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잔치는 끝났다'보다 '파티는 끝났다'를 예시주의했던 나는 청춘의 고단하면서도 아스라한 느낌보다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더 큰 관심이 있어왔다.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온 산업혁명시대의 단물을 긴 여름에 비유하던 '긴 여름의 끝'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읽었다. 이른바 '끝' 시리즈를 무슨 종말론 읽듯 조마조마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읽었드랬다. 그 책들은 화석연료에 기반한 시스템의 종말을 성실하고 논리적으로 증언했다.
'잔치는 끝났다'와 '파티는 끝났다'는 이 지점에서 하나가 되었다. 이 시스템의 끝에서 다르게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청춘들이 화석연료 시스템의 단물을 빨아먹던 전 세대의 그늘막에서 벗어나 스스로 삶을 구성하면서 마주친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다른 삶을 살아낼 것인가이다. 청춘의 잔치도 끝나가지만 전 세대처럼 지구와 타 생명들을 착취하면서 풍요를 누리던 파티도 끝났다. 하지만 먹고 사는 일은 여전히 끝나가는 '파티'에 매몰되어 있다. 사회적 경제 조직과 실험들이 부흥하는 것도 이 고민과 맞닿아 있다.
청년허브에서 '파티는 끝났다'의 작가 리처드 하인버그가 '삶의 재구성' 기조연설을 깔끔하게 진행했다. 제로 성장 시대에 청년들이 어떻게 다르게 살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이혼소송 중에 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해있는 백만장자가 국내 총생산(GDP)에 큰 기여를 하듯, 행복이 아니라 소비의 총량만이 중요한 GDP를 기준으로 삼지 말 것, 노동자가 기업의 주인이 되는 협동조합과 노동자 주주제도를 적극적으로 실현할 것, 재생가능한 에너지도 중요하지만 에너지를 어떻게, 어디에 사용할지가 더 중요하며 지금의 공급량을 재생에너지로 모두 충당할 생각을 버릴 것, 생각과 실행을 다르게, 그래서 삶의 디자인을 새롭게 구성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예를 들어 온실가스 문제와 높은 석유값의 해결책은 전기차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걷기 쉬운 도시를 만드는 거다. 자전거도 개인이 소유하지 않고 빌려쓰고 나눠쓰는 공유의 시스템으로 이용을 높인다. 시스템의 문제고 전체 삶의 디자인 문제다. 교통, 에너지, 음식 등 삶의 모든 분야가 새로운 디자인과 실천을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연하다면 세계 곳곳에 생겨나고 있는 전환도시(transition town)의 시도를 따라가도 좋다.
리처드 하인버그의 기조 연설
복도까지 사람이 가득찬 청년허브 컨퍼런스의 열기
하인버그의 기조연설에 이어 삶의 각각의 지점에서 다르게 살기 위해 즐겁게 뭉쳐서 즐겁게 고군분투하는 8개 청춘들의 이야기가 15분씩, 유창하게 이어졌다.
1. 커뮤니티: 카페오공 cafe 50
키워드: 공동체, 청년 공동체, 마을 공동체, 커뮤니티, 텃밭, 3만엔 비즈니스
언젠가부터 카페오공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었는데, 카페가 강남 남부터미널 근처에 있어 가보지를 못했다. 월남하면 남의 동네 와 있는 것 같아서 강남 쪽은 거의 안 가는데, 카페오공 발표를 들으면 강 건너 카페를 직접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카페 오공은 50명의 주인장이 100만원씩 출자하여 5,000만원으로 만들어진 카페 공간이다. 카페에서는 식야식당을 운영하고 대관도 하고 3만엔 비즈니스, 소비 줄이기 등의 '건전한' 소모임을 통해 삶을 재구성하도록 서로 북돋는다. 카페 운영을 위해 50명이 이리저리 만나 운영 회의도 자주 진행한다.
