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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ble47

[아침 뭐 먹었어?] 날마다의 보양식, 야채 해독주스 이런 말을 하는 내가 '꼰대'스럽지만, 간편식이 이해가 안 간다. 아니, 왜 밥을 호로록 털어버리듯 먹어? 밥 먹을 때가 하루 중 젤 좋은 시간 아냐? 초코렛이 비싸던 어린 시절 핀셋으로 초코렛을 긁어먹던(!) 것처럼, 봄날의 흐드러지게 지는 벚꽃처럼 지극히 아쉽기만 한 '밥 시간'인데. 해금을 같이 배우던 중학생이 그랬다. 반 애들이 매일 학교 홈페이지에서 읽는 글은 딱 하나라고. 오늘의 급식 반찬이 적혀있는 게시판. 그러고 보니 지금 일을 쉬고 있는 나도 집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바로 '집밥'을 먹기 위해서다. 나는야... '종간나세끼'. (본인이 요리 담당이라 손수 차려드시긴 합니다만.) 하루 종일 집 주변에만 머물다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와 꼬박꼬박 밥과 간식을 챙겨먹는다. 내 룸메가 나처럼.. 2018. 3. 22.
[스페이스 소] 동네에서 여행하는 기분의, 근사한 공간 동네에 멋진 공간이 생길수록 어딘가로 여행을 다녀오는 감상에 빠질 수 있다. 별일 없이 동네를 산책하다발견한 의외의 공간이야말로 일상을 여행처럼 반짝이게 한다. 딱히 어여쁠 것도, 기억할 것도 없는 일상다반사에 일일이 감동 받는 여행자의 감상이 절로 솟아난달까. 게다가 수억 톤의 탄소발자국을 남기는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되고, 그 덕에 죄책감에 시달릴 일도 없다. 지금 나는 보고 듣고 느끼는 족족 사진과 글로 남기고 싶어 환장하는 여행자처럼, '스페이스 소'의 철제 바에 앉아 포스팅을 쓴다. 동네는 고즈넉하고, 공간은 환상적이고, 딱히 할 일 없는 지극히 오랜만의 일요일과 혼자만의 오후. 달리 무얼 바라겠는가. 서교동의 오밀조밀한 다세대 빌라와 큼지막한 단독주택들 사이에 새로 생긴 '스페이스 소'는 1,.. 2017. 12. 3.
당근 잎사귀로 해 먹는 마이크비오틱(?) 부침개 육지의 모든 것을 침잠시킬 각오를 한 것처럼 하루 종일 거세게 비가 온다. 휴일 오전 이른 아침, 산책하듯 한적한 카페에 가서 책을 읽으려던 기대를 꺾게 하는 야무진 빗줄기. 그래서 나는 집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유유자적 오전을 탕진한다. (아, 휴일의 오전은 정말이지 강원랜드에서 탕진한 돈보다 더 허무하게 사라지는구나) 그리고 점심. 부스럭 부스럭 냉장고를 뒤지다 당근 잎사귀를 발견! 비가 오면 왜 부침개가 먹고 싶을까, 하는 물음에 어떤 글에서 전 부치는 기름의 툭툭 튀는 소리가 빗방울이 땅에 닿아 튀는 소리와 비슷해서, 라고 했다. 그 구절을 읽고부터 비 오는 날이면 더욱 전이 먹고 싶어진다. 우리 집은 음식물 쓰레기를 죄다 퇴비로 만드는데 양이 많으면 힘들어진다. 특히 여름에는 흙과 섞고.. 2017. 8. 15.
복날, 고기 말고 원기 돋는 비건음식으로 몸 보신 절기력은 얼마나 신통한가. 입추가 지나고 말복이 오자 열대야는 싹 사라지고야 말았다. 사주 말고 절기력으로 운세를 점치는 방법이 있다면 난 반드시 절기력 운세를 보고 말 거야. 말복의 자정, 열린 거실 창으로 들어온 바람은 가을의 향취를 담고 있다. 입추가 몰고 온 초가을의 청량한 기운이 여름 밤 공기에 실려있다. 벌써 여름이 가다니 짧은 휴가가 끝나고 직장으로 복귀하는 전날 밤처럼 조마조마하고 불안하다. 아, 벌써 겨울이 올까 봐 무서워. 채식주의자를 지향하지만, 이미 이 혓바닥은 고기에 담금질되고 말았도다. 그래도 닭고기(혹은 개고기 ㅠㅜ) 소비가 많은 복날에는 작정하고서 비건 식당을 찾는다. 자식을 서울로 보내놓고 영양이 부실할까, 과일이 비싸서 못 사먹을까, 대보름날 나물반찬은 해 먹을까, 복날 .. 2017. 8. 12.
