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5 [스페인 세비야] 몸의 움직임을 예술로, 플라멩코 몸치인 나는 체육시간과 운동회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수리영역 I 때문에 수능 점수를 말아먹었지만 달리기나 공놀이를 할 바에야 미적분을 푸는 것이 100배 더 좋았고, 엄마 뱃속에서부터 잘 움직이지 않는 태아로서 체육을 '디스'했을 거야, 라고 믿어왔다. 매년 국민학교 운동회 때마다 전교생이 학년별, 학급별로 100미터 달리기를 했는데, 그때마다 코피란 것이 좀 나봤으면 좋겠다고 빌었었다. 그러면 달리기에서 빠질 수 있을 테니까. 국민학교 6년 내내 나는 100미터 달리기에서 늘 한참 뒤진 꼴등이었다. 뭐 어때, 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못 만나서였는지, 내 몸이 '찐따'같다고 느꼈고 그래서 참으로 부끄러웠다. 고등학교 때 체육선생님은 학생들 앞에서 어떻게 그 (뚱뚱하지 않은) 몸으로 100미터를 25.. 2016. 11. 17. [스페인 마드리드] 국뽕 입맛을 사로잡은 메뉴델디아 식당 여행을 하면 자기 자신을 더 많이 알게 된다고들 한다. 그렇다. 나 역시 내가 가진 한계,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나의 취향, 나의 고집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정주적이고 정적이고 한국적인 사람인지 6개월 간의 여행을 통해 빼도 박도 못할 만큼 깨달았다. 소싯적 치앙마이 한 켠에 팥빙수 가게를 열고 앞으로 철마다 도돌이표 되는 한국의 겨울 따위는 겪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는데, 정말 어릴 때는 자기 스스로를 잘 모르는가 보다. 결국 나는 장강명 소설 만큼이나 한국이 때때로 끔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살아가야 할 존재였다. 특히 암내처럼 몸에 진득하게 베어버린 ‘국뽕’ 입맛. 어딜 가도 맛있게 먹는 노마드들과는 달리 이탈리아만 빼고서 동서남북유럽 모두 입맛에 맞지 않았다. 하도 .. 2016. 10. 30. [스페인 폰테베드라] 여름의 곡진한 즐거움, 강 수영 스페인의 소도시, 폰테베드라. 차 없는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산티에고 순례길의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 순례자들이 하루 이틀 정도 머물고는 유유히 사라진다. 특출 난 관광지가 없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작은 마을일 뿐이다. 하지만 조용하고 고즈넉한 유럽풍 소도시를 만끽하고 싶다면, 천천히 일상을 걷고 싶을 뿐 ‘관광’스러운 것은 도무지 하고 싶지 않다면 폰테베드라가 딱이다. 호스텔 이름마저 이에 걸맞게 ‘슬로우시티(slow city)’다. 이 호스텔에서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부엌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빵과 과일, 시리얼 등을 먹을 수 있고 세탁기도 무료로 맘껏 돌릴 수 있다. 장을 봐다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먹어도 된다. 주인장 내외는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그러나 충분히 온기가 느껴지는 인간적인 친절함을 .. 2016. 10. 9.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카이샤포룸 마드리드 마드리드에는 유럽의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프라도 미술관이 있다. 프라도 미술관 입장료는 12유로인데, 문닫기 2시간 전부터 무료로 개방한다. 평일에는 오후 8시, 주말에는 7시에 문을 닫으니 각각 6시와 5시부터 입장권 없이 들어갈 수 있다. 미술관 입구로 길가에 (표 사서 들어가는 티켓라인 말고) 아이돌 팬사인회처럼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바로 무료 입장을 기다리는 인파다. 줄이 길어 들어가는데도 꽤 오래 걸리니, 무료 입장을 할라치면 한 시간쯤 일찍 가서 자리를 잡는 것이 좋다. 하지만 프라도 미술관을 관람하는데 무료로 주어진 2시간이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늘어선 줄을 잘 감상하고서는 근처의 레티로 공원(Parque del Retiro)에 누워 책을 읽었으니까. 나는 프.. 2016. 7. 10. [마드리드] 온 도시가 게이들을 레알 환영한다, 마드리드! 음식이 맛있고 (유럽의 여느 도시들과는 달리 해산물 요리가 풍부하다!) 사람들이 친절하고 사적 공간에 민감하지 않아 (공공공간에서 몸이 부딪히거나 서로 닿아도 별로 기분 나빠 하지 않는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곳, 스페인. 한국사람들이 유럽 국가 중 가장 한국과 비슷하다며 고향의 향기를 맡는 이곳. 거리에는 1800년대 건물들이 즐비하게고, 보행자가 보일라치면 도로 위의 차가 가만히 서고, 도심 곳곳에 광장과 동상과 공원이 자리잡아 유럽적 정취가 흠뻑 느껴지지만, 북유럽의 차갑고 합리적인 감성이 느껴지지 않아 위축되지 않는 곳. 이번에 마드리드에서 와서 스페인을 사랑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마드리드의 동서남북, 하늘부터 땅끝까지 온 도시가 당신들의 존재를 '레알' 환대한다! 2017년 마드리드 게이.. 2016. 7. 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