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마다 걸려있는 형광등 불빛에 진절머리가 났었다.
수술실처럼 온갖 구석을 흰 빛으로 환하게 비춰내는 형광등이 아니라
햇병아리의 집을 밝혀도 될 정도로 포근하게 안아주는 '전구색' 조명이 있는 집이 좋다, 고 생각했다.
느긋하게 쉬고 설렁설렁 이야기하고 혼자서 여유 부리라는 공간인 카페에 형광등이 없는 이유는
음영을 찾아볼 수 없는 명명백백한 형광등 아래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나오지 않아서 일테다.
토론토의 한 가정집에서, 방콕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파리의 원룸에서 왜 천장에 형광등이 안 달려있는지 궁금했다.
형광등이 없는 집에 처음 머물 때는 불이 다 안 켜졌다고 생각하고 스위치를 찾았고,
그게 다라는 것을 알고는 '얘네는 죄 지은 것도 아닌데 왜케 어둡게 사는거야?'라며 갑갑해했다.
그러다가 그 느긋하고 따뜻한 불빛이 좋아졌고 마치 뽀샤시한 목욕탕 거울 속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형광등 아래에 서자 기미와 주근깨가 도드라지는 거울을 마주한 듯 적나라한 기분이 들었다.
교과서적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해외여행을 통해 넓힌 견문은 형광등은 만국 공통의 조명의 아니라는 거였다.
패션잡지의 화보보다 더 화려한 글을 생산하는 김경 작가도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계를
두루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나처럼 형광등을
싫어할 거라고 장담한다.
여행자들이
사랑하는 동남아 국가는 물론 프랑스나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 모두 대부분의 가정이나 상업공간에서
좀 어둡다 싶을 만큼 은은한 실내조명을 사용하고 있다. ...
언제부터인가
나는 집집마다 환하게 켜져 있는 한국의 형광등을
혐오하게 됐다.
…
형광등
아래서는 모든 것이 명백하게 추해 보인다.
하지만 촛불
아래서는 모든 것이 어슴푸레 아름답다.
삶이 드라마를
가지지 않는 때조차."
이 문장을 읽을 때, 같은 드라마에 꽂혀있는 사람과 신나게 이야기하는 느낌으로 마음 속에서 마구 맞장구를 쳤다.
집이야말로 느긋하게 쉬고 설렁설렁 이야기하고 혼자서, 혹은 누군가와 따로 또 같이 여유를 부리는 공간이 아닐까.
사는 곳의 실내조명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 천장의 형광등을 모두 떼어냈다.
책을 읽는 공간은 좀 밝게 2개의 전구를 달았고, 그 밖에 필요한 조명은 스탠드나 부분조명으로 덧붙였다.
공사 중 모습, 그 전에 사용했던 형광등이 걸려있다.
백열등은 전기를 많이 소비하고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나와
많은 국가에서 백열등 사용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백열등 대신 한 번 달면 10년 정도는 너끈히 불을 밝히고 납과 수은이 사용되지 않는 'LED 전구색' 조명을 선택했다.
대개 침실이나 공부방에는 1,000~3,000 루멘 (lm)정도의 밝기를 설치하라고 하는데
550 루멘의 LED 전구를 사서 책 읽는 큰 방에만 두 개를 설치하고 다른 곳은 하나씩 설치하고 필요한 곳에 부분조명을 두었다.
공사 후 거실 조명으로 한 쪽 벽면에 LED 전구를 설치했다.
천장 등이 아니라 벽 등이라 전선을 가리기 위해 나무로 가림막을 만들어주었다.
거실에 전구가 하나 뿐이라 책 읽기에는 어두워서 쇼파 한 쪽 옆에 스태드 조명을 배치해서
책을 읽거나 좀 더 밝은 조명이 필요할 때 켤 수 있도록 했다.
가장 작은 손님방 조명도 거실과 똑같이
한 쪽 벽면에 나무 가림막을 설치하고 전구형 LED를 설치했다.
똑같은 밝기의 전구인데 거실보다 방이 적어서 훨씬 밝아 보인다.
조명등은 15,000원~25,000원으로 을지로입구 근처의 조명상가에서 구입했다.
베란다 조명도 한 쪽 벽면에 LED전구를 설치했다.
LED은 백열등에 비해 거의 80%의 전기를 절약하는데 그 중에서도 '고효율' 인증을 받은 전구가 있다.
매장에서 물어보면 "손님, LED는 모두 고효율이에요"라는 답을 듣게 되는데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고효율 인증을 받은 LED가 따로 있어서 고효율 인증을 받은 전구를 구입했다.
집에서 제일 큰 방은 책을 읽고 노트북을 사용하는 공간이다.
천장에 레일을 달고 전구 2개를 설치해서 집에서 가장 밝은 공간이 되도록 만들었다.
보통 ㄷ자형으로 레일을 설치하고 전구를 주렁주렁 매달아 인테리어 효과도 내고 밝기도 높인다.
밝기를 조절하고 싶을 때는 전구 하나를 레일에서 빼 놓거나 데롱데롱 매달린 선의 길이를 조절할 수 있다.
전구색 조명에 맞춰 노란색 체크 무늬의 '마르쉐 보자기'를 커튼으로 걸었다.
잠 자는 방은 전구형이 아닌, 스포트라이트 형 LED 조명을 설치하였다.
목이 코브라처럼 자유롭게 구부러져 자기 전에 책 읽을 때 그 부분만 밝게 비출 요량 :)
먼저 자는 사람 눈이 부시지 않게 필요한 부분만 밝게 할 생각이었는데,
방이 워낙 작다보니 스포트라이트 조명임에도 불구하고 방 전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태에 직면.
부엌 천장 조명, 밥상 위에 데롱데롱 매달아놓았다.
부엌 조명은 대개 화려한데 아무 장식이 전구만 달아놓았다.
부엌 쪽에 전구 하나인데 그 위에 인테리어 장식을 더하면 어두워질까 싶기도 하고
집에 싫증이 날라치면 직접 조명장식을 만들어볼까 싶어 남겨두었다.
싱크대 근처에 설치한 LED 부분조명으로
설겆이 하거나 요리할 때 어둡지 않도록 만들었다.
한 밤 중, 부엌 조명을 끄고 싱크대 조명만 켜 둔 모습.
조명은 싱크대 바로 위에 설치했다가 건조대 설치하면서 옆으로 밀려났다.
건조대 위 그룻에서 물이 떨어질거라 전등, 전선과 함께 놔두면 위험할 듯 싶어 좀 어두워도 옆에 설치했다.
형광등이 켜진 곳보다 집은 전반적으로 어둡다.
하지만 칙칙한 어두움이 아니라 얼굴의 음영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적당한 어둠이다.
거실 쇼파에 앉아 전구빛 아래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룸메와 하루 일을 고요히, 조근조근하게 이야기 나눈다.
요새는 직장에서 엎어지는 일 투성이라 하루 종일 힘들고 마음은 쪼그라 들었었다.
집에 돌아와 따뜻한 공간에서 단내나는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옥상 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노래를 들으며 위로받는 느낌이다.
게다가 그 전에 비해 약 2~3,000원 정도의 전기세가 적게 나오는 것도 확실한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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