[아침 뭐 먹었어?] 불을 1도 쓰지 않는 나또(낫토) 비빔밥 나의 정규직 첫 직장이자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여성환경연대' 사무실에는 에어컨이 없다. 더위를 많이 타는 활동가의 우렁찬 아우성이 있었지만, 8월 첫째주 무조건 '재충전 휴가'가 상여금처럼 주어진 후에는 에어컨 사자는 말이 쏙 들어갔다. 그리하여 매해 개인휴가 외에 8월 첫째주, 일주일을 통으로 쉰다. 암묵적으로 '일주일을 쉴래, 에어컨을 달까' 중에서 휴가를 선택한 것. 이제는 무슨 불문율인 듯 에어컨은 뭔 에어컨, 이런 태도로 산다. 그럼에도 복작복작한 사무실에서 컴퓨터 10대가 뿜어내는 열기는 우리의 '정신승리'를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올해부터 7월 한 달 간 일주일에 2일은 재택근무를 해도 되지만, 진짜 난관은 밥이다. 우리는 손바닥만한 부엌에서 돌아가며 밥을 해 먹는다. 밥 당번은 밥 하랴, .. 2017. 7. 8.
'바베트의 만찬'을 떠올린 연남부르스리 연남동 식당에서 망원동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길, 봄바람이 일렁거렸다. 영원히 끝이 없을 것 같은 초여름 밤의 공기가 아닌, 앳되고 여린 봄밤의 기운이 금방 사라질듯 아스라한 느낌이었다. 그 밤, 퇴근 후의 한갓진 저녁 시간을 당신들과 보내고 돌아오면서 을 떠올렸다. 영화 의 원작자이자 작가 이자크 디네센이 쓴 동화 말이다. 나는 그 책을 , , 등 레시피 위주의 요리책과 함께 부엌 선반에 올려두었다. 찌개가 보글보글 끓기 전, 스파게티의 면이 삶아지기 전, 그 틈새의 시간에 가스레인지 앞에서 의 그림을 보고 또 보았다.그럴 때면 꼬박꼬박 집밥을 차려내는 부엌데기의 고달픔이 아니라 날마다의 일상을 돌보는 '카모메 식당'을 감싼 평화가 찾아들었다. 특별할 것 없고 아무렇지도 않은 하루하루가 어여뻐지.. 2017. 5. 4.
[마파두부 덮밥] 두반장도, 고기 없이도 충분해 직장에 새로 들어온 동료가 밥당번을 맡은 날, 두반장 소스도, 잘게 다진 고기도 없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마파두부를 한 것이 아닌가! 마파두부덮밥을 좋아하지만, 양 많은 두반장 소스를 다 못 쓰고 유통기간이 지나 버리는 것이 마음에 걸려 포기했었다. 그러니 두반장 소스 없이 집에 상비군처럼 늘 있는 양념만으로 만드는 마파두부에 솔깃할 수밖에. 동료에게 전수받은 비법으로 한 그릇 뚝딱 해먹었다. 마침 지난 주말 를 읽은 독자가 집에 놀러오면서 선물로 가져온, 신토불이 포스를 풍기는 손두부가 있었다. 아주 쉽다.:) 양념: 굴소스 1 스푼, 고추장 1스푼, 된장 1스푼 재료: 두부 한 모, 참기름, 간장, 대파, 다진 마늘, 전분 난이도: 마이너스 손, 왼손만 두 개인 사람도 완성 가능 (10~15분 소요).. 2017. 3. 25.
과천 나들이: 별주막+여우책방+공간숟가락 저 멀리, 과천에 다녀왔다. 그리고 과천이 시민운동의 활발한 곳이라고 오래 전 기사로 읽은 사실을, 먹고 마시는 와중에 스르륵 체감할 수 있었다. 아들이 과천무지개학교(대안학교)에 입학하면서 그 주변으로 거처를 옮긴 혜진이 우리를 초대해 풀 코스로 안내해주었다. 오래 전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들을 집에 초대해 점심 상을 차려주면서, 그녀는 거실 벽에 커다랗게 ‘언니들, 환영합니다’라고 붙여놓았었다. 새로 옮긴 혜진네 집으로 가면서 그 따뜻한 환대가 떠올랐다. 사랑스럽다. 여성환경연대에서 일할 때 쌈박한 퍼포먼스 아이디어를 던지던 그녀가, 직장을 떠난 이후로 우쿨렐레를 치고작곡을 하고 뜨개질을 하는 등 사부작사부작 생활의 기술을 몸에 쌓아왔다. 그리고 뜻이 맞는 동네 사람들과 모여협동조합 밥집을 차렸다. 카페.. 2017. 3. 9.
망원동+ 가게들의 지도: 카페, 밥집, 술집, 소품샵, 빵집 등 지도 2016년 안식월, 마지막 한 주를 기념하며 경 축 간판이 없거나 골목 사이사이에 위치해 찾기가 영 거시기한 작고 아담한 가게들을 널리 이롭게 하고자 하였으나과연 그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고, 망원동 오시는 분들께 소소한 즐거움을 드리고 유익한 길잡이가 되면 좋겠어요. 특히 무턱대고 오셨거나 걍 지나다 들렀다가 쉬는 시간(브레이크 타임)과 휴무일이 제각각인 망원동 가게들의 닫힌 문에 상처받지 않도록되도록 영업시간과 인스타 주소를 넣었어요. 2016년 마감 끝낸 것 같은 이 기분은 뭐다냐 ㅎㅎ(어서 원고비도 안 나오는디) 약 6개월 간 우리 동네를 떠나 다른 동네를 떠돌다 왔더니 애정 급 폭발하여 (이러다 애국자 되겄으) 집밥을 내팽개쳐둔 채 내 돈 탈탈 털어 동네 경제에 기여하고 노트북 앞에서 거북 북 굳.. 2016.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