카페오공은 함께 귀촌을 준비하던 12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귀촌의 로망은 시골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에서 즐겁게 살고 싶어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매듭짓고, 주거공동체 '우동사'를 만들면서 시작된다. 12명의 청년이 인천 검암 지역에 2채의 집을 마련해 주거 공동체를 실험하다가 지금은 19명이 되었다. 함께 살면서 이들의 생활비는 평균 85만원에서 15만원으로 80%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만나고 나누고 놀면서 소비를 줄였다. '적게 소비하면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파티'의 돈줄을 벗어나 청년들이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일, 가치있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을까?'를 실험하고 있다. 발표를 들으면서 비슷한 컨셉의 해방촌 '빈집'을 떠올렸다. 청년들의 실험 공동체가 숲 속의 버섯처럼 서울의 이곳 저곳에 솟아나면 좋겠다.
이들은 내친 김에 '텃밭오공'을 만들어 50명의 청년들이 텃밭을 일구고 있다. 짝짝짝! 베란다 텃밭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글쎄 검암 지역에 100평, 강화도에 500평을 일구고 있단다. 이 정도면 레알 농사'꾼'이라고 할만한 수준인거다. 청년과 노인들이 함께 모여 농사를 짓고 노인들의 생계를 모색하는 자투리 땅의 텃밭도 현재 진행형이다. 2014년의 목표는 우동사 20명의 쌀을 자급하는 것! 카페오공의 활동이 거의 산업혁명기 때 증기기관차를 단 것처럼 칙칙폭폭 엄청 빠르게 나가고 있다. 완전 임프레시브!!
2. 정치: 더 넥스트 The Next
키워드: 정치, 해적당, 캠퍼스 엑스, 소셜 스터디, 민주주의
젊은이들의 정치 티파티! 직접 참여하고 이야기하고 정책을 바꿔내는 새로운 형식의 정치적 자장을 만들어낸다. 다음 세대 민주주의 모습을 모색한다고나 할까. 전국 곳곳에서 소셜 스터디 캠페인 엑스를 꾸려나가고 있으며, 이번 컨퍼런스에서 미래의 정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해적당 유럽위원장 줄리아 레다를 초청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한다.
3. 일: 오픈 팩토리
키워드: 일, 업, 직업, 놀이
오픈팩토리는 일과 놀이의 구분 없는 삶을 추구하는 공간이다. 삶과 업이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사회 혁신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직업과 노동이 어떻게 삶의 놀이가 되는지 찾아간다.
4. 일: K2 인터내셔널
키워드: 일, 노동, 텃밭, 프리타, 일본
K2 인터내셔널하면 맛있고 통통한 타코야끼가 떠오른다. 탈핵집회와 홍대다리텃밭 모임 때 K2의 타코야끼를 맛보았는데 '디스 이즈 일본'이라는 감동이 밀려오는 맛이었다. K2 인터내셔널이 한국에 진출해 합정동에 자리를 잡고 텃밭을 일군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젊은이들의 일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는지는 몰랐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일본의 프리타 노조와 여러가지연구소, 땡땡책협동조합과 함께 일의 개념에 균열을 일으키고, 일의 영역을 확장해가는 사례들을 이야기하며 노동에 대해 질문하는 모임을 진행한다.
5. 공간: 스페이스 노아
키워드: 커뮤니티 공간, 공유 경제, 코워킹, 오피스 쉐어
스페이스 노아는 시청역의 룸싸롱이던 공간을 코워킹 공간으로 바꿔낸 곳이다. 대중 강연이나 연대회의 등을 진행하기도 하고 사무실이 없는 사람들이 노트북 하나로 자기가 필요한 순간에 스페이스 노아의 공간에 사무실을 마련하기도 한다. 함께 일하고 네트워크하는 공간이다. 강남에 '허브 서울'이 있다면 강북에는 '스페이스 노아'가 있다.
