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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House

[제일작은방]카우치서핑의 로망과 왕겨숯으로 채운 어른의 비상구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7. 20.

어릴 적 엄마가 강아지를 키우자고 해도 싫어하고 손님이 온다해도 싫다하고

"도통 엄마는 좋아하는 것도 없네, 뭐가 저렇게 싫어?"라고 궁금했는데

엄마가 날 낳았던 나이를 지나고 보니

나 역시도 개와 고양이는 좋아하지만 남의 집에서 키울 경우에 한해서였고

나 역시도 집을 옮기고 나서 손님 치르기 무서워 집들이란 말을 꺼내지도 않는다.


이 나이가 되면 에뻐도 책임지지 않을 만큼만 좋아하고

반가워도 집에 들이지 않을 만큼만 환대하고

사랑해도 손해보지 않을 만큼만 사랑하는,
그런 어른이 되는 걸까.

내 나이에 아이 셋을 키웠던 엄마는

손님이고 강아지고 뭐고 자식 새끼 3마리가 가장 버겨웠던 것은 아닐까.


집을 고르면서 무조건 방은 3개여야 한다고 했다.

부동산에서 두 명이 사는데 짐이 많냐고, 그 돈으로는 방 2개 짜리를 고르라고 했는데

짐이 많아서가 아니라 로망을 채우기 위해 방이 하나 남아 돌아야했다.

필요한 공간보다 큰 곳을 유지하는 자체가 낭비라고 생각해왔지만

강아지도 없는 이 마당에 가끔 여행을 안 가도 여행 간 것 같은 콧바람을 쐬고 싶었다.

손님이라기보다는 낯선 여행자일 것.

여행자는 일상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짐짓 여유와 낯설어하는 호기를 부리는데

바질 잎을 만지면 풍기는 허브 향처럼
곁에 있으면 여행자의 풍미가 전해진다.



집밥에서 <<카우치서핑으로 여행하기>>의 김은지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전까지 하나의 인터넷 웹사이트에 불과했던 카우치서핑이 확 와닿으면서

나도 집에 헐렁한 공간을 만들어 '서핑 호스트'를 해보고 싶다는 로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가장 작은 방에 아무 것도 채우지 않았다.

침대도 없고 혼자 누우면 방이 꽉 차는 작은 공간이지만

비상구처럼 집에 어딘가 헐렁한 구석이 놓여있으면

"세상이 내 집이다, 모두가 내 친구다"라는 카우치서핑의 호기를 부릴 물리적 조건이 된다.

그러니까 빈 방은 '어른'에서 탈출하는 비상구가 되는 셈.


이 방은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외벽이 있는 공간이다.

다른 공간, 즉 부엌과 거실, 방 2개는 모두 베란다에 둘러싸여 있어 외기에 직접 접하지 않는데

제일 작은 방만 베란다가 없어 한 쪽 벽면이 외기에 바로 노출된다.

그래서 다른 공간보다 가장 먼저 고려할 점이 '단열'이었다.

외기에 바로 노출되는 벽면을 꽁꽁 막기로 했다.






전 집주인의 시집간 딸 방이라 꽃까라 커튼을 놔두고 가셨다.

길게 내려온 인터넷 선인지, 케이블 선은 싹뚝 잘라도 되는거지?



우선 온 집을 다 감싼 천장 단열부터 시작하고

(천장 단열 이야기는 다음 포스트에:)



외기에 노출된 벽면의 단열을 위해 15센치미터의 공간을 확보한 다음



폴리우레탄(안 쪽에 은박지처럼 은색 반짝이는 것)으로 벽면을 한 번 싸 준 다음

목재로 15센치 공간에 틀거리를 잡아준 후 마감은 석고보드를 이용했다. 

벽의 절반, 어른 허리 정도의 높이까지 이렇게 틀거리를 만든 다음


이것은 뭐이다냐.

국산 벼를 도정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왕겨를 구워 숯으로 만든 왕겨 숯!!을 전남 나주로부터 공수했다.

업계 용어로 '훈탄'이라고 하는 친환경 단열 재료인데,

보통 훈탄은 텃밭이나 화분에 넣어 땅을 비옥하게 하고 작물을 잘 크게 하지만

황토집이나 친환경 집을 짓는 단열재로도 사용된다.

