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리우 +20' 환경회의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다녀온 나의 전 룸메 깡샘이 말했다.
"리우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어.
하나는 사람들이 오케이 할 때마다, 택시 타고 목적지만 말해도, 우리가 광고에서 봤던 따봉을 온 몸으로 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리우의 부촌인 '이파네마'의 소녀와 길거리 사람들은 인종 자체가 달라 보일 정도로
불평등이 온 거리에 만연해있다는 것"
환경영화제에서 소개된 영화 <웨이스트 랜드 waste land>를 뒤늦게 공감영화제에서 보았다.
'웨이스트 랜드'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외곽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쓰레기 매립장에서
하루종일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을 그린 '예술' 영화이다.
그러니까 이파네마의 소녀와는 거리가 영판 먼, 삶의 나락에 몰려 쓰레기를 주우며 생계를 연명하다가
삶 마저도 쓰레기로 취급당하던 사람들이 예술 활동을 통해 자존감을 구원받는 이야기이다.
빅 무니즈 (Vik Muniz)는 브라질 출신으로 뉴욕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비주얼 아티스트이다.
브라질 빈민가 출신인 그는 거리에서 우연히 싸움을 말리는 도중 다리에 총을 맞았는데
'운이 좋게도' 총을 쏜 사람이 아주 부자인지라 사건을 묻는 댓가로 받은 보상금으로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설탕과 철사와 초콜릿 시럽, 쓰레기 등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로 해학적인 예술작품을 만드는 재능은
그의 말대로 1970년대 정치적 억압에 시달리던 브라질의 가난한 마을에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소재를 통해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웨이스트 랜드'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검정 종이 위에 설탕으로 알알이 그린 초상화 속 아이들은 설탕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자식들이다.
큰 변화가 없다면, 이 아이들도 자라 온 삶을 사탕수수 플래테이션 농장에 묻게 될 것이다.
깨알같이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선과 음영을 이루는 설탕 입자와 함께 피사체의 삶의 보인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라니, 위선적이야.
어차피 브라질의 불평등과 사회적 구조는 그대로일 뿐이잖아, 라는 마음은
다큐먼터리의 대화 속에서 흩어지고 만다.
3,000명을 대표하는 넝마주의 조합장이 모델로 출연한 <마라의 죽음>이 런던 미술품 경매장에 걸리자
무자크는 조합장과 함께 런던으로 갈 채비를 한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쩔 거냐고?
이 사람들이 변화하고, 동요하는 것이 안 보여?
런던에 다녀오고 나서도 넝마주의 삶은 계속 될 텐데?
네가 이 사람들을 책임질 거야? 잔뜩 바람만 불어넣어 놓고 어떻게 할건데?"
라는 비판에 그가 대답한다.
"내가 만약 그라면, 런던으로 갈거야.
다시 돌아와 쓰레기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도, 그래도 그 때 그 기억으로 삶은 달라질 거고,
그 다음의 몫은 그들에게 달려있고.
내가 그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런던에 갈 거야. 당연한 거 아냐?"
그래서 그들은 런던 경매장에서 5,000만원에 그림에 팔고 그 돈으로 넝마주의 공동체에 학교와 도서관을 세운다.
"사람들은 처음 넝마주의 조합(association)을 만들 때, 제가 미쳤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조합은 3,000명이 넘는 조합원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지요.
이 곳에서 예술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저는 그가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 삶이 변했습니다.
쓰레기가 아니라 자원 재순환입니다. 저희는 보이지 않는 존재였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라의 죽음
매립지에서 채취한 쓰레기들을 채워 자신의 초상화를 직접 완성한다.
작업 후 어떤 쓰레기도 남지 않는다.
작품의 소재는 넝마주의가 다시 분류해 재활용업체에 판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외곽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쓰레기 매립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쓰레기 매립장에 스튜디오를 차리고 2년간 그 곳 사람들과 작업한 빅 무니즈 (작가)
사진 출저: 영화 웨이스트 랜드 사이트 http://www.wastelandmovie.com/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작가는 이 세계에 눈길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어떤 사악함을 지저를 수 있는지 이해하고 살펴보고 연상해 보려고 노력하는 존재,
그렇지만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냉소적이 되거나 천박해지거나 타락하지는 않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작가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했다.
피사체의 삶에 눈길을 주는 존재,
그리고 그들의 삶을 소재로 삼아,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살펴보고 연상해 보려고 노력하는 존재,
빅 무니즈와 '웨이스트 랜드'를 통해 작가의 역할, 그리고 '예술, 어디까지 가봤니?'를 보았다.
2009 년 테드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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