6. IT 기술: UFO 팩토리
키워드: 개발자, 사회혁신, 오픈드림, IT 기술
개발자가 결국 '닭집 창업'에 나서게 되는 사회에서 IT기술을 이용해 사회의 과제를 풀어내고 공공영역의 일을 도모하는 UFO의 실험들이 단상에 올랐다. 다른 삶을 꿈꾸는 개발자와 그 개발자들의 기술로 다른 삶의 질감을 가지게 될 사회의 모습이 그려졌다.
7. 재활용: 문화로 놀이짱
키워드: 목공, 재활용, 소비, DIO (do it ourselves), 손, 핸드메이드, 폐자재
문화로 놀이짱은 현대판 장인들이 서울시 관사로 쓰이다가 5년 넘게 방치되던 공간을 무단 점거하면서 만들어진 사회적 기업이다. 본격적인 '장인'들의 손놀림은 소비보다는 생산으로, 소유보다는 공유로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들과 감각들을 키워나가는 활동으로 이어진다. '생각하는 손들의 공공지대'라는 장인들의 워크샵과 시장을 시작으로 DIO (Do it Ourselves)워크샵, 해결사들의 수리병원을 통해 오래도록 잘쓰는 물건을 만들어내고 물건을 개인의 경험과 관계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장인들을 키워내는 생산혁신학교와 그들의 기술과 작품을 활용하는 연남동 동진시장의 '모자란 협동조합'까지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다. 본업은 건설폐기물이나 버려진 가구의 폐목재를 이용해 새로운 가구와 공간을 만들어내는 목공작업이다.
'문화로 놀이짱'의 폐목재로 신발장을 만들고 부엌을 리모델링한 포스트 http://ecolounge.tistory.com/319
8. 사회혁신: 홍콩의 MAD
키워드: 사회혁신, 홍콩, 플랫폼, 체인지메이커
자신을 서울의 파트타임 시민이라고 소개한 홍콩 MAD의 디렉터 :) 매드는 홍콩에 기반을 둔 아시아의 젊은 체인지메이커들을 위한 플랫폼이라고 한다. 청년들이 모여 다양한 사례 발표와 워크샵을 하기 위해 매드에 참여하고 있는 여러 명의 청년들이 서울에 왔다.
이 중년 여자의 콧구멍 속으로 청년들의 열기가 후욱, 하고 느껴지던 컨퍼런스였다. 그런데 제공된 점심은 기조 발제와는 다르게 끝나가는 '파티'에 젖어 있었다. 홍대에 이어 성북 쪽에 새로 생긴 사회적 기업 '성북 슬로비'에서 준비한 도시락이었는데, 과대포장에 전부 일회용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한 달 전 쯤 노원쪽에 텃밭 투어를 준비하면서 도시락으로 성북 슬로비를 생각했다가 슬그머니 포기한 적이 있다. 사진을 보니 '당연스레' 플라스틱 일회용을 사용하길래 노원에서는 좀 멀지만 마포의 '소풍가는 고양이'에서 도시락을 주문했다. 40명의 한끼 밥상이 남길 쓰레기가 텃밭에 미안하고 민망했던 탓이다. 소풍가는 고양이는 고양이가 그려진 귀여운 도시락통을 쓰는데 다시 수거하여 설거지해서 사용한다.
현미 쌈밥 도시락은 좋지만 종이인 도시락 통만 빼고는 모조리 일회용 플라스틱. ㄷ ㄷ ㄷ, 먹고 나니 청년 허브 사람들이 일일이 남은 반찬을 정리하고 분리수거하는 수고에 쓰레기는 한 가득. 지속가능성을 말로 이야기하기는 쉬어도 바로 이어진 점심에서 실현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구나.-_- 같이 컨퍼런스에 참가했던 키르케도 아주 불편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드랬다. 여전히 '파티'는 지속되고 있는가, 라는 자각이 쑥부쟁이처럼 올라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컨퍼런스 진행은 아주 좋았다. 광목에 인쇄한 플랑카드, 발표 내용 옆에 한글로 자막을 띄워주니 영어 발제도 이해하기 쉽고 많은 사람들이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참여한 8개 팀의 강의 수준이 알흠다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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