숯 좋다는 거야 블라블라 해봤자 입만 아프지만

어쨌든 습도조절, 음이온과 원적외선 발사! (오호!!), 방부효과가 좋다고 한다.

그런데 석고보드로 덮은 그 안에 훈탄을 넣어도 효과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흙건축과 생태단열 하시는 김석균 선생님께서 합성수지 재질보다 훨씬 좋으니 해 볼 수 있는 곳은

훈탄으로 단열해 보라고 추천해주셨다.


훈탄 옆에 있기만 해도 토토로에 나온 검정먼지 '마쿠로'가 되는 듯 한데



<토토로의 검정먼지 마쿠로 쿠로스케 모습>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ootury&logNo=80087316062



우리 사장님은 '마쿠로'가 되는 상황에서도 특유의 무뚝뚝한 '갱상도 남자' 얼굴로

15센치의 공간에 훈탄을 살살살~부어서 채우시고,

밑에 날라다니는 훈탄 가루들을 빗자루로 쓸어담았다능 -_-;;

<사장님, 사진은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찍은 거 아시죠;;>


사장님의 공사 역사 중 '훈탄 단열은 처음'이셨다.

귀농이나 귀촌해서 스토로베일 하우스(볏단 집)이나 황토집을 짓지 않는 한

좁아터진 도시 복판의 집들에 '생태 단열'을 적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열에 도움이 되는 베란다도 돈 들여 거실로 확장하는 판에

적어도 15센치 이상의 공간을 단열 벽으로 내주다니!

단열 공간만큼 짐을 덜어내거나 공간에 대한 욕심을 버릴 때에만 가능하다.
또한 모든 '친환경'이 그렇듯 생태 단열도 공간도 더 커야 하고 시간도 더 들어가야 한다.



허리만큼 훈탄을 일일이 채운 다음

다시 석고보드로 창틀 옆 부분에도 15센치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훈탄을 다시 살살살 부어주고

훈탄을 채울만큼 채운 다음

더 이상 훈탄을 채울 수 없는 맨 위 천장 부분은

훈탄 포장재를 둘둘 말아 채워넣었다.

훈탄 가루가 벽과 바닥에 흩뿌려져 있다.



검정 먼지 '마루로' 형태의 훈탄은 흔적이 없이 사라지고

시멘트 벽면처럼 모던한 느낌의 석고보드 벽면이 생겼다.

방은 15센치 정도 작아졌지만,

창틀에서 약간 튀어나온 공간이 생겨 선반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공사 전에 집을 직접 방문하셔서

도시의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에 적용할 수 있는 생태건축(훈탄단열, 흙미장)을 알려주신

흙건축학교 김석균 선생님, 봉하마을에서 적정기술을 보급하시는 이재열 선생님,

문화로 놀이짱 활동가들께 감사드린다. :)

조언주신 것을 다 적용할 능력과 에너지가 되지 않아 몇 가지 포기했지만

앞으로 살면서 하나씩 해 볼 요량이에요. ^^



세번째  방 문이 곳곳에 금이 가고 깨져서

원목 문으로 바꾸려했지만 문 여닫는 데 문제가 없고

원목 문 값만 30만원이라 우선 패스.



문짝을 바꾸지는 못해도 금 간 곳이랑 과도한 무늬(?)가 부담스러워

패브릭 천으로 덮었다.



밋밋하지 않고 장식용 홈이 파진 문짝은 먼지가 많이 쌓여서 청소할 때 홈 부분을 닦아줘야 하는데

이렇게 천을 입히면 먼지가 덜 앉아서 청소하기 편하다.



튀어나온 벽면 안에는 훈탄이 들어가 있지롱~




선반처럼 튀어나온 부분에 책이나 화분을 둘 수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선반의 폭 크기인 15센치가 단열을 맡고 있다.

이 화분들은 모두 원래 키우던 화분들이 새로 가지를 치거나 옆에 새끼를 친 것을 화분에 새로 옮겨 심은 것!

알로에, 선인장 (이름은 몰라요;;), 바질, 아이비 모두

가지를 꺾거나 새로 생긴 새끼를 파내서 다시 심으면

이렇게 훌쩍 자라난다.



훈탄으로 단열한 전체 벽면의 모습.

