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다솔 언니의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읽었다. 낄낄대며. 나보다 한참 어린데 왜 언니라고 물으신다면, 멋있으니까 언니. 그의 다도상에 올라오는 보이차를 한 잔 대접해드리고 싶은 마음. 가난해지지 않고, 한껏 기깔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건강하시길. 이런 책은 작가가 글 쓰며 살도록 돈 주고 사야 하는 거 아시죠. ㅎㅎ 찍은 지 한 달만에 3쇄라고 적혀 있는 책 마지막 부분을 보고 조금쯤 안심했다. 양다솔 님이 책을 바친 어머니 김한영 여사도 아닌데, 내가 이렇게 오지랖이 넓다. 오늘 아침 나도 보이차를 따라 마시고 그 뜨거운 차가 낙낙히 비어있는 내 위장을 데우는 것을 느끼며 책을 정리한다. 이 책은 오늘 오전 알맹상점 1층 공유선반에 놓여 있을 거다.

책 내용 중 꽂힌 부분 정리
"마음 붙일 곳 하나 없는 세상에서, 네 집만은 네가 돌아와 푹 쉴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해." 그리고 그녀는 말대로 되었다. 그 돈은 넉넉한 삶의 공간이 되었다. 아침이면 볕을 받을 수 있고,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을 수 있으며, 고양이와 내가 부족함 없이 굴러다닐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어떤 일을 겪어도 돌아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처음엔 그 돈이 어떤 의미인지 실감할 수 없었다. 일한 만큼 받거나 받은 돈보다 더 일하는 것 외에는 잘 알지 못하고 알 생각도 없는 김한영 여사가 그 돈을 모으기 위해 얼만큼의 시간을 들였을지. 아니, 어쩌면 나의 어머니에겐 수학공식만큼 분명할지도 몰랐다. 10년. 적어도 그랬을 것이다. 그녀의 육십 인생에서 적어도 10년을 나에게 준 것이었다. 정작 당신은 평생 누구에게도 받은 적 없는 시간을 나에게 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내가 월세를 내느라 덜 허덕이게 하고, 조금은 사고 싶은 것들을 사고, 삶에 너무 지치지 않을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41쪽
외롭다, 외롭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 매일같이 홀로 밥상에 앉으며, 이 커다란 세상에 정말 나 혼자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는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불쑥 어떤 생각이 끼어들었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것은 누군가의 생명이구나. 나의 작은 밥상에 오르기 위해 지구 어딘가에서 태어나고 살다가 죽은 이구나. 그 순간 선명해졌다. 나는 외롭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혼자라는 생각이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
아마도 그때일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결연해졌던 순간이. 흐릿했던 것들이 또렷해진 순간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일을 하기로 했다. 어쨌든 하루 세번, 우리는 먹으니까. '무엇을' 먹는지만 바꿔보기로 했다. 여전히 매일 혼자 밥상에 앉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오로지 나밖에 모르던 내가, 지구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한다는 것이. 지구 어딘가에 내가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마치 세상 모든 생명과 겸상을 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 때보다 충만한 식사였다. 219-220쪽
나는 이 부분처럼 채식지향의 밥상을 이렇게 뭉클하게, 전 지구적으로 써낸 글을 본 적이 없다. 세상 모든 생명과 겸상을 한 기분이었다,라니 채식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 문장의 카피로 뽑아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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