아지고 있었다. 알퐁스 도데의 <<별>>에 나오는 소녀가 된 기분으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이런 거구나, 하는 실감으로 깜깜한 밤 등산을 했다. 캐나다의 알곤퀸 공원에서 카누에 누워 바라본 별보다 더 많고 더 아득한 별들이었다. 밀양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아마 그 날 바드리 농성장으로 등산한 사람들 마음에 총총이 박혔을 거였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그렇듯 그 별들은 기계(폰카)로는 잡히지 않았고 노숙한다고 은박지 깔고 침낭 깔던 현장만이 주접스레 사진에 남았다.



10월에 뭔 스키 타러 온 포스란 말이냐. 하지만 오리털 뽕뽕 뽑히는 '오바스런' 파카를 내 것까지 가져온 김혜진이 없었다면 나는 정녕 입 돌아갈 뻔했다. 가을 산의 냉기는 체감 온도 -10도에 필적했다. 도대체 노숙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겨울을 길에서 보내신다는 말인가요. ㄷ ㄷ ㄷ 아흑 ㅠ.ㅠ 




농성장에서 침낭 위에 큰 비닐을 덮어주셨다. 이유를 몰랐는데 아침에 추위에 떨다 눈을 떴더니 비닐 위로 아침 이슬이 송글송글 말고 주르륵 흐르는 채로 맺혀 있었다. 거의 이슬비라도 내린 수준이었고, 비닐이 없었다면 아마 침낭이 모두 젖었을 터였다. 할매들이 이 산을 지키겠다고 노숙의 달인이 되신 것 같았다. 이 산에서는 정녕 "꽃보다 할매"다.



아침의 시헌~한 공기를 맞으며 여전히 스키장 포스로 추위를 달래고 있다.



눈 뜨자 마자 일찍도 오신 경찰님들하~님하들은 밥 먹을 때 되고 시간 되면 교대라도 하지요. (깨알같이 할매들이 내는 세금이 포함된 돈으로 월급도 받지요.) 할매들은 농성장에서 주무시고 다시 농성장에서 하루 종일 대치하시고 또 농성장에서 주무신다. 하루만 자도 삭신이 쭈신다. 나 이 나이에 할매 된거니? 가을 하늘은 참으로 청명도 하구나.-_-





그래도, 여전히 삶은 지속된다. 아래 마을 동네 멍멍이들은 뛰어놀다가 농성장까지 올라오고, 아침이 되자 밀양 주민들은 아침 식사를 만드신다. 우리는 염치 없게도 농성장에서 밀양 '집밥'을 먹는 호사를 누린다. 이런 게 삶. 





 

그러고는 금곡 헬기 공사장에 가서 하루 종일 농성 천막을 지킨다고 땡볕 아래 시간을 보냈다. 지금이 2013년 중 마지막인 참 좋은 날씨라고 생각했는데, 하루 종일 길에서 지나다보니 이 날씨 참 극단적이었다. 밤에는 겨울, 한 낮에는 땡볕 여름. 딸랑 하루 지내다 삭신을 부여잡고 서울 가는 버스를 타는데 너무 미안하고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 전쟁같은 지옥에서 어쨌든 빠져나와 집에 간다는 안도감이 들어서였고, 그 안도감이 참말로 미안했다.  기약없이 날마다 여름과 겨울을 오가는 극단적인 곳, 돌아갈 집이 바로 그 곳인 사람들 앞에서 나는 참 느자구도 없다. 감히 안도감이라니.




어느덧 땡볕은 저녁 어스름이 되었다. 그 전날만 해도 밀양시 공무원들이 4번이나 천막을 침탈했지만 희망버스가 내려간 날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밀양 할매께서 어제까지만 해도 너무 무서워서 죽는줄 알았다고 하셨을 때, 또 내려오자, 뭐가 되었든 우리 같이 모여있자는 마음이 되었다. 아무래도 곧 밀양에 다시 내려갈 거 같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보며 원자력 발전소가 무서워 원전 전기를 나르는 송전탑을 막고 싶은 나 같은 사람도 있고, 그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그치만 뜻이 안 맞을 때는 서로 이야기라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동안 신고리 원전 3호기를 가동하기 위해 밀양 송전탑 공사를 서둘려야 한다고 했지만, 신고리 3호기는 기존 송전 선로를 통해 전기를 전송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더군다나 신고리 3호기는 위조 부품에 딱 걸려 준공 시점이 미뤄진 상태다. 공사가 당장 필요한 시점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 동안 제시된 대안들, 송전탑이 필요한지의 여부, 노후화된 고리 핵발전소의 문을 안 닫고 위험하게 계속 운행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라도 해보자는 거다. 적어도 원래 송전탑이 들어올 예정지에 지으면 2개면 되는 송전탑을 다른 마을로 우회하니라 6개로 늘려서 짓는 세금 낭비라도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정치인 인맥으로 기존 예정지가 변경되었다지;;) 밀양송전탑공사 반대 위원회가 목 놓아 주장하는 첫째 조건이 바로 'TV 토론회'이다. 제발이지, 말이라도 터놓고 해보자. 이런 할매들의 손톱같은 제안마저도 묵살하고 포트레인과 헬기와 공권력으로 답하는 당신들을 보니 조지 오웰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모든 피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언제나 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