석고보드 위에  벽지를 바르니 생태단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생태단열, 생태건축을 알아볼 때 도시 한 복판에서 '생활 한복' 입고 살아야 어울릴

귀농한 집의 모양새가 나오면 어쩌냐, 하고 걱정했는데

(흙벽도 흰색이나 연한 색이 가능한지 깨알같이 알아봤다!)

흠, 이제는 '친환경 단열'이라고 으스댈 수가 없어서 아쉬울 지경.




이 방도 역시 고효율 LED 조명을 천장이 아니라 벽 한 쪽에 달았다.

방이 작아 8와트 조명 하나로 방이 따뜻하게 밝아지는 느낌이 든다.

조명 장식은 을지로 4가에서 약 15,000원 선에 구입했고

바로 조명에 노출되는 것이 싫어 천장 쪽으로 빛을 쬐여 방 전처에 반사시키도록 각도를 조절했다.

조명은 위 아래로 쉽게 각도를 바꿀 수 있다.




커튼은 따로 구입하지 않고 도시농부 장터 '마르쉐'에서 구입한 보자기에 커튼 핀을 달아 고정했다.

조금이라도 단열에 도움이 되고자 방마다 커튼을 달았는데

하나도 새로 사지 않았다.

그 동안 뭔가 만들다가 남은 천, 가지고 있던 테이블 보나 스카프에 커튼 핀만 꽂으면 커튼!

커튼이나 침구류가 가격이 비싸서 집 이사해서 새로 장만하려면 부담이 되는데

자투리 천이나 테이블 보 등 남는 천이 없다면

면 재질이나 광목 등의 싸고 빨기 쉬운 원단을 재봉질 하지 않고 커튼 핀에 꽂아 쓰면 된다.

재봉질하지 않아 너덜거리는 것이 싫다면

동네 세탁소에 가장자리 부분만 오바로크 해달라고 맡기면 된다.



여행자를 위해 비워두었습니다. ㅎㅎ

그런데 울엄마가 갖다 준 곽휴지 하나로 모텔방처럼 보이는 건 뭥미?





여행가서 도미토리에 책상이나 테이블이 없으면 좀 불편했는데

여행자를 위한 이 방에도 노트북용 책상은 필요하고

나는 정말 정말로 필요하지 않으면 뭘 안 사는 것이 원칙이라

친구에게 받은 책장의 한 칸 중 선반을 뜯어내서 책상 대용으로 삼았다.
의자에 앉아보니 다리가 책장 안으로 쏘옥 들어가서 나름 책상 같다.

(좀 낮으면 노트북 아래 책을 깔아서 쓰면 되고요. 암~됩니다. ㅎㅎ)



내가 이사오기 전 쓰던 요를 2번 접어서 두툼하게 깔아놨다.



gooly gooly라는 에서 잘라낸 그림 두 장을 헐렁해서 썰렁한 방을 위해 붙여놓았다.




혼자 쓰기에도 크지 않지만

두툼한 요를 펼치면 2인도 머물 수 있으니

카우치 서퍼들이여~ 어여 신청하삼. :)


아직 카우치 서핑 호스트는 못 해 봤으니 그 경험은 나중에 포스트로.


그런데 내가 이케 방이 하나 남아도는 집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청소할 때마다 그케 청소를 했는데도 왜 방이 또 남았냐고 한탄하게 된다.

15평 청소하니라 힘들어서 30평에 사는 중산층은 못 되겠다,라고 결심도 한다. -_-

수 틀리면 기냥 젊을 때 내가 내 친구들 집 문간방 얹혀 살았듯

이 집도 친구에게 싸게 세 놓고 집 청소는 3명이서 돌아가면서 할지도 모르겠다.

카우치 서핑이니 어른에서 탈출하는 비상구니, 어쩌고 다 떠나서

청소하면서 다시 엄마의 마음으로 빙의하는 듯.

손님이랑 강아지는 안 돼!  




훈탄 구입처

http://cafe.daum.net/purntutbat/kkNP/7


폭 1.5 미터 정도의 한 벽면을 단열(15센치)하는데 사용된 훈탄 양과 비용

100리터 * 5개 = 500리터

100리터 당 약 3만원 * 5개 = 15만원


위의 사이트에 들어가면 단열할 때 필요한 양을 계산하도록 나와 있어요.

사이트에 나온 양대로 계산한 것보다 제 경우에는 100리터 정도 훈탄이 더 들어갔으니

여유있게 구입